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능 집사 같은 아마레또, 디사론노

Main Shot

어디에 내놓아도 눈에 띄는 큼직한 네모 병. 누구에게나 디사론노의 첫인상은 비슷할 겁니다. 그런가 하면 디사론노에는 위스키, 커피, 아이스크림까지 두루 어울리는 독특한 매력이 있습니다. 제과 재료로 쓰이기도 하죠.

그런데 이렇게 여러 재능을 가진 디사론노, 어떤 리큐르인지 아시나요? ‘사론노’가 마을 이름이라는 건 아시나요? 달콤한 디사론노 한잔과 함께 재미있는 뒷이야기 몇 가지를 알아보겠습니다.

  • 아마레또와 디사론노, 차이가 뭘까요?
  • 병은 왜 이렇게 생겼나요?
  • 아몬드 리큐르 vs 살구씨 리큐르, 디사론노의 정체가 뭘까요?
  • 영화 대부(The Godfather)와는 무슨 관계일까요?

Bottle 1

제품 디사론노(700mL)
분류 리큐르(아마레또)
생산지 이탈리아
알코올 28%
가격 35,000원(GS25 와인25+)

아마레또, 디사론노의 탄생

오래전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에서는 가정에서 갖가지 리큐르를 만들어 마셨습니다. 아마레또(Amaretto)도 그중 하나였습니다. 아마레또는 ‘쓰다’라는 뜻을 지닌 이탈리아어 ‘amaro’와 ‘약간’의 뜻을 가진 접미사 ‘-etto’의 합성어입니다. 이름의 유래는 아마레또의 원재료인 야생 아몬드, 비터 아몬드(Bitter Almond)로 추측됩니다. 이 아마레또 중에 가장 유명한 브랜드가 디사론노(Disaronno)입니다.

Bottle 2

아마레또의 탄생에 관한 이야기는 크게 2가지가 있습니다. 둘 다 이탈리아 북부의 사론노(Saronno) 마을을 배경으로 합니다.

하나는 1851년, 그 지역에서 아몬드 제과로 유명한 라사로니(Lazaronni) 가족이 발명했다는 이야기입니다.

By user:Laurom - 자작, CC BY-SA 2.5,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1887732

두 번째 이야기는 더 유명한데, 1525년, 마을의 성모 마리아 성소에 벽화를 그리기 위해 베르나르디노 루이니(Bernardino Luini)가 마을을 방문합니다. 이때 묵었던 여관 주인을 모델로 해서 마리아를 그렸고, 이에 주인은 직접 만든 리큐르를 루이니에게 선물했다는 것입니다. 이 술의 레시피는 세대를 걸쳐 내려오다가 레이나(Reina) 가족에게 전달됐고, 이것이 오늘날의 디사론노입니다.

눈치채셨겠지만, 디사론노의 ‘사론노’는 바로 이 마을 이름입니다. 실제로 2001년까지 디사론노의 본래 이름은 아마레또 디 사론노(Amaretto di Saronno), 사론노의 아마레또였습니다. 1960년대 아마레또가 미국을 비롯해 국제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하자 여러 아마레또 브랜드가 우후죽순 생겨났고, 디사론노는 브랜드의 오리지널리티를 위해 아예 이름에서 아마레또를 빼버린 것입니다.

디사론노

Cap

패키지 너비 10, 높이 15cm가량의 널직한 병입니다. 큼직한 직육면체 뚜껑이 눈에 띕니다. 표면은 졸졸 흐르는 시냇물의 물결처럼 자연스러운 굴곡이 져 있습니다.

디사론노는 원래 여타 양주처럼 원통형의 평범한 병에 담겨 팔렸습니다. 지금의 각진 네모 형태가 된 것은 1942년입니다. 이후 1970년대에 유리 공예로 유명한 이탈리아 베니스의 무라노(Murano)의 장인이 지금의 상징적인 디자인을 만들어냈습니다. 디젤, 베르사체, 모스키노…. 디사론노는 이탈리아 패션 브랜드와 종종 콜라보레이션하여 한정 제품을 판매하는데, 그렇지 않아도 눈에 띄는 병은 각종 패턴에 둘러싸여 화려함의 끝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Glass 1

잔에 옮겨 담으니 우선 눈에 띄는 건 긴 레그입니다. 다른 술과 비교해도 확실히 점도가 있습니다. 어두운 카라멜색이 그런 분위기를 부추깁니다.

계피, 체리, 신 향은 일절 허용하지 않는 꿉꿉한 단내가 지배적입니다. 물이 많아 꾸덕한 복숭아나 자두를 연상시키는 향도 얼핏 느껴집니다.

Glass 2

걸쭉한 액체가 입안 곳곳에 눅진눅진하게 달라붙습니다. 굉장히 달기 때문에 디사론노를 니트로 마시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향처럼 체리가 있습니다. 홍차의 풍미도 슬쩍 보입니다. 척 꼽을 수는 없지만 향신료의 뉘앙스도 있습니다.

피니쉬 디사론노의 진면목은 피니쉬에서 드러납니다. 맛에서는 전혀 느끼지 못했던 알코올 향이 한 박자 늦게 올라옵니다. 입안에서 알코올이 마르며 땅콩버터처럼 기름지고 고소한 풍미가 남습니다. 호두 케이크를 한가득 삼키기라도 한 듯 단순하지만 엄청나게 진한 견과류 향미가 혀 위에서 오랫동안 남습니다.

디사론노를 마셔보면 왜 이걸 아몬드 리큐르로 부르지 않으려는 사람이 있는지 이해할 수 없을 겁니다. 아몬드의 맛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디사론노의 재료로는 아몬드가 들어가지 않습니다. 디사론노의 주재료는 살구씨 오일입니다.

그런데 아몬드와 살구는 의외로 가까운 종입니다. 둘 다 벚나무 속에 속해 있고, 씨에 아미그달린이 고농도로 들어 있습니다. 아미그달린이 분해되면서 벤즈알데하이드를 만들어내고, 이것이 아몬드 특유의 맛과 향을 형성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디사론노를 어떻게 분류할지는 듣는 사람에 따라 조절하면 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몬드가 더 익숙하다면 그쪽으로, 살구씨를 더 많이 먹어본 사람이라면 이쪽으로 말입니다.

칵테일 갓파더

Glass and Jigger

디사론노의 풍미는 유일무이하지만, 한편으로 그냥 마시기에는 너무 과합니다. 그래서 은근히 잘 없어지지 않는 술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위스키 한 병만 있다면 얘기는 달라집니다. 단순하고 묵직한 한 잔의 칵테일 덕분입니다.

갓파더(Godfather)는 미국의 3부작 영화 대부와 동시대인 1970년대에 유행하기 시작한 칵테일입니다. 레시피가 무척 간단해 집에서 종종 만들어 마시기 편합니다.

갓파더 레시피

Dewars, Disaronno and Jigger

준비물 : 디사론노 15mL, 위스키 60mL, 오렌지 필, 시나몬 스틱

  1. 시나몬 스틱에 불을 붙이고 꺼서 연기를 냅니다. 서빙할 컵을 그 위에 뒤집어 연기를 배게 합니다.
  2. 믹싱글라스에 디사론노와 위스키, 얼음을 넣고 스터합니다.
  3. 컵의 연기를 한번 날리고 얼음과 함께 갓파더를 옮겨 담습니다.
  4. 오렌지 필을 쥐어짜 오일을 내서 컵에 문지릅니다. 가니쉬로 올려줍니다.

Godfather

전반적으로 묵직한 맛입니다. 디사론노의 단맛 때문에 위스키의 쌉쌀함은 비대해지고, 반대로 디사론노는 더 달아집니다. 그렇다고 두 술이 각기 따로 논다는 말은 아닙니다. 입안에서 굴려보며 어느 쪽에 집중할지 고민하는 것만으로도 쉽게 양극단의 풍미를 만날 수 있습니다.

이번에는 저번에 소개한 듀어스 12년을 써서 무게감을 적절히 맞춰 보았습니다. 반대로 라프로익이나 아드벡 같은 피트향이 강한 기주를 써서 센 펀치감을 즐기는 방법도 좋습니다.

Orange Peel

오렌지 필, 특히 시나몬 스틱을 이용한 잔 훈연은 꼭 해보시길 바랍니다. 파이 위에서 먹음직스럽게 구워진 오렌지를 연상하는 향이 무척 고급스럽습니다.

기주는 스카치가 정석으로 여겨지나, 사실 어떤 위스키라도 괜찮습니다. 그래서 그냥 먹기 힘든 저가 위스키를 빨리 해치우는데 디사론노가 상당한 도움을 주기도 합니다.

테너 가수 같은 리큐르

부담스러운 패키지, 느끼한 맛. 그러나 싫어하기란 어려운 술입니다. 이 대체할 수 없는 디사론노의 매력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요?

한잔 더 마시면서 고민해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