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사람들의 생기, 블랙 앤 화이트와 핫토디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염세주의가 뚝뚝 떨어지는 글은 좋아하시나요? 피츠제럴드의 화려한 이야기에 담긴 촉촉한 문체는요? 이언 플레밍의 어드벤쳐 소설이 취향일 수도 있습니다.

세 작가의 문학에 닮은 점을 찾기란 불가능할 듯 보입니다. 놀랍게도 이것들에는 한 위스키가 공통으로 등장합니다. 이들의 작품뿐만 아니라, 20세기 많은 글과 영화에 모습을 드러내는 스카치 위스키, 블랙 앤 화이트(Black & White)가 그 주인공입니다.

Bottle 1

제품 블랙 앤 화이트(700mL)
분류 블렌디드 스카치 위스키
생산지 스코틀랜드
알코올 40%
가격 15,900원(롯데마트)

하원의원의 술에서 2마리 테리어까지

블랙 앤 화이트의 창시자 제임스 뷰캐넌(James Buchanan)는 캐나다의 스코틀랜드 이민자 가족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성인이 되어 영국으로 돌아온 그는 5년간 맥킨레이(Mackinlay)에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친구와 함께 블렌디드 위스키 브랜드를 세웠습니다.

Bottle 2

달위니(Dalwhinnie), 클리넬리쉬(Clynelish), 그리고 오늘날 싱글톤으로 유명한 글렌둘란(Glendullan) 증류소에서 나온 위스키를 블렌딩했습니다. 뷰캐넌의 위스키는 즉각 명성을 얻었습니다. 출시 1년만인 1885년에 하원의원 전용 바(영국 의회에는 바가 있습니다)에 납품될 정도였습니다. 이즈음 뷰캐넌은 술의 이름을 하우스 오브 커먼스(House of Commons)로 바꿉니다. 이 술은 13년 후 로얄 워런트를 받습니다.

Bottle 3

1902년에 위스키의 이름은 다시 한번 바뀝니다. 뷰캐넌의 술은 검은 유리병에 새하얀 라벨이 붙어 눈에 띄었습니다. 사람들은 하원 1병 달라고 하는 대신, 저 까맣고 하얀 거 하나를 달라고 말했습니다. 결국 공식적인 이름도 블랙 앤 화이트가 되었습니다. 라벨의 두 마리 테리어는 그전에 탄생했습니다. 뷰캐넌은 경마에 나가는 말을 키우고 에든버러 대학에 동물 사육 연구 기금을 내놓을 정도로 상당한 동물 애호가였습니다. 1890년대의 어느날 그는 도그쇼를 관람하고 나서 까만 스코티시 테리어와 웨스트 하이랜드 화이트 테리어가 나란히 앉은 라벨을 만들었습니다.

Bottle and Glass 1

블랙 앤 화이트는 전 세계에서 팔리며 승승장구했습니다. 1907년에는 일본 황실에서 구매할 정도였습니다. 1909년에 이르자 블랙 앤 화이트는 영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블렌디드 위스키가 되었습니다. 국적을 넘나드는 인기 덕분에, 이 시기 여러 문학 작품에는 블랙 앤 화이트가 등장합니다.

블랙 앤 화이트는 그 당시 마찬가지 유명세를 떨쳤던 스카치 브랜드인 듀어스(Dewar’s), 조니 워커(Johnnie Walker)와 쟁쟁하게 경쟁했습니다. 뷰캐넌은 자신의 회사와 듀어스, 조니 워커를 합병하고자 했지만 실패하고, 1915년에 듀어스와 합병하는 데 성공합니다. 10년 후에 이 세 회사는 모두 디스틸러스 컴퍼니(Distillers Company)에 인수되었습니다. 디스틸러스 컴퍼니는 후에 기네스가 인수하고, 지금의 디아지오(Diageo)가 됩니다.

블랙 앤 화이트

Glass and Zigger

밝고 부자연스러운 노란빛입니다. 스월링하면 얇고 투명한 레그가 자잘하게 내려옵니다. 가볍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막 잔에 따른 블랙 앤 화이트에서는 강한 알코올 냄새와 레몬 껍질의 시트러스한 향이 치는 듯 올라옵니다. 잠잠해지기를 기다리면 물렁물렁한 복숭아에서 나는 단내가 등장합니다. 미약한 스모키, 한약재 냄새가 바닥에 깔려 있습니다. 매실청의 청아한 향기, 올리브 같은 산뜻한 느낌도 있습니다. 그러나 전반적인 향은 가볍고 약합니다.

Bottle and Glass 2

알코올 자극이 훅 들어옵니다. 스파이시한 감각이 맛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계피, 민트의 분위기도 얼핏 느껴집니다. 다크 초콜릿의 쌉쌀함이 있습니다.

피니쉬 향과 맛처럼 피니쉬도 가볍습니다. 의외로 오일리한 느낌은 오래 남습니다. 오렌지 껍질처럼 쓰고 향긋한 피니쉬입니다.

Glass

니트로 마셨을 때 고개가 갸웃거려 물을 좀 섞어 마셔봤습니다. 그나마 있던 과실 캐릭터는 죽어버리고 알코올와 약간의 향신료 풍미만 남아버려 조화가 완전히 깨져버렸습니다.

온더락으로 마시면 알코올 기운은 많이 눌리겠지만 얕은 향도 날아가 버릴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럼 따뜻하게 마시면 되지 않을까? 갑자기 든 생각이었습니다.

블랙 앤 화이트 핫토디

핫토디(Hot Toddy)는 가장 오래된 핫 칵테일 중 하나입니다. 레몬, 꿀, 그리고 시나몬을 비롯한 향신료를 넣어 만드는 이 칵테일은 와인의 뱅쇼처럼 오랫동안 민간요법의 약으로 쓰였습니다.

Ingredients

핫토디 레시피

준비물 : 위스키 60mL, 휠 모양으로 자른 레몬 1 슬라이스, 즙을 내기 위한 레몬 반쪽, 꿀(혹은 흑설탕, 메이플시럽) 1스푼, 시나몬, 정향 등의 향신료

Honey

  1. 따뜻한 물로 컵을 덥힙니다. 이때 물의 양은 위스키의 4~6배가 되도록 합니다.
  2. 꿀을 넣고 잘 녹입니다.
  3. 레몬즙과 위스키, 시나몬을 넣고 잘 젓습니다.

Mixture

원래 아는 맛이 맛있는 법이죠. 레몬과 시나몬이라는 증명된 조합과 함께 섞자 블랙 앤 화이트의 쿡 찌르는 알코올 향은 사라졌습니다. 입에서는 가볍고 산뜻한 존재감만 느낄 수 있지만, 속으로 들어가니 역시 따뜻합니다.

Hot Toddy

평범하나, 생생한

부모의 나라로 돌아온 이민자가 만든 위스키. 로얄 워런트 이전에 하원에 들어갔던 술. 향과 맛보다는 라벨의 두 마리 강아지가 더 인상적인 블랙 앤 화이트는 분명 가장 고급지거나 맛있는 스카치는 아닙니다. 그렇다고 쉽지도 않은 술입니다. 다듬어지지 않은 듯 튀는 블랙 앤 화이트의 인상은 예술가들의 관심을 끌 만한 자격이 있어 보입니다. 탄생한 지 몇 세기가 넘은 이 위스키가 젊어 보이는 데에는 이 술을 마시는 ‘보통’ 사람들의 생기가 엿보이는데 까닭이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