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을 깨우는 진한 상쾌함. 고든스 런던 드라이 진 & 진토닉
진(Gin)이 들어가는 칵테일만 당장 열 개는 넘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진 토닉, 진 리키, 진 피즈, 김렛, 마티니, 베스퍼, 네그로니…. 진은 칵테일에 쓰이는 대표적인 기주입니다. 특유의 솔향은 술자리 분위기를 고급스럽게 하는데 즉효가 있습니다. 이렇게 유명하지만, 진만 따로 마셔본 적은 있나요?
<지킬 박사와 하이드>에서 지킬 박사의 친구이자 그의 비밀을 밝혀내는 주인공 어터슨 변호사는 와인을 참고 진을 마시며 자기 절제력을 보여줍니다. 18세기 초 런던 서민에게 값싸게 풀린 진은 도시 전체를 취하게 만들어 진 크레이즈지(Gin Craze)라는 단어가 생길 정도로 큰 사회문제가 되었습니다. 절제와 방탕, 진은 대체 어떤 술일까요?
제품 | 고든스 런던 드라이 진(750m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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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 런던 진 |
생산지 | 영국 |
알코올 | 43% |
가격 | 22,000원(이마트) |
진과 런던 드라이 진
진은 주니퍼 베리(Juniper Berry; 노간주나무 열매, 두송자)의 풍미를 지닌 증류주입니다. 진은 제조 방식에 따라 크게 2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당화된 곡물을 증류해 만든 알코올을 주니퍼 베리와 기타 향신료를 넣고 재증류하는 방식으로 만든 증류 진(Distilled Gin), 그리고 재증류 없이 재료를 침전 시켜 향미를 우려내는 합성 진(Compound Gin)이 있습니다. EU 법령은 진의 최소 알코올 도수를 37.5%로 정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40%입니다.
진은 네덜란드에서 약으로 쓰인 술 예네버르(Jenever)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명예혁명 이후 영국에서 프랑스 브랜디를 포함한 수입 주류에 세금이 붙게 되고, 별도 허가 없이 진을 생산할 수 있게 되면서 진 소비는 폭발적으로 늘어납니다. 이 기간이 바로 진 크레이지입니다.
이런 영국의 수도 런던에서 만들어진 진은 하나의 특산물로 발전을 거듭해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런던 진은 리터 당 감미료가 0.1g 이하인 증류 진입니다. 같은 법령에서 리터 당 감미료 0.1g 이하를 조건으로 ‘드라이’라는 용어를 포함할 수 있도록 허가하고 있습니다. 결국 런던 진 = 런던 드라이 진인 것입니다. 여기까지 읽었다면 아시겠지만 런던 진의 생산지는 런던이 아니어도 됩니다.
고든스 진
초록 병에 담긴 내수용 런던 드라이 진과 다르게 수출용은 무색투명한 유리병입니다. 알코올 도수도 더 높습니다. 빨강, 노랑, 파랑 강한 색채의 라벨이 붙어 있습니다. 중앙에 멧돼지 옆얼굴이 그려져 있습니다. 고든스 진(Gordon’s Gin) 창업자 알렉산더 고든과 성이 같은 클랜 고든에 내려오는 이야기로, 클랜의 일원이 사냥에 나선 스코틀랜드 왕을 멧돼지로부터 지켰다는 일화에서 비롯된 트레이드 마크입니다.
지금은 세계 1위 주류 기업 디아지오에 속한 고든스 진은 1769년에 설립된 유서 깊은 브랜드입니다. 밀 증류액에 주니퍼 베리, 레몬, 오렌지 껍질, 고수 씨와 감초 등을 삼중으로 증류해서 만든 런던 드라이 진은 현재까지 제조법이 바뀌지 않은 스테디셀러입니다. 20세기 중반까지 고든스 진은 세상에서 가장 많이 팔린 진 브랜드였습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가장 좋아하는 진이었다고도 하죠. 이안 플레밍의 소설 <카지노 로열>에서 007 제임스 본드가 주문한 칵테일 베스퍼(Vesper)에도 고든스 진이 등장합니다. ‘Three measures of Gordon’s, one of vodka, half a measure of Ki na Lillet. Shake it very well until it’s ice-cold, then add a large thin slice of lemon-peel. Got it?’
고든스 런던 드라이 진
향 고든스가 투명하게 흘러내려 갑니다. 증류주로써 진이 갖는 가장 큰 장점은 향에 있습니다. 진하고 상쾌한 감귤 냄새가 향의 큰 부분을 이룹니다. 어렵지 않게 고수와 감초 등을 찾아 아침 해가 비쳐 들어오는 한약방의 모습을 그려낼 수 있습니다. 레몬, 오렌지, 라임, 시트러스한 향기가 좋은 균형미를 보여줍니다. 새벽이슬 같이 신선한 분위기가 눅진하고 달달한 약 냄새와 섞여 쉐리 오크에 숙성한 듯 꿉꿉한 향 비슷한 뉘앙스를 풍깁니다. 오이, 수박, 물 많고 아삭한 과일·채소 향이 납니다. 옅은 풀꽃 내음이 여기저기 묻혀 있습니다.
맛 니트로 진을 마시는 사람은 드물 겁니다. 진을 마셔보면 그 사실에 고개를 끄덕거리게 됩니다. 고든스에서는 감기약 맛이 납니다. 풍성한 향기에서 느껴졌던 아로마가 어느 정도 일관성을 주긴 하지만 알코올 맛에 묻힙니다.
피니시 알코올의 단맛 사이에서 시원하고 시트러스한 잔향이 남습니다.
진 토닉
진을 즐기는 방법이라고 한다면 역시 칵테일입니다. 진 토닉(Gin and Tonic) 오래된 역사를 자랑하는 클래식 칵테일입니다. 영국 동인도 회사의 군인은 인도의 말라리아를 예방하기 위해 퀴닌이 포함된 약 토닉 워터를 받았습니다. 퀴닌은 매우 쓰기 때문에 군인들은 곧 진, 설탕, 라임, 토닉 워터를 섞어 먹기 편하게 만들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진 토닉의 유래입니다.
진 토닉은 칵테일 중에서도 유난히 레시피의 자유도가 높습니다. 당장 컵부터가 그런데, 온더락 잔을 쓰든 하이볼 잔을 쓰든 무관하지만 국내에서는 후자가 더 많이 보이는 편입니다.
진 토닉은 잔에 재료를 차례로 쌓는 빌드 방식으로 제조됩니다. 얼음을 채워 칠링한 잔에 고든스 런던 드라이 진을 붓습니다. 진 토닉의 주재료인 진과 토닉 워터의 비율도 개인의 자유인데, 저는 1:3 정도로 만들어 보겠습니다. 고든스 45mL(1.5oz)를 넣습니다.
토닉 워터를 붓습니다. 탄산 손실을 줄이기 위해 바스푼에 비스듬히 흘려 붓습니다.
라임을 짜서 칵테일 위에 상큼한 주스 층을 만들어줍니다.
마지막으로 살포시 젓고 라임 조각을 넣어줍니다.
청명한 비주얼이 우선 시각적으로 만족스럽습니다. 라임의 상큼한 맛과 진의 떫고 복합적인 향미가 어우러져 가볍지만 얕지 않은 맛을 만들어냅니다.
밤을 깨우는 진한 상쾌함
고든스 런던 드라이 진은 고전적인 스타일로 입문에 가장 먼저 꼽히는 진이기도 합니다. 진이 무엇인가, 흥미가 생겼다면 한 병쯤 부담 없이 가져올 수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하나씩 세상의 즐거움을 섭렵해 나가는 것입니다. 투명한 잔과 투명한 얼음과 투명한 술. 생각만 해도 취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