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과 도전이 만든 진한 열대의 맛, 카발란 솔리스트 올로로소 셰리 싱글 캐스크 스트렝스

Bottle, Glass and Box

매년 1월 25일 스코틀랜드인은 번즈 나이트(Burns night 또는 Burns supper)라는 이벤트를 엽니다. 스코틀랜드의 국민 시인 로버트 번즈(Robert Burns)를 기리기 위해 그의 생일에 개최하는 행사입니다. 참여자는 번즈의 시에도 등장하는 전통 음식 하기스, 그리고 이에 곁들여 위스키를 연신 마시며 밤을 보냅니다.

2010년, 영국의 언론사 타임스(The times)는 번즈 나이트를 기념해 위스키 블라인드 시음회를 기획합니다. 라벨을 가리고 순수하게 맛만으로 대결을 붙여보자는 것이었죠. 신진 브랜드, 과대평가된 위스키. 이런 것을 기대했을 겁니다.

결과는 완전히 예상 밖이었습니다. 10년 이상 숙성을 거친 쟁쟁한 스카치 위스키를 제치고, 3년 정도밖에 숙성하지 못했을 대만의 신생 증류소가 만든 위스키가 1등을 차지했습니다. 바로 카발란(Kavalan)입니다.

카발란 증류소, 카발란 위스키의 제조 과정을 카발란 솔리스트 올로로소 쉐리를 마시며 알아봅니다.

Bottle

제품 Kavalan Solist Oloroso Sherry Cask Strength(1,000ml)
분류 싱글 몰트 스카치 위스키
생산지 대만 이란 현
알코올 58.6%
캐스크 S151231069A
보틀 152/343

카발란 증류소

Kavalan Distillery

카발란 증류소, 출처: King Car Group

카발란 증류소는 대만 타이베이 남동쪽의 이란 현, 란양 평야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대만 원주민 말로 이란 현 지역을 부르는 말이 카발란입니다.

2002년 대만 WTO 가입으로 이전까지 국가가 독점해 왔던 주류 사업이 민간에 허용되자, 대만의 대표적인 음료 사업자 킹카(King car) 그룹은 회장 리 티엔 차이(Li Tiancai)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2005년 상술한 위치에 증류소를 짓기 시작해 9개월 만에 완공합니다.

대만은 기후는 스코틀랜드와 달리 고온다습합니다. 이런 날씨에서 알코올은 빨리 증발합니다. 대만의 연간 알코올 증발량은 10~15%대로, 1~2%에 불과한 스코틀랜드와 비교도 할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은 까닭에 대만에서는 제대로 위스키를 숙성할 수 없다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반대 의견을 가진 사람도 있었습니다. 증발 속도가 빠른 만큼 숙성 속도도 압축시킬 수 있다는 겁니다. 짐 스완 박사(Dr. Jim Swan)이 대표적입니다. 그는 제자 이안 창(Ian Chang)과 함께 이 신생 증류소의 키를 잡았습니다.

첫 증류는 2006년 3월 11일이었습니다. 네 해도 지나지 않아 앞서 쓴 일화가 있었으니, 성과를 보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은 셈입니다. 짐 스완은 자신의 이론을 증명했습니다. 이후 카발란은 라인업을 한둘 씩 추가하면서 전 세계의 트로피를 수집하기 시작합니다.

제조 과정 특징

비주류 생산지인 데다 실험 정신도 있는 카발란의 위스키 조주 과정에는 다른 증류소에서는 찾기 힘든 점이 있습니다. 여러 가지지만 4개만 뽑아보겠습니다.

발효 과정에서 복수의 효모를 함께 사용합니다. 발효를 마치고 증류에 들어가기 전 몰트 원액은 8도로 높은 편입니다. 이 같은 조건으로 카발란 특유의 풍부한 열대 과일 풍미가 만들어집니다.

STR

STR 공정 중 리차링, 출처: King Car Group

후술할 라인업 소개에서 확인할 수 있겠지만 카발란은 다양한 캐스크(Cask; 숙성 시 술을 담는 오크통)를 활용합니다. 이때 일부 캐스크(특히 와인 캐스크)는 STR 공정이라는 후처리를 거쳐 더 조화로운 풍미를 낼 수 있도록 합니다. STR 공정은 Shaved, Toasted, Re-charred의 약어로, 캐스크가 이전에 담았던 술을 과하게 머금었을 때 내부를 깎고 태워 나쁜 향미를 만들 수 있는 부분을 제거하고 새로운 풍미를 형성할 수 있도록 하는 과정입니다.

스코틀랜드의 증류소처럼 숙성 중인 캐스크를 뉘여 보관하지 않고, 세워 놓습니다. 지진이 잦은 대만 지리 특성 때문입니다. 연구 결과 두 방식의 결과 차이는 크지 않았다고 합니다.

5층짜리 대형 숙성고는 여름에 밀폐하여 최대 속도의 숙성을 유도하고, 겨울에는 바람이 들어오게 해 속도를 늦춥니다. 여름에는 숙성고 상층은 42도, 하층은 27도까지 온도 차이가 벌어지는데, 이를 이용하여 상층에는 큰 캐스크를, 하층에는 작은 캐스크를 배치하여 전반적인 숙성 속도를 맞춥니다. 전체 숙성 기간은 스카치에 비해 짧습니다. 카발란은 NAS(숙성 연수 미표기)로 제품을 냅니다.

카발란 증류소의 위스키 라인업

2024년 공식 홈페이지 기준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면세, 기념 시리즈는 제외되었습니다.

  • 코어(Core) 시리즈
    • 클래식(Classic): 최초의 제품이기도 합니다.
    • 콘서트마스터(Concertmaster)
      • 포트(Port) 캐스크 피니쉬
      • 셰리(Sherry) 캐스크 피니쉬
    • 디스틸러리 셀렉트(Distillery Select)
      • No. 1
      • No. 2
    • 싱글 배럴
      • 와인 오크
      • 포트 오크
      • 엑스-버번(ex-Bourbon) 오크
      • 올로로소(Oloroso) 셰리 오크
  • 캐스크 유니온(Cask Union)시리즈
    • 트리플 셰리 캐스크
  • 솔리스트(Solist) 시리즈: 다른 캐스크의 내용물과 블렌딩하지 않고 물도 희석하지 않은 싱글 캐스크 스트스(Single Cask Strength) 제품입니다.
    • 비노 바리끄(Vinho Barrique)
    • 엑스-버번
    • 올로로소 셰리
    • 피노(Fino) 셰리
    • 브랜디
    • 포트
    • 아몬틸라도(Amontillado) 셰리
    • 만사니야(Manzanilla) 셰리
    • PX 셰리
    • 모스카텔(Moscatel) 셰리
  • 디스틸러리 리저브(Distillery Reserve) 시리즈: 리필 캐스크를 숙성에 사용한 제품입니다.
    • 피티드(Peated)
    • 럼(Rum) 캐스크
    • 마데이라(Maderia) 캐스크

카발란 솔리스트 올로로소 셰리 싱글 캐스크 스트렝스

Box

카발란 솔리스트 올로로소 셰리 싱글 캐스크 스트렝스는 셰리의 한 종류인 올로로소를 담은 캐스크를 사용하여 숙성을 거친 위스키를, 물을 희석해 도수를 조절하거나 다른 캐스크의 술과 블렌딩하여 맛을 일정하게 만들지 않고 캐스크에 있던 상태 그대로 병입한 제품입니다.

박스에는 굵고 현대적인 서체의 타이틀 위로 카발란 증류소의 입면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아래로 셰리프 영문, 한문, 필기체까지 이어집니다. 적색 배경에 금박. 촌스러울 법도 한 조합인데 묘한 무게감이 있습니다.

Box Open

Box Opened

박스를 여니 보틀이 나옵니다. 싱글 캐스크 스트렝스 위스키답게 캐스트와 보틀 일련번호가 적혀 있습니다.

캐스크 S151231069A에서 343개의 보틀이 나왔고, 그중 152번째라는 뜻입니다. 공식은 아니지만 캐스크 일련번호를 읽는 방법이 있는데요, ‘S / 15 / 12 / 31 / 069 / A’식으로 끊어서 (20)15년 12월 13일에 숙성을 시작한 캐스크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제품 같은 경우 생산 연도가 2023년 3월 6일이니, 6~7년간 숙성한 위스키라고 볼 수 있습니다.

Bottle and Glass

겉보기 진한 나무 진액, 루비색입니다. 스월링하니 얇고 넓은 레그가 끈적하게 오래 남습니다. 어느 정도 에어링된 이후에는 레그 내려가는 속도가 빨라지지만, 여전히 느린 편입니다.

진득한 건포도 향, 신맛이 적은 꾸덕한 살구잼 같은 향기가 풍깁니다. 졸인 과일이나 와인의 꿉꿉한 뉘앙스도 있습니다. 그에 반해 바닐라 향 계열은 전무합니다. 묽거나 실키한 느낌도 없습니다. 크림보다는 흑설탕 쪽의 단내가 납니다. 58.6도라는 도수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부즈가 적습니다.

Glass

단숨에 혀가 뜨거워집니다. 포도, 멜론, 달콤한 과일 맛. 백합처럼 무게감 있는 꽃향기도 있습니다. 조청, 계피, 타피오카 펄의 씁쓸한 뒷맛처럼 눅진한 향신료 풍미가 납니다. 전반적으로 맛의 볼륨이 큽니다.

피니쉬 계피 계열의 향이 가장 크고 오래 남습니다. 백주 같은 쌉쌀 짭쪼름한 장류 향미과 함께 휘발성의 냄새가 있습니다. 입안과 목구멍에 남는 자극은 생각보다 강하지 않습니다.

총평

Bottle, Glass and Cork

카발란 솔리스트 올로로소 셰리 싱글 캐스크 스트렝스는 화려함과 부피감 모두 충족시켜 주는 만족스러운 위스키입니다. 스카치와 버번이 각각의 카테고리로 나뉠 수 있듯, 대만 위스키도 하나의 카테고리로 자립하기에 부족함이 없다는 점을 알게 해준 술이기도 합니다.

카발란은 스카치 위스키의 문법과 많은 부분에서 다릅니다. 전통도 역사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생생합니다. 카발란의 시행착오는 기록으로나 접할 수 있는 먼 옛날얘기가 아니라 당장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입니다. 함께 나이를 먹을 수 있는 증류소가 있다는 건 좋은 일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