피트가 가성비를 만날 때, 싱글 몰트 위스키 스모키 스캇

Main Shot

싱글 몰트 위스키(Single Malt Whisky)가 유행된 지 좀 됐습니다. 싱글 몰트 위스키는 한 증류소에서 맥아(Malt)를 원료로 만든 위스키입니다. 이러한 싱글 몰트 위스키를 섞어 균일한 풍미를 목표로 만든 블렌디드 위스키와 반대로, 증류 전 원액, 즉 스피릿(Spirit)과 각 증류소 제조 방식에서 나오는 특성이 고스란히 나타나는 개성 있는 위스키 유형입니다.

위스키 사면서 가성비 따지는 것 같아 우습지만, 일반적으로 싱글 몰트 위스키는 블렌디드 위스키보다 비쌉니다. 보통 엔트리 상품군으로 여겨지는 10~15년 숙성 위스키가 8~20만 원의 가격으로(브랜드별로 천차만별이지만) 팔립니다. 블렌디드 위스키는 이 가격 아래로 훨씬 선택지가 많습니다.

그래서 작년 이 술이 이마트에 등장했을 때 많은 사람이 주목했습니다. 싱글 몰트 위스키가 4만 원이었습니다. 나름대로 이름 있는 증류소에서 나온 위스키였고, 도수도 든든하게 46%였습니다. 술은 인기 있었지만, 대란이라고 할 만한 일은 없었습니다. 이 위스키의 주제적 캐릭터가 몇몇 사람을 멈칫하게 했을지 모릅니다. 이 술은 스모키 스캇(Smoky Scot), 저숙성 피트 위스키입니다.

  • 스모키 스캇은 누가 만들었을까요?
  • 아일라에서는 왜 그렇게 피트 위스키가 많이 나올까요?
  • 피트에는 저숙성이 오히려 더 좋을 수도 있는 이유가 뭘까요?
  • 독립 병입 위스키가 뭘까요?

Bottle 1

제품 스모키 스캇(700mL)
분류 싱글 몰트 스카치 위스키
생산지 스코틀랜드 아일라(Islay)
알코올 46%
가격 44,300원(이마트)

Glass 1

레모네이드처럼 산뜻하고 옅은 노란색입니다. 잔을 스월링하면 짧은 레그가 금방 녹아내립니다. 투명한 색과 더불어 스모키 스캇의 가벼운 질감이 보이는 부분입니다.\

Glass 2

진한 소독약 냄새, 생굴에서 맡을 수 있는 비릿한 바닷내가 가장 먼저 풍깁니다. 그 뒤로 자몽, 라임을 연상시키는 시트러스함이 짜릿한 알콜 느낌과 뒤섞여 올라옵니다. 코코넛, 바나나 같은 묘한 단내가 배경에 깔려 있습니다. 생각보다 거칠지는 않습니다. 5년이라는 비교적 짧은 숙성 연수를 고려했을 때 이야기입니다.

Package 1

순서만 좀 바뀔 뿐, 향에서 캐치했던 특성이 대부분 맛으로 이어집니다. 해산물, 젖은 흙, 덜 익은 곡물 느낌의 피트 풍미가 가장 큽니다. 시트러스 계열의 맛, 포도 껍질처럼 쿰쿰한 베리류 맛도 있습니다. 보통 저숙성 위스키가 향에 비해 맛의 복합성이 떨어지는데, 스모키 스캇은 특히 그렇습니다. 짧은 맛의 지속시간에 그마저도 피트의 지분이 압도적입니다.

피니쉬 스모키 스캇의 목 넘김은 짧게 치고 금방 사그라듭니다. 46%라는 도수에 어울리지 않는 속도입니다. 텍스쳐가 가볍습니다. 입안이 살짝 텁텁해집니다. 피트향 잔향만큼은 꽤 진득하게 남습니다.

피트 위스키 스모키 스캇

Package 2

아무리 가격이 좋다지만 스모키 스캇의 패키지는 멋있다고 하기 어렵습니다. 메탈릭한 센스의 포장 중앙에 스코틀랜드 아일라섬이 그려져 있는 데서 스모키 스캇의 태생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스모키 스캇은 쿨일라(Caol Ila) 증류소의 5년 숙성 원액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쿨일라는 아드벡(Ardbeg), 라프로익(Laphroaig)처럼 아일라에서 주로 피트 위스키를 만드는 곳입니다.

Peat

출처 : Library of Congress

피트(Peat) 위스키는 정확히 말하면 ‘피트로 몰팅한 맥아가 쓰인 위스키’입니다. 보리가 싹을 틔우다 어느 정도 지나면 건조, 생장을 중단시켜 만든 게 맥아입니다. 맥아를 만드는 과정을 몰팅(Malting)이라고 합니다. 건조 과정에서 석탄이 되다만 이탄, 즉 피트를 쓰면 그 향이 맥아에 배어 이를 증류한 원액, 스피릿에도 풍미가 남게 됩니다. 피트는 나무보다 풀과 관목이 많은 환경에서 특히 많이 나옵니다. 바람이 거세 큰 나무가 뿌리 잡기 어려운 아일라에 피트가 많은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Percentage of flavor in spirit and oak barrels according to aging period

스피릿을 오크통에서 숙성하면 시간이 지날수록 맛에서 스피릿이 차지하는 비중이 줄고 사용한 오크통의 특성이 커지게 됩니다. 앞서 말했듯 피트향은 스피릿의 특질입니다. 따라서 숙성 기간이 길어질수록 위스키에서 피트의 지분은 줄어듭니다. 5년 숙성 원액의 스모키 스캇이 피트향을 일변도로 뿜어대는 것은 이런 까닭입니다. 복합성은 떨어지지만 피트 위스키 교보재로는 더할 나위 없습니다.

독립 병입 위스키

스모키 스캇은 싱글 몰트 스카치 위스키입니다.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싱글 몰트 위스키는 보통 증류소 이름과 함께 숙성 연수가 찍혀 나오는 게 보통입니다. 글렌피딕 15년, 글렌버기 12년, 라프로익 10년, 이렇게 말입니다. 증류소에서 발매(Original Bottling)되는 위스키라면 이게 일반적입니다. 스모키 스캇은 증류소에서 파는 위스키가 아닙니다.

Bottle 2

스모키 스캇은 독립 병입자가 판매(Independent Bottling)하는 위스키입니다. 용어는 낯설지 몰라도 독립 병입자는 위스키 역사의 초기를 함께한 오래된 개념입니다. 쉽게 말해 독립 병입자는 유통업자입니다. 증류소에서 원액을 사 와 도·소매점에 넘겼습니다. 오늘날의 독립 병입 위스키의 의미는 약간 다릅니다. 각 증류소에는 증류소가 추구하는 위스키의 방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위스키 조주 전 과정의 컨디션을 항상 일정하게 유지할 수 없기 때문에(특히 숙성 과정에서) 이 방향과 다른 결과물이 나올 때가 있습니다. 독립 병입자는 이런 원액을 사들입니다. 스모키 스캇 역시 Aceo라는 영국 독립 병입 회사가 쿨일라에서 사 온 원액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독립 병입자가 구매한 원액을 판매하는 방식은 다양합니다. 추가 숙성을 할 수도 있고, 블렌딩할 수도 있고, 아니면 그냥 그대로 팔 수도 있습니다. 독립 병입 위스키로 어떤 증류소의 완전히 새로운 모습을 확인하는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스모키 스캇 하이볼

다른 싱글 몰트 위스키라면 하이볼로 말아 마시는 짓은 꿈도 꾸지 못했겠지만, 스모키 스캇은 해볼 만합니다.

Highball Ingredient

준비물 : 스모키 스캇 60mL, 탄산수, 레몬

  1. 긴 하이볼 글래스에 스모키 스캇을 붓습니다.
  2. 잔 가득 얼음을 채웁니다.
  3. 탄산수를 잔 가득 채웁니다.
  4. 살살 저으며 탄산 손실을 최소화합니다.

Highball

스모키 스캇이 가진 산미 특성을 최대한 살리고 싶어서 레몬을 휠로 썰어 넣어봤습니다. 다층적인 신맛과 차가운 탄산이 미각에 원초적인 즐거움을 선사합니다. 꼬치 같은 기름진 안주가 어울릴 것 같습니다. 시원한 목 넘김에 계절이 잘못됐다 싶었습니다. 뭘, 하이볼은 이불 안에서도 맛있습니다.

피트 애호가의 데일리 위스키

Bottle and Glass

피트 위스키는 정말 매니악한 영역입니다. 이런 명성은 자연스러운 것이기도 합니다. 누가 소독약 냄새가 나는 술을 마시고 싶어 할까요? 하지만 한번 눈을 뜨면 피트의 모든 괴상한 매력은 즐길 거리가 됩니다.

스모키 스캇은 피트 위스키 애호가에게 든든한 선택지입니다. 영국 현지보다 저렴한 가격, 네임드 증류소, 썩 괜찮은 맛까지. 지금 국내에 스모키 스캇이 가진 위치를 대체할 수 있는 위스키는 없습니다.

피트 애호가라서 다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