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나 포근한 50도 술이라니. 와일드 터키 101
지금이야 줄곧 싱글 몰트 위스키만 마시고 있지만 제가 처음 샀던 위스키는 짐빔, 버번이었습니다. 위스키에 대한 지식이 하나도 없었던 때 비싼 술 좀 사 먹어보고 싶다는 당돌한 마음 하나로 골랐던 술이었습니다. 그날 신림역 3번 출구 리퀴드 샵 사장님이 추천해주신 짐빔 덕분에 위스키의 바다에 나쁘지 않은 속도로 다이빙할 수 있었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지금 당장은 버번위스키를 그다지 즐기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하면 재미있는 점입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한 우물만 파는 성격이 아닙니다. 옆 우물 속이 궁금해서 곧잘 들여다보는 쪽입니다. 계속 스카치 싱글 몰트 위스키만 사 마시다가 갑자기 버번위스키인 와일드 터키 101을 구매한 이유도 아마 거기 있을 겁니다.
제품 | 와일드 터키 101(750m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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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 버번 위스키 |
생산지 | 미국 켄터키 |
알코올 | 50.5도 |
묵직한 유리병에 칠면조 일러스트가 강한 인상을 남깁니다. 코팅 없이 사각거리는 표면의 라벨은 서부극에 나올 듯 건조한 느낌입니다. 버번위스키의 전형적인 캐릭터입니다. 버번위스키는 미국 켄터키주에 버번 카운티에서 유래한 그레인 위스키입니다. 옥수수가 51% 이상 들어간 원액을 증류하고 쉐리 위스키처럼 다른 술을 담았던 오크통이 아닌 새로 만든 오크통만 사용해서 숙성합니다. 이러한 제조 방식 때문에 버번위스키는 대부분 단맛이 강하고 식감이 거친 편입니다.
와일드 터키는 대표적인 버번위스키 중 하나입니다. 최초로 증류소를 열었을 때가 1869년일 정도로 역사가 오래됐습니다. 와일드 터키 101은 이 브랜드의 간판 상품입니다. 이름 뒤에 붙은 숫자 101은 영미권에서 쓰이는 독자적인 주류 도수 단위 프루프(Proof)를 나타냅니다. 다시 말해 와일드 터키 101의 도수는 101프루프라는 뜻인데, 이 숫자를 절반으로 나누면 흔히 쓰는 ‘도’ 단위에 얼추 맞게 됩니다. 결국 와일드 터키 101은 알코올 도수가 50.5도인 것입니다. 버번이라지만 결코 낮은 도수는 아닙니다.
코르크를 열자 50도가 넘는 고도수의 술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든 달콤한 향기가 풍겨옵니다. 잔을 약간 채우고 코를 가져다 대자 높은 도수에 맞는 알코올 냄새가 곧바로 들어옵니다. 거기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나면 한 잔 가득히 흐뭇한 초콜릿 향과 은은한 바닐라 향을 느낄 수 있습니다. 짜고 축축한 냄새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향 밑바닥에 상큼한 귤과 앵두 냄새가 넉넉했습니다. 물론 이 모든 향기를 부드럽게 지배하고 있는 단 하나의 향기는 캐러멜 냄새였습니다.
와일드 터키 101은 피라도 섞은 듯 새빨간 단풍잎 색깔입니다. 빽빽한 산림 속에서도 가장 진한 거죽 나무에서만 느낄 수 있는 무거운 색이지만 잔을 기울여 찰랑거리다 보면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습니다.
한 모음 입안에 흘려 넣으니 시큼한 석류 맛이 먼저였습니다. 오렌지, 민트 맛이 혀끝에서 느긋하게 퍼지다가 돌연 떫은맛이 느껴집니다. 알코올로 입안이 얼얼합니다. 후추처럼 탄 듯이 맵고 향기로운 맛이 목구멍에 들러붙습니다. 다크초콜릿의 담백하고 쌉쌀한 맛이 고급스러운 분위기로 입안에 남습니다. 입천장은 건조한 느낌입니다. 깊은 콧속 뒤편으로 독하고 풍성한 단내가 응어리진 듯합니다. 손가락으로 잔 가장자리를 튕겨보고 다시 한 잔을 따릅니다.
평소에도 큼직한 얼음을 넣어 마시는 온더록 방식보다는 아무것도 더하지 않고 그냥 마시는 니트 방식을 더 좋아하지만, 와일드 터키 101을 마시면서 더욱 니트만을 고집하게 되었습니다. 상온에서만 느낄 수 있는 와일드 터키의 푹 익은 단내는 몇 잔이라도 놓치기에 아까웠습니다. 요즘 저녁이 쌀쌀하던데, 몸 덥히기에 딱 맞는 버번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