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볍고 밝은 싱글 몰트 위스키의 대표주자. 글렌그란트 12년

두툼한 고기 한 점에 어울리는 묵직한 술이 필요한 경우도 있지만, 때로는 그냥 홀짝일 수 있는 가벼운 위스키가 손에 필요한 날도 있습니다. 이번에 마신 술은 가벼운 싱글 몰트 위스키의 대표, 글렌그란트(Glen Grant) 12년입니다.

Bottle and Box

제품 글렌그란트 12년(700mL)
분류 싱글 몰트 스카치 위스키
생산지 스코틀랜드 스페이사이드
알코올 43%
가격 76,890원(GS25 나만의 냉장고 와인25+)

글렌그란트 증류소

Box

티파니 블루가 연상되는 민트색 테두리에 그물 무늬 선이 음각으로 새겨진 가죽색 종이 박스입니다. 텍스트를 위에서부터 하나씩 살펴봅니다. ‘Established 1840’, ‘THE GLEN GRANT’, ‘ROTHES SPEYSIDE’.

글렌그란트 증류소의 창립자는 존 그란트(John Grant)와 제임스 그란트(James Grant) 형제입니다. 형제는 원래 아벨라워(Aberlour) 증류소를 빌려 운영하다가, 1840년에 스코틀랜드 스페이사이드 지역 로시스(Rothes) 마을에 그들만의 증류소를 세웁니다. 글렌피딕(Glenfiddich), 글렌리벳(The Glenlivet), 글렌버기(Glenburgie)처럼 증류소의 설립 장소로 이름 붙인 스페이사이드의 여타 증류소와는 다르게 자신들의 이름을 붙인 증류소, 글렌그란트였습니다.

제임스 그란트는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을 활용해 항구 도시 로시머스(Lossiemouth)까지 이어지는 철도망을 증류소 근처까지 잇습니다. 자연히 수출량이 늘었습니다. 주로 스코틀랜드 내부에서 소비되던 다른 증류소의 위스키와는 차별되는 점이었습니다.

연도 소유주
1860년대-1952 J&J 그란트
1952-1970 글렌리벳 & 글렌 그란트 증류소
1970-1977 글렌리벳 증류소
1977-2001 씨그램
2001-2006 시바스 브라더스 홀딩스
2006-현재 캄파리

정보 출처 : Scotchwhisky.com

얼리어답터가 완성한 글렌그란트의 맛

Bottle Front

계속해서 라벨을 읽어봅니다. ‘MAJOR JAMES GRANT created tail slender STILLS & UNIQUE PURIFIERS to capture only the finest vapours’.

창립자 제임스 그란트의 아들 제임스 ‘더 메이저’ 그란트(James ‘The Major’ 그란트)가 1872년 증류소를 물려받습니다. 메이저는 상당한 활동가였습니다. 아프리카에서 코끼리를 타며 호랑이 사냥을 즐겼고, 증류소에 2만 7천 평에 달하는 빅토리아식 정원 그랜트 가든(Grant Garden)을 만듭니다. 그랜트 가든의 작은 계곡에는 메이저가 숨겨 놓은 오크 통이 아직도 그 자리에 있는데, 메이저는 손님을 초대해서 그랜트 가든에서 산책한 후 자신이 숨겨놓은 위스키를 한 잔 대접했다고 합니다.

메이저는 스코틀랜드 하이랜드 최초로 자동차를 가지기도 한 얼리어답터였는데, 그는 하이랜드 증류소 최초로 글렌그란트 증류소에 전등 설비를 도입하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메이저는 글렌그란트의 증류기를 설계했습니다. 글렌그란트의 증류기는 키가 높은데, 이로 인해 증류된 증기 중 가벼운 요소만이 증류기를 빠져나가고 무거운 요소는 가라앉습니다. 또 메이저는 증류기에 정수기(Purifier)를 설치했습니다. 정수기는 증류기 내부의 증기가 빠져나가는 암(Arm) 부분에 설치되는 냉각 장치입니다. 증기의 무거운 요소는 정수기에서 액화되어 다시 증류기 내부로 흘러 들어갑니다. 메이저의 발명으로 글렌그란트의 가볍고 산뜻한 특성이 완성되었습니다.

글렌그란트 12년

Glass, Bottle and Box Front

글렌그란트 12년은 진한 호박색을 띕니다. 하이랜드 파크 12년보다는 노란빛이고 글렌드로낙 포그 10년보다는 덜 진합니다.

43%의 알코올 도수가 의식됩니다. 🍯꿀 냄새, 🍊귤 마멀레이드 향기, 🍎사과 향, 뭔가 아삭아삭한 과일이 연상되는 상큼한 풀 내가 납니다. 아마 글렌그란트 12년의 캐릭터라는 🍐서양 배 향기이겠지만, 먹어보질 않아서 확실하지 않습니다. 옅은 🍦바닐라, 호두나 아몬드가 떠오르는 🥜견과류 기름 냄새에 마른 흙내가 묻어 있습니다. 진득한 느낌이지만 꿉꿉한 포도 향기가 나는 셰리 오크 통 숙성 위스키와는 다른 느낌입니다. 버번 숙성 오크 통을 사용했는지 🍬캐러멜 향기가 있습니다. 한번 스월링하면 이 모든 향내는 다시 꿀, 귤, 사과의 산미에 덮입니다.

Glass, Bottle and Box Side

꽤 스파이시합니다. 🍎사과잼의 상큼 달큼한 맛과 스카치 캔디의 떨떠름한 맛이 함께 느껴집니다. ☕커피, 계피, 흑후추가 한꺼번에 지나갑니다. 그럼에도 전체적인 분위기는 밝고 화사한 편입니다. 꿀, 과일과 견과류 맛이 감미로운 균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피니쉬 시원한 스파이시, 계피 향이 있습니다. 부드럽지만 확실한 질감을 가지고 녹아내려 갑니다.

하루를 산뜻하게 마무리하는 데일리 위스키

Bottle Side

가벼운 위스키는 자칫 특색 없고 심심한 술로 받아들여질 수 있습니다. 글렌그란트 12년은 이런 불신에 정면으로 맞부딪칠 수 있는 몇 안 되는 위스키입니다. 글렌그란트 12년의 맛과 향은 좋은 밸런스에 명료한 방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무게감은 가벼워 마시는 내내 지치지 않고 즐길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글렌그란트 12년은 최고의 데일리 위스키 중 하나로 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바빴던 하루를 좋은 기분으로 마치고 싶다면, 글렌그란트 12년은 뉘엿뉘엿 저물어가는 여름 저녁노을과 멋지게 페어링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