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거나 싫어하거나, 피트의 마술적 매력. 라프로익 10년
강한 냄새가 나는 피트 위스키는 장르 자체의 호불호가 큽니다. 꽃, 풀, 과일, 바닐라처럼 자연적이지 않고 인공적으로 만든 소독약과 병원을 연상시키는 강렬한 향은 매니아와 그렇지 않은 사람을 확실하게 나눕니다.
그런 피트 위스키 중에서도 단연 독보적인 개성, 전설과 악명을 떨치는 위스키가 있습니다. 바로 라프로익(Laphroaig) 10년입니다.
제품 | 라프로익 10년(700m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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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 싱글 몰트 스카치 위스키 |
생산지 | 스코틀랜드 아일라 |
알코올 | 40% |
가격 | 8만원대(남대문 시장) |
라프로익 증류소
스코틀랜드 아일라섬은 피트 매장량이 풍부해 피트 위스키의 성지로 불립니다. 아일라 남부 킬달튼(Kildalton) 지역에는 피트 위스키로 유명한 증류소 3곳이 붙어있습니다. 아드벡(Ardbeg), 라가불린(Lagavulin), 그리고 라프로익입니다. 세 증류소가 시작된 시점은 1815~1816년으로 비슷비슷하지만 규모는 차이가 큽니다. 라프로익의 연간 생산량은 3백 4십만 리터에 달합니다. 라가불린보다 1백만 리터 많고 아드벡의 3배 수준입니다.
스코틀랜드 이민자 알렉산더(Alexander)와 도널드 존스턴(Donald Johnston) 형제는 1815년 아일라 섬에 라프로익 증류소를 설립합니다. 20세기 초, 도널드의 증손자 이안 헌터(Ian Hunter) 대에 이르러 라프로익은 명성을 얻기 시작합니다. 금주법 시대의 미국에서 의약품으로 판매되는 등 여러 해외 시장에 진출합니다. 라프로익 증류소는 2006년부터 2014년까지 짐 빔(Jim Beam)으로 유명한 기업 빔에 있다가 일본의 산토리(Suntory)가 빔을 인수함에 따라 현재는 빔 산토리 산하에 있습니다.
라프로익을 사면 땅 주인이 된다
라프로익 패키지 안에는 아일라로 가는 여권(Passport to Islay)이라고 적힌 작은 종이쪽지가 들어있습니다. 이 여권에 적힌 코드로 Friends of Laphroaig이라는 라프로익의 멤버십에 가입하면 땅을 받을 수 있습니다.
가로세로 1피트(약 30cm)의 작은 땅이긴 하지만요. 라프로익은 제 땅을 빌려쓰는 대가로 증류소에 방문했을 때 위스키 한잔을 주겠다고 멤버십을 소개합니다. 이런 재미있는 마케팅은 라프로익이 증류소 근처의 토지를 매입하지 않았다면 없었을 겁니다. 라프로익이 증류소 부지를 확대하게 된 계기는 이웃 증류소와의 갈등에서 비롯합니다.
흔히 위스키의 풍미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곡물, 오크통, 물을 꼽습니다. 특히 물은 생산지 고유의 특색을 갖춘 위스키를 만드는 데 필수적이라서, 위스키 좀 제대로 만든다 싶은 증류소는 곡물이나 오크통은 다른 곳에서 사서 쓰더라도 물 만큼은 증류소 부지 내에 있는 수원지에서 가져다 씁니다. 라프로익 역시 증류소 북쪽에 있는 킬브라이드(Kilbride) 시내의 물로 위스키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물길을 벽돌로 막아버린 사건이 발생합니다. 이웃 증류소인 라가불린의 당시 주인 피터 맥키(Sir. Peter Mackie)가 벌인 일이었습니다. 피터는 블렌디드 위스키를 만들었는데, 여기에는 라프로익의 원액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이안 헌터 때 라프로익은 피터가 너무 싼 가격에 많은 원액을 가져간다고 생각해서 계약을 끊습니다. 이는 오랜 소송전과, 킬브라이드 시내를 막아버리는 사건으로 이어집니다. 둘 다 라프로익에 유리한 방향으로 해결됐지만 라프로익은 수원지에 대한 의존도를 실감하게 되어 시내가 흐르는 주변 땅을 전부 사들었습니다. 이때 산 땅이 지금 라프로익 구매자의 손에 들어가게 된 것이죠.
라프로익 10년
본격적으로 라프로익 10년을 즐겨보겠습니다.
색 라프로익 10년은 낮은 숙성 연수에 맞는 옅은 보리 색을 띄고 있습니다. 잔 표면을 쉽게 내려가는 레그와 더불어 가볍고 찰랑거리는 분위기를 만듭니다.
향 소독약 같은 약품 향이 강합니다. 진한 송진이 몽글몽글 맺혀 있는 오래된 나무가 인상됩니다. 그 뒤에는 바닷물에 젖은 해조류처럼 짭조름한 냄새가 납니다. 멜론처럼 무르고 담백한 과실의 뉘앙스가 있습니다. 곡물 같은 빵 내음이 슬쩍 풍깁니다. 그래도 역시 달콤하고 코를 찌르는 피트 냄새의 비중이 가장 큰 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맛 도수 자체는 높지 않아 부드럽게 넘어옵니다. 쌉쌀하고 진득한 한약 내가 입안에서 굴러갑니다. 적당한 산미에 복숭아, 자두의 달콤함이 섞여 있습니다. 버번 오크통의 영향인지 바닐라 풍미가 있습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한 뭉텅이 건초를 물고 있으면 이런 느낌일까 같은 생각이 듭니다.
피니쉬 산뜻한 한 모금이 지나간 후 텁텁한 감각이 남습니다. 상큼달콤함이 자제하며 밑부분을 잡아주고, 빵의 갈색 겉껍질을 씹는 듯한 쓴맛이 그 위에 올라갑니다.
왕실 훈장을 단 마술적 위스키
Love it or Hate it. 사랑하거나 싫어하거나. 라프로익의 모토는 극단적이지만 사실적입니다. 라프로익을 접하면 팬이 되어 계속 찾게 되거나 거들떠보지도 않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라프로익의 패키지에 달려 있는 왕실 훈장도 같은 이유에서 어울립니다. 로얄 워런트(Royal Warrant)는 왕실에 납품하는 물건이나 서비스를 대상으로 그 가치가 왕실로부터 인정된 것에 부여되는 증서입니다. 스카치 위스키 같은 경우 조니 워커, 발렌타인 등 로얄 워런트를 가진 블렌디드 위스키 브랜드가 꽤 있지만, 싱글 몰트 브랜드에서는 현재 하이랜드의 로얄 로크나, 그리고 라프로익이 전부입니다. 라프로익의 로얄 워런트는 찰스 왕세자로부터 받은 것입니다. 1994년 주변 지역에 방문한 왕세자가 비행기 문제로 바로 떠나지 못하고 라프로익에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 2시간 반 동안 왕세자는 라프로익에 빠졌고 로얄 워런트를 받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라프로익의 매력은 마술적입니다. 독한 향과 맛에 푹 파묻히면 헤어나올 수가 없습니다. 선물용, 추천용 위스키는 아닙니다. 오로지 나, 내 취향을 위한 술 라프로익은 오랜 시간 다시 찾게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