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울의 과수원. 발베니 더블우드 12년

Case 1

얼마 전 퇴사할 때 동료분께 고마운 선물을 받았습니다. 위스키의 세계로 제 등을 떠밀어 주시기도 한 그분께 받은 선물은 역시 싱글 몰트 스카치위스키, 발베니 더블우드 12년입니다.

제품 발베니 더블우드 12년(750mL)
분류 싱글 몰트 스카치 위스키
생산지 스코틀랜드 스페이사이드
알코올 40도

Case 2

발베니는 고전적인 원통형 케이스에 쌓여 있습니다. 양피지 색 바탕에 빼곡한 글씨의 레이아웃이 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합니다.

발베니 증류소는 스코틀랜드 스페이사이드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스페이사이드 지역은 글렌리벳, 멕켈란, 카듀 등 여러 유명 위스키의 산지이기도 합니다. 세상에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점에서는 산타클로스에게도 뒤지지 않을 그 목록에는 글렌피딕 역시 포함되어 있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발베니는 글렌피딕이 지은 증류소입니다. 글렌피딕 증류소의 설립자 윌리엄 그랜트가 1892년 글렌피딕에 이어 지은 증류소입니다. 본래 설립 목적이 글렌피딕 증류소의 생산력을 보조하기 위한 것이었으므로 발베니는 오랫동안 자신의 이름을 붙인 제품을 내지 않았습니다. 첫 공식 병입은 1973년에 이뤄졌고 첫 제품인 파운더즈 리저브가 출시된 것은 1982년입니다. 증류소가 설립되고 90년 후였습니다.

Bottle 1

병은 전체적으로 두툼한 형태입니다. 두껍고 평평한 하단부에서 꼭지로 올라가는 부분에 소라나 다슬기 같은 볼록한 곡선이 인상적입니다. 병 밖에서 보이는 발베니의 색깔은 여지없이 만족스러운 호박색입니다. 노란 쪽이냐 빨간 쪽이냐 묻는다면 후자에 가깝습니다. 발베니 더블우드를 만드는 공정의 마무리인 셰리 오크통 숙성 때문일 가능성이 큽니다.

Bottle 2

발베니 더블우드 12년은 증류를 마친 스피릿을 10년 넘게 버번 오크통에 숙성하다가 셰리 오크통에 9개월 정도 숙성하여 마무리합니다. 캐스크 피니쉬로 불리는 이 공정은 발베니의 몰트 마스터, 발베니 그 자체라고도 할 수 있는 데이비드 스튜어트가 확립했습니다. 데이비드 스튜어트는 1962년 발베니 입사 후 12년이 지난 1974년 몰트 마스터로 임명된 이래 더블우드를 비롯한 많은 작품을 선보이며 위스키 업계의 전설로 자리매김했습니다. 데이비드 스튜어트는 2016년 영국 훈장까지 받으면서 그 업적을 증명한 적이 있습니다.

Floral Note

잔에 옮겨 담으니 은은한 꽃향기가 우러나옵니다. 꿀을 가득 품은 꽃이 잔뜩 피어난 꽃밭 옆에서 바람을 타고 넘어오는 향기를 힐끗 맡게 되는 느낌입니다. 조심스럽게 코를 댑니다. 향기가 부드럽고 풍부합니다. 베어 물면 물이 줄줄 흐를 것 같은 자두나 매실, 복숭아 같은 분위기가 있습니다. 껍질을 벌린 포도에서 맡을 수 있는 향기로움이 있습니다. 피트 맛의 일부이기도 한 바닷냄새와 상큼한 레몬 껍질 냄새가 나지만 집중해서 찾아내야 할 만큼 조금입니다. 전반적으로 산뜻하고 경쾌한 느낌으로 촉촉한 향기였습니다. 또 곡물을 원료로 쓰는 술이라면 쉽게 맡을 수 있는 알코올 냄새가 전혀 없었습니다.

Honey Taste

입안에 흘려 넣자 가벼운 바닐라 향이 가득 퍼집니다. 달큰한 꿀맛과 포도 껍질에서 맛볼 수 있는 쌉싸름한 산미가 느껴집니다. 백합처럼 무거운 꽃향기가 얼핏 지나가기도 합니다. 향처럼 무게감 없는 맛이었지만 향이 워낙 산뜻하고 부드러워서 그런지 위스키라면 당연히 있어야 할 알코올 맛이 혀끝에서 등장했을 때는 약간 당황하기도 했습니다. 한 모금 두 모금 재차 입을 적시니 바닥에 깔린 평온한 신맛이 형태를 갖춥니다. 잘 닦은 사과 표면에서 맡을 수 있는 상쾌함도 느껴집니다. 그러나 바닐라, 꿀, 그리고 자두나 포도 같은 과즙 많은 과일 맛은 매우 확실한 정체감을 가지고 끝 모금까지 남아있습니다. 흐뭇한 한숨이 꽃향기와 함께 입술 사이로 새어 나옵니다.

Whiskey Gift

발베니 더블우드 12년은 가볍고 부담 없이 마실 수 있는 싱글 몰트 위스키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아드벡처럼 완전 캐릭터 뚜렷한 술이나 글렌드로낙처럼 진득한 술 쪽에 눈길이 가는 건 사실이지만, 어쨌거나 발베니도 괜찮은 위스키였습니다. 게다가 발베니는 보리에 싹을 틔워 맥아를 만드는 일부터 당화, 증류, 숙성, 병입에 라벨을 붙이는 작업까지 증류소 내에서 수작업으로 이뤄진다는 사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언젠가 친구가 선물을 받는 게 좋은 이유는 그 물건 자체라기보다는 선물을 고르고 전달하는 과정에 들인 수고 때문이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발베니만큼 선물로 어울리는 위스키는 또 없을 겁니다. 향을 맡고 맛을 보는 첫 순간부터 마지막까지 이토록 인간적인 위스키는 완벽한 선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