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지 말고 섞어서. 마티니 엑스트라 드라이 & 드라이 마티니

포커 테이블, 브리오니 수트, 담배 연기, 스파이, 마티니. 유치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클래식 칵테일 마티니와의 첫 만남이 <카지노 로얄>이었다는 걸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형형색색 카지노 속에서 제임스 본드의 손에 들려 있던 차갑게 칠링된 칵테일 잔, 그리고 그 속의 드라이 마티니는 제가 본 영화에 등장하는 술 중 단연 가장 스타일리시했습니다.

Bottle 1

그런데 이건 뭘까요? 대문자로 큼직하게 MARTINI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 이 초록병. 칵테일 마티니의 레시피에 들어가면서 같은 이름인 베르무트 브랜드. 마티니입니다.

제품 마티니 엑스트라 드라이(750mL)
분류 드라이 베르무트
생산지 이탈리아
알코올 18%
가격 15,000원(GS25 나만의 냉장고 와인25+)

베르무트와 드라이 베르무트

Bottle 2

베르무트(Vermouth). 베르뭇, 버무스 혹은 버몬트로 불리는 술은 허브와 향신료, 기타 뿌리와 식물로 가향하고 숙성 전 브랜디 등의 알코올로 주정강화한 와인(Aromatized Fortified Wine)입니다. 와인에 허브와 향신료를 더하는 개념은 아주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것이기에 정확한 근원을 찾을 수는 없습니다. 다만 현대적인 베르무트는 17세기 후반 이탈리아 피에몬테 지방에서 기원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카르파노(Carpano), 친자노(Cinzano), 그리고 오늘 소개할 마티니 & 로씨(Martini & Rossi)처럼 오늘날까지 운영되는 베르무트 브랜드가 19세기 중반까지 줄줄이 이탈리아에서 탄생합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베르무트는 식사 전에 마시는 식전주(Apéritif)였습니다. 맨해튼, 네그로니, 마티니와 함께하며 칵테일의 재료로 활발하게 이용된 것은 1860년대 이후였습니다.

베르무트는 원재료가 되는 와인과 당도, 그리고 생산지에 따라 몇 가지 종류로 나뉩니다.

대표적인 베르무트 종류

  • 스위트 베르무트(이탈리안 베르무트, 레드 베르무트, 로소) : 붉은빛의 달콤한 베르무트. 전통적으로는 레드 와인으로 만들었으나 현대에는 화이트 와인을 쓰고 캐러멜 색소 등으로 색을 내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가향 및 주정 강화 전 설탕을 첨가합니다. 바닐라 향과 큰 바디감이 특징입니다.
  • 블랑(샹 베리 블랑), 비앙코(이탈리안 화이트 베르무트) : 투명한 색에 스위트 베르무트에 비해 더 강한 허브향, 더 약한 향신료 향을 지닙니다. 블랑에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비앙코는 블랑보다 더 향미가 강합니다.
  • 드라이 베르무트(프렌치 베르무트. 마르세유 드라이) : 투명한 색에 비교적 쌉쌀한 맛이 강한 베르무트. 설탕을 넣지 않습니다. 시트러스하고 플로럴한 향미가 특징입니다.

이 밖에도 노란 베르무트, 검은 베르무트, 정말 갖가지 베르무트가 와인의 종류만큼이나 존재합니다.

참고로 베르무트는 알코올 40도가 넘는 증류주처럼 상온에서 몇 년이고 보관할 수 있는 술이 아닙니다. 냉장 보관해야하고 개봉 후 한달 정도까지 버틸 수 있습니다.

Martini & Rossi와 마티니 엑스트라 드라이

Bottle 3

라벨 곳곳에 이탈리아어 ‘Dal 1863’(영어 : ‘From 1863’)이 적혀 있습니다. Martini & Rossi는 1863년 기업가 알레산드로 마티니(Alessandro Martini)와 약초학자 루이지 로씨(Luigi Rossi), 회계사 테오필로 솔라(Teofilo Sola)가 Martini, Sola & Cia라는 이름으로 회사를 차린 후 1879년 테오필로 솔라 사후 바뀐 이름입니다.

Martini & Rossi는 국내에서 비교적 쉽게, 또 저렴하게 구할 수 있는 베르무트 브랜드입니다. 드라이 베르무트인 마티니 엑스트라 드라이 외에도 여러 베르무트를 다루고 비터, 스파클링 와인도 판매하고 있습니다.

Glass

마티니 엑스트라 드라이를 잔에 옮겨 담습니다. 매우 옅은 노란빛이 투명한 술에 섞여 있습니다.

투명하게 생긴 술에서 화이트 와인 향기가 나서 놀랐습니다. 드라이한 와인에서 흔하게 맡을 수 있는 쌉쌀한 포도 껍질 냄새가 향기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물에 씻은 자두, 앵두의 반질반질한 표면에서 풍기는 신선하고 약간 시큼한 듯한 향이 은은합니다. 레몬을 넣은 크림 같은 느낌이 있습니다. 알코올 도수가 낮은 만큼 알코올 부즈는 튀지 않습니다.

이번에도 중심은 와인입니다. 고소한 빵과 달큼한 포도 알맹이가 맛의 초반을 이룹니다. 앵두, 우유, 딸기, 치즈. 과일의 새콤달콤함과 유제품의 부드러운 풍미가 번갈아가며 어우러집니다. 가벼운 쓴맛이 혀끝에서 미끄러집니다. 토닉 워터에서 느껴본 쌉쌀함입니다. 다른 사람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좀 더 풍성해진 매화수를 마시는 기분이었습니다.

피니쉬 마티니 엑스트라 드라이는 약간의 텁텁함을 남기고 입안에서 사라집니다. 피니쉬는 드라이한 와인과 비슷합니다. 포도씨를 깨물었을 때처럼 향긋하지만 씁쓸한 뒷맛입니다. 침이 고입니다.

드라이 마티니

A Cup of Dry Martini

드라이 베르무트하면 역시 드라이 마티니를 빼놓을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드라이 마티니는 진, 드라이 베르무트, 레몬 필 혹은 올리브 가니쉬로 이뤄진 칵테일입니다.

클래식 칵테일 마티니는 긴 역사에 불분명한 기원을 지녔습니다. 진, 스위트 베르무스, 마라스키노(체리 리큐르), 오렌지 비터로 구성된 칵테일 마르티네즈에서 유래됐다는 설, 그리고 Martini & Rossi에서 이름을 따왔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Dry Martini and Ingredients

바에서 열 명의 단골이 마티니를 주문한다면, 열 잔에 든 진과 베르무트의 비율은 모두 다를 겁니다. 20세기 초 가장 대중적인 마티니 속 진과 베르무트의 비율은 2:1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3:1, 4:1, 15:1, 100:1 점점 진의 비율이 늘어났습니다. 베르무트를 아예 넣지 않는 처칠 스타일 같은 것도 있습니다.

Martini & Rossi 웹페이지에서는 진과 베르무트의 비율이 10:3인 마티니를 소개하고 있지만, 이번에는 비율을 6:1로 정한 국제바텐더협회 IBA의 레시피를 따라보기로 했습니다.

드라이 마티니 만드는 법

  1. 얼음으로 반절 채운 믹싱글라스에 진 2oz(약 60mL), 드라이 베르무트 1/3oz(약 10mL)를 넣습니다.
  2. 스트레이트 업 : 잘 젓습니다.
  3. 스트레이너를 대고 칠링한 마티니 잔에 따릅니다.
  4. 올리브를 넣거나, 레몬 필을 비틀어 오일을 묻히고 가니쉬로 올립니다.

Dry Martini and Lemon Peels

저는 고든스 런던 드라이 진에 가니쉬는 레몬 필을 얹었습니다. 허브 향이 특히 뛰어난 두 가지 술이 만나니 향미가 뛰어납니다. 꽃, 약초부터 시트러스한 향에 이르기까지 범위가 넓은 향기의 파도가 넘실댑니다. 진의 함량이 높은 만큼 전반적인 맛은 쌉쌀합니다. 그렇기에 뒷맛으로 느껴지는 베르무트의 단맛이 도드라집니다.

괜히 한 잔이 아쉬워 바닥까지 털어 마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