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에 한번 나오는 고구마 소주. 증류 소주 려 25
제품 | 려 증류 소주 25(375m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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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 소주 |
생산지 | 대한민국 경기도 여주시 |
알코올 | 25% |
고구마 증류 소주
화요 41을 소개한 글에서 제조 공정에 따라 한국 소주를 크게 2가지로 나눌 수 있다고 했습니다. 희석식 소주와 증류식 소주. 일반적인 희석식 소주는 고순도의 알코올인 주정을 최대한 빨리, 많이 뽑는 증류 공정을 거친 후, 이를 물과 감미료에 섞어 조주합니다. 이 과정에서 원재료의 풍미를 대부분 잃습니다. 반대로 증류식 소주는 증류 속도도 느리고 뽑아낸 알코올 양도 적지만 원재료가 가진 다양한 풍미를 많이 보존합니다.
이런 공정 결과의 차이는 원재료의 차이로 이어집니다. 희석식 소주는 원재료의 맛이 중요하지 않으니, 취급 재료가 가격 대비 증류했을 때의 알코올 수율이 가장 좋은 특정 재료(타피오카 등)로 한정됩니다. 증류식 소주는 재료에 따라 결과물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쌀, 보리, 옥수수 등 여러 가지 맛을 추구하는 제조사와 소비자에 의해 다양한 곡물을 재료로 취급합니다.
고구마는 증류식 소주의 재료로 쌀만큼이나 자주 선택되는 곡물입니다. 일본에서는 이모 쇼츄(芋焼酎)라 하고, 고시마에서는 아에 특산물 취급 받습니다.
이번에 소개할 ‘려驪 증류 소주 25’ 역시 이런 고구마 증류 소주를 만들고 있는 국순당 여주명주에서 내놓은 제품입니다.
국순당 여주명주
국순당 여주명주는 백세주와 막걸리로 유명한 브랜드 국순당이 경기 여주에 세운 농업회사 법인입니다. 여주명주의 제품군은 단순한데요, 쌀 소주와 고구마 소주를 블랜딩한 ‘려 증류 소주’, 그리고 고구마 소주 100%인 ‘려 고구마 증류 소주’가 각각 알코올 도수 25%, 40%짜리로 총 4개의 제품이 있습니다. 이중 려 증류 소주 40은 2019년, 25는 2020년에 대한민국 주류대상 대상을 받았습니다.
여주명주는 스페이사이드의 발베니, 아일라의 킬호만 증류소처럼 재료 생산과 조주 공정을 모두 지역에서 처리합니다. 이렇게 되면 국내 주세법상 전통주로 취급되어 인터넷 판매 등의 혜택을 누릴 수 있게 됩니다. 술을 만들 때 사용하는 쌀, 고구마는 모두 여주산이고, 물까지 여주에 흐르는 남한강 물을 씁니다. 특히 고구마는 1년에 한 번 나오는 햇고구마를 수확 후 잘 선별하여 일주일 내 손질해 사용할 정도로 공을 들여 재료를 마련합니다. 려(驪)라는 제품명 역시 지역명 여주에서 따온 것입니다. 소주는 여타 증류주와 마찬가지로 원재료를 갈고(밀링) 물에 불려 당화시킨 후 발효제를 넣어 만든 발효액을 증류시켜 제작하는데, 이때 사용하는 발효제인 누룩까지 자체 개발한 것을 씁니다.
려 증류 소주 25
경남 하동의 식품 명인 김동곤이 세운 제다 브랜드, 쌍계명차와 콜라보레이션한 패키지를 선물 받았습니다.
쌍계명차의 히비스커스차, 사각 온더락잔, 려 증류 소주 25 375ml가 들어 있습니다.
패키지에는 려에 차를 침출시켜 얼음과 함께 마시라는 음용 방법이 안내되어 있습니다.
기다란 사각형 병. 실루엣이 인상적입니다. 제품 이름, 검은 말 려(驪)를 드러내듯 달리는 말 그림이 붙어 있습니다.
라벨을 양면 인쇄하여 투명한 병과 술을 거쳐 성분 등 설명을 읽게 만든 점이 재미있습니다.
겉보기 맑고 투명합니다. 넓게 퍼지는 레그는 빠르게 사그라듭니다.
향 진합니다. 노징 글라스 입구 꽤 멀리서부터 상큼한 향이 성큼성큼 다가옵니다. 사과, 청포도 같은 청량한 과실 향입니다. 그 아래 옅게 요거트 같은 쌀 증류 소주 특유의 꾸덕꾸한 향이 있습니다. 대추, 말린 한약재 냄새가 지나가고, 군고구마 껍질 같은 탄향이 조금 납니다. 오래 향을 맡고 있으면 새콤한 첫 향은 금방 가시고 스모키한 향과 알코올 냄새가 지분을 키웁니다.
맛 물처럼 밍밍하다가 반 박자 늦게 묵직한 고구마 맛이 올라옵니다. 생각보다 쌀 소주의 뉘앙스는 크지 않습니다. 약간의 산미와 약 같은 단맛이 있습니다. 향신료나 과실 느낌은 찾기 어렵고, 전반적으로 곡물 풍미가 맛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여주명주에서는 재료별로 다른 증류 방식을 사용하는데, 쌀은 감압 증류, 고구마는 상압 증류를 합니다. 상압 증류는 감압 방식보다 높은 온도에서 증류하기 때문에 결과물에 탄내와 함께 더 풍부한 향미가 생기는 게 특징입니다. 가벼운 쌀 소주 기반 위에서 군데군데 고구마 풍미가 영향력을 과시하는 듯한 려의 모습은 이런 이유에 기인합니다.
피니쉬 25도인 것을 감안해도 목 넘김은 매우 부드럽습니다. 조금 탄 듯한 고소한 곡물 맛이 입 안에 가득합니다.
이번엔 동봉된 히비스커스 차를 려에 담궈봅니다. 차 자체는 특별하지 않은 히비스커스 향이 납니다. 말린 베리 같은 것도 들어 있습니다.
순식간에 붉게 우러납니다. 니트로도 한 모금, 온더락으로도 한 모금 마셔봤습니다. 새콤달콤한 히비스커스 맛이 짧게 지나가고 쌉싸름한 알코올 부즈가 올라옵니다. 곡주의 은은한 단맛과 감칠맛이 히비스커스에 묻혀버리고, 그와 대비되는 쓴맛만 더 강조되는 느낌입니다. 따로 마시는 게 낫겠습니다. 이 투명한 붉은 빛만큼은 예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 뒤로 탄산수, 콜라, 레몬즙 등 이것저것 섞어 봤는데 토닉 워터가 좀 낫고, 나머지 조합은 안 섞느니만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만큼 술 자체의 독립적인 완성도가 높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전통 소주인 만큼 어김없이 구운 고기와는 어울렸습니다.
부담 없는 매력
려는 간혹 보이는 것에 비해서 인지도가 그렇게 높은 술은 아닙니다. 고구마 소주라는 카테고리의 낯섦도 있을 것이고, ‘려’라는 한 글자 이름이 부르기 친숙하지 않아서 그런 것일 수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그냥 보고 지나치기에는 아까운 술입니다. 부담 없는 맛을 가진 려 25는 증류식 소주 입문용으로도 괜찮은 선택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