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은 (또) 없었던 애플의 자신감. 9/14 애플 이벤트 리뷰
이번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는 모두 애플 공식 홈페이지와 2021년 9월 애플 이벤트 녹화 영상에서 발췌했습니다.
9월 14일(한국 날짜로 9월 15일) 애플의 스페셜 이벤트가 있었습니다. 아이폰 13, 차세대 아이패드 미니·애플 워치를 비롯한 7개나 되는 모바일 디바이스가 공개되었습니다. 항상 여러 말이 나오는 애플 이벤트답게 이번 9월 이벤트에서도 많은 논란이 오갔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디자이너인 제 시각에서 애플 9월 이벤트를 리뷰해보겠습니다.
- 전 세대와 다를 것 없어 보이는 아이폰, 어떤가요?
- 프로 라인업의 카메라 소프트웨어, 과하지 않나요?
- 이번 행사에서 어떤 인사이트를 찾아볼 수 있을까요?
판박이 아이폰, 아이패드가 보여주는 애플의 자신감
이번 이벤트에서 발표된 모바일 디바이스는 총 7종입니다. 우선 아이폰 13은 작년 10월 이벤트에서처럼 일반, 미니, 프로, 프로 맥스의 4종류 라인업으로 출시되었습니다. 아이폰 13의 외면에서 확인할 수 있는 변화는 거의 없습니다. 4년 전 아이폰 X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은, 홈 버튼 없는 라운드 디스플레이 + 노치에 4종 라인업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이폰 5를 복각한 듯한 각진 측면은 전 세대인 아이폰 12과 비슷합니다.
아이패드는 또 어떤가요. 2017년 5세대에서 리뉴얼 후 9세대가 다 되었지만 같은 디자인입니다. 2년 만에 나온 아이패드 미니 6세대의 각진 디자인 그나마 가장 많이 바뀌었다고 볼 수 있는 제품입니다. 아이패드에 각진 디자인이 적용된 것은 2018년의 프로 라인업부터였으니 3년 가까이 지난 후지만요.
페이스 아이디나 애플 페이급으로 인상적인 새 기능도 없고, 액세서리를 비롯한 제품에서 새로운 라인업이 발표되지도 않았습니다. 색상 등 옵션도 간소화된 모습이 보입니다. 7종이나 되는 제품 발표는 어쩐지 숫자만 큰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지금 이 시점에서 이렇게 많은 제품군을 출시할 수 있는 기업은 애플밖에 없습니다.
왜일까요? 잠깐 지금의 상황을 확인해봅시다.
- 지난 8월 삼성 갤럭시 언팩 이벤트에서 발표된 갤럭시 Z 폴드 3, 플립 3와 갤럭시 워치 4는 예상을 뛰어넘는 예약 구매율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한국을 포함한 여러 국가에서 배송 지연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물량 부족이 그 원인입니다.
- 팬더믹 초기 하락세였던 자동차 판매율은 빠른 속도로 회복하고 있지만 포드, GM 등 여러 자동차 제조 기업은 자동차용 반도체 부족으로 생산율을 높이는 데 고전하고 있습니다.
- Play Station 5, Xbox Series X와 같은 게임 콘솔의 공급 부족은 2023년까지 계속될 전망입니다. 소니는 Play Station 5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예 내부 설계를 바꾸는 선택지도 계획하고 있습니다.
- 전 세계적인 반도체 부족 현상으로 1위 파운더리 기업 TSMC는 칩 가격을 최대 20%까지 인상하기로 했습니다.
이렇게 모두가 칩 부족이라는 늪에 빠져 있는데 애플만 자유로운 것처럼 보입니다. 애플은 애플 실리콘이라는 자체 설계 칩을 가지고 있는 데다가, 칩 확보를 위해서라고 추정되는 제조 구매 의무를 작년 대비 26% 증가한 382억 달러까지 늘렸습니다. 애플은 잘 짜인 판에서 공격적인 고객 확장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애플의 OS는 폐쇄성이 강한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다른 기업과 제조·공급 능력 격차를 벌려놓은 이 시점에 적극적으로 고객을 유치한다면 큰 성장 동력이 될 것은 자명합니다. 이번 이벤트에서 저가 라인업 중심의 아이패드, 저장 용량은 2배지만 가격은 이전 세대와 동일한 제품 구성을 발표하면서 ‘애플치고는 가성비 좋은’ 면을 강조한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아이폰과 아이패드의 판박이 디자인은 한정된 기간에만 가지고 있을 수 있는 애플의 이점을 최대한으로 발휘하도록 도울 것입니다. OS나 액세서리 등 유입되기에 충분한 인프라가 탄탄한 점도 여기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 모든 설계는 포그 행동 모델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온보딩의 허들을 낮추는 행위에 해당합니다. 잘 작동한다면 애플의 고객은 큰 폭으로 확장될 것입니다.
실제 출시 이후에도 지켜봐야 하겠지만, 스마트폰과 태블릿 PC 시장에서 올라가는 애플의 점유율을 막을 큰 변수는 보이지 않습니다. 혁신은 없지만 좋은 디자인입니다. 애플만 할 수 있는 디자인입니다.
코로나 트렌드 - 영상 통화와 아웃도어
팬더믹 상황으로 원격 근무가 실시되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관련 인프라도 빠르게 발전하고 있습니다. 영상 통화 서비스 줌(Zoom)이 대표적이죠. 이번 이벤트에서 발표된 아이패드 2종 역시 업무 도구로써 영상 통화 기능에 집중한 측면이 몇 가지 보입니다.
첫째는 하드웨어입니다. 아이패드 9세대의 122도 광각 전면 카메라는 1,200만 화소로 전 세대에 비해 10배 높은 화소의 카메라가 장착되었습니다. 아이패드 미니 6세대도 마찬가지로 1,200만 화소로 업그레이드되었습니다.
영상 통화 경험이 오랫동안 누적될 지금의 환경이라면 영상 통화의 기준 자체를 바꿔버릴 강력한 기능이라 여겨집니다. 단기간에 쉽게 따라 할 수 없는 기술인 만큼 차별점으로도 손색없습니다. 줌, 블루진스(BlueJeans), 웹엑스(Webex) 등 여러 화상 회의 앱에서 사용 가능한 확장성은 센터 스테이지의 경험을 실용적으로 만듭니다. 오랫동안 지켜볼 만한 가치가 있는 기능입니다.
코로나는 사람들을 실내에 박혀 있도록 만들었지만, 반대로 아무도 없는 자연으로 향하게 하기도 했습니다. 휴대성이 특히 강조된 아이패드 미니와 애플 워치 신작이 발표된 일은 트렌드에 적합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11인치 아이패드 프로가 처음 나왔을 때 눈길을 끌었던 각진 디자인이 아이패드 미니 6세대에 적용되었습니다. 7.9인치 4:3 비율 디스플레이는 8.3인치에 16:10.5 비율의 더 크고 긴 화면으로 업그레이드되었습니다. 동시에 제품 크기 자체는 높이만 5mm가량 줄어 면적 대비 디스플레이 영역이 늘어난 모습을 보입니다. 5G를 지원하고 배터리가 늘어났습니다. 고속 충전을 위한 USB-C 단자가 들어가 있습니다.
디스플레이, 5G, 배터리, USB-C는 모두 야외 활동에 적합한 개선입니다. 밖에서 잘 보이도록 화면이 밝아야 하고, 무선 통신은 빨라야 하며, 배터리 사용 시간은 길고 충전 시간은 짧아야 합니다. 마찬가지 요소가 모두 애플 워치 시리즈 7에 추가되었습니다.
애플 워치 시리즈 7의 디스플레이는 주목할만합니다. 베젤이 줄어 전작보다 20% 커진 화면 영역을 보이며, 크기 자체도 40mm, 44mm에서 41mm, 45mm 모델로 출시되었습니다. 이에 맞추어 앱의 레이아웃은 더 쉬운 인터랙션, 더 효과적인 정보 전달에 초점을 맞추어 개선되었습니다. 풀 사이즈 키보드가 생겼습니다. 이전에는 FlickType이라는 서드파티 앱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습니다.(참으로 애플답게도, FlickType 개발자와 애플 사이에는 법정 다툼이 생겼습니다.) 충격에 강해진 디스플레이, IP6X 방진 등급과 WR50 방수 등급은 환경에 상관없이 위와 같은 유틸리티 특성이 동작하도록 만들어 줍니다. 패션에 아웃도어까지 처음에는 애매하다고 생각했던 애플 워치가 세대를 거듭할수록 정체성을 확장하는 모양새입니다. 여기에 필라테스·명상 콘텐츠, 함께 영상 통화하며 운동할 수 있는 기능인 그룹 워크아웃(Group Workouts)으로 강화된 애플 피트니스+(Apple Fitness+)가 더해서 운동 도구라는 강력한 정체성까지 갖게 되었습니다.
아이폰과 틱톡
이번 아이폰 13에는 여러모로 영상 촬영 성능 개선에 초점을 맞춘 변경점이 있습니다. 일단 카메라 센서부터가 커졌습니다. 47% 더 많은 빛을 받아들이는 센서는 당연히 화질 개선으로 이어집니다. 아이폰 12 프로 맥스에 있던 센서 시프트 장치가 아이폰 13 전 라인업에 탑재됐습니다. 센서 시프트는 흔들림에 맞춰 센서를 움직여 떨림을 잡아주는 OIS 기술입니다.
새로운 소프트웨어도 생겼습니다. 시네마틱 모드입니다. 인물의 시선과 사물의 움직임에 맞추어 초점이 자연스럽게 움직입니다. 센터 스테이지와 마찬가지로 머신 러닝의 힘입니다. 촬영자의 경험과 지식에서 비롯된 영화적 시선의 표현은 아이폰 한 대를 사는 것만으로 대체될 수 있습니다.
용량이 큰 영상 파일 특성에 맞게 아이폰 13의 저장공간 크기도 2배로 늘었습니다. 최소 용량은 이제 128GB부터 시작합니다.
영상 촬영 기능을 받쳐주기 위해 성능도 개선되었습니다. 아이폰 13에는 신형 A15 바이오닉 프로세서가 탑재됩니다. 이 프로세서에는 비디오 인코더·디코더 기능이 내장되어 있습니다.
배터리 최적화도 이뤄졌습니다. 아이폰 13의 사용 가능 시간은 비교 모델에 따라 1시간 반에서 2시간 반까지 늘어났습니다. 여기에는 5G - LTE 간 자동 전환 기능인 스마트 데이터와, 표시해야 할 내용에 따라 화면 주사율을 10Hz에서 120Hz까지 조정하여 배터리를 아끼는 ProMotion 등이 일조했습니다. 이런 자동 최적화 기능은 섬세하게 디자인하지 않으면 어색함과 불편함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실제 사용 경험이 기대됩니다.
위와 같이 영상 촬영에 집중된 대대적 개선은 모바일 디바이스 생태계에 가장 활발하게 기여하는 젊은 세대와 관련이 있습니다. 이들이 만든 영상 콘텐츠는 그 자체로 커뮤니티를 움직이는 혈액이 되고 많은 마케터의 연구 대상이 됩니다. 대표적인 현상이 틱톡(TikTok)입니다. 글로벌 시장에서 틱톡은 이미 페이스북을 넘어섰습니다. 무엇이 기성이고 무엇이 신세대인지는 이미 정해졌습니다. 이들의 콘텐츠 제작 방식은 진지하지 않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수만 명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면서 값비싼 전문 장비나 거기에 필요한 지식을 원하지 않습니다. 커뮤니티에서 이들의 기여 방식은 언제나 가볍습니다. 아이폰의 개선된 영상 촬영 기능은 명백하게 이들을 타깃으로 삼고 있습니다. 애플의 설계는 디지털 세계에서 가장 활발하게 움직이는 집단을 손에 넣는 데 도움을 줄 것입니다.
이벤트에서 드러난 애플의 자신감
아이폰 13, 아이패드, 애플 워치까지 7종에 달하는 모바일 디바이스가 발표됐습니다. 이 시점에 이런 물량 공세 전략이 가능한 것은 애플이 칩 공급에 자신감이 있기 때문입니다. 영상 통화와 아웃도어, 그리고 영상 콘텐츠에 익숙한 고객을 위한 개선까지, 고객을 확장하려는 시도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포함한 여러 방면의 디자인에서 드러났습니다.
이번 이벤트의 오프닝에서 팀 쿡은 신나는 음악과 함께 캘리포니아의 사람과 환경을 찬양했습니다. 최근 캘리포니아 북부지방법원이 에픽 게임즈의 소송에 대해 애플이 독점 기업이 아니라고 판결 받은 사실을 생각하면 재밌게 보이는 부분입니다.
위시켓의 지원과 함께 제작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