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닿지 않는 그곳. 범우문고 <설국>

몇 해 전에 속초로 여행을 갔습니다. 장마가 시작하는 시기였습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는 그날 아침도 살근살근 비가 내렸습니다. 차 시간까지 밖에서 돌아다니기도 뭐해서 서점을 찾아 들어갔습니다. 초등학교 건너편 꽤 크기가 있는 독립서점이었습니다. <설국>을 다시 읽고 구매까지 한 곳은 거기였습니다. 이미 읽은 책에 박한 저로서는 흔치 않은 변덕이었습니다. 그날은 아침부터 습하고 더웠습니다. <설국>을 찾기 전에는 헤밍웨이의 마지막 인터뷰였던가 그런 내용의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남색 리넨 셔츠가 갑갑했던 기억이 남아있습니다. 저는 그 모든 열기를 식힐 요량으로 <설국>을 고른 것입니다.

도서 설국(범우문고, 4판)
저자 가와바타 야스나리
역자 김진욱
출판사 범우사
분량 201쪽
가격 4,900원

도서 외형 - 고전은 심플하게

Front 1

여행지에서 고른 <설국>은 범우사의 범우문고였습니다. 범우사는 1966년 사업을 시작한 오래된 출판사로, 방대한 고전을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출판하는 회사입니다. 범우문고는 범우사를 대표하는 고전 시리즈입니다. 300권이 넘는 고전이 권당 5천 원도 안되는 가벼운 가격으로 판매되고 있습니다. 책의 수천 가지 가치 중 ‘지식의 공공화’라는 한 우물을 독보적으로 깊게 파고든 시리즈라고 볼 수 있습니다.

Front 2

무광 코딩된 푸른 테 표지는 군더더기 없는 디자인입니다. 푸른 바탕 테두리에 휘황찬란한 패턴이 다소 경박하지만 신경 쓰일 정도는 아닙니다.

Back

후면에는 작가의 이력이 간단히 적혀 있습니다. 이런 심플함이 범우문고의 큰 장점입니다. 범우문고는 누구인지도 모를 이름과 서평 서너 줄, 느낌표가 몇 개나 붙은 추천사를 배치하는 대신 책과 책을 쓴 저자에 집중하도록 합니다.

Size

범우문고의 크기는 110 * 174mm. 엽서보다 크고 A5 용지보다 작습니다. iPhone SE2와 비교해보면 위 사진과 같습니다. 세로가 약간 길지만 한 손으로 잡고 넘기기 편하며, 외투 주머니에 들어갈 정도는 됩니다.

개인적으로는 두꺼운 양장본도 아닌데 쓸 때 없이 판형이 큰 책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물론 분량이 따라주어야 하는 일이겠지만요. <설국>을 사고 범우문고의 다른 책도 몇 권 구매해봤는데 모두 두께는 약간씩 달랐지만 전반적으로 들고 읽기 편했습니다.

Index

책 속의 구성 역시 단순합니다. 머리말과 작가 연보가 앞뒤로 덧붙은 정도입니다. 고전 문학의 경우이니 본문 외에도 작품과 작가의 배경이나 읽을 만한 해설이 포함되어있다면 좋았겠지만 가격을 생각해서 그러려니 넘어갑니다.

Footnote

이름, 지명처럼 고유하거나 의미를 또렷할 필요가 있는 단어는 한자가 병기되어 있습니다. 각주는 보기 좋게 해당 쪽 하단에 적혀있습니다. 가끔가다 각주란 각주는 더덕더덕 달아놓고 설명은 책 맨 뒤쪽에 몰아 써놓는 책이 있습니다. 도저히 읽을 수 없는 것으로 본문의 표시는 장식에 가까운 각주입니다. 범우문고의 각주는 다행히도 깔끔하고 읽기 좋습니다. 약간 부족한 느낌이 있지만, 근대 소설이니만큼 읽는 흐름을 방해하지 않는 이 수준이 차라리 낫습니다.

글씨 크기는 보통에서 보통보다 약간 큰 정도로 읽기 좋지만, 그와 함께 책의 크기와 쪽수까지 같이 가져가려다 보니 행간이 부족합니다. 만약 인쇄물이 아니라 액정 위에 주르륵 펼쳐진 전자책이었다면 답답해서 금방 내려놓을 정도의 간격입니다. 그럼에도 범우문고의 심플해서 레이아웃은 고전을 담기에 더할 나위가 없어 보입니다.

<설국> 줄거리 - 단단한 관조의 렌즈에 비치는 아름답고 덧없는 상

Summary

<설국>은 주인공이자 관찰자 시마무라가 3년간 3차례 - 순서대로 초여름, 겨울, 가을 - 눈의 고장이기도 한 온천마을에 여행 와서 게이샤 고마코와 만나는 이야기입니다. 고마코는 장결핵에 걸려 고향으로 죽으러 돌아온 과거의 약혼자 유키오의 병원·요양비를 벌기 위해 게이샤 일을 합니다. 온천마을이 고향이긴 하나 술집접대부로 도쿄에 팔려가 오랫동안 떠나 있었기 때문에 타지에서 살듯 고독하게 생활하고 있습니다. 고마코의 ‘이상할 만큼 깨끗’한 인상은 시마무라에게 깊게 각인됩니다. 맑고 티없는 고마코의 이미지는 소설이 펼쳐지는 내내 꾸준하게 강조되어 이상적인 존재를 대변하게 됩니다. 그와 동시에 사적인 비극에 복잡미묘한 감정을 드러내는 인간적인 인물이기도 합니다.

고마코는 이미 죽은 유키오 어머니의 집에서 유키오와 함께 삽니다. 누에를 쳤던 다락방에서 손님처럼 생활합니다. 이 집에는 여자 한 명이 더 있기 때문입니다. 유키오의 새 연인으로 병든 그를 도쿄에서 데려온 이, 요코입니다. 소설 초반부 한겨울 온천마을로 가는 기차에서 시마무라는 요코를 처음 만납니다. 정확히는 관찰합니다. 더더욱 정확히 말하자면, 흐릿하게 기차 내부를 비추는 창문을 통해서 그녀를 곁눈질합니다. 시마무라는 유키오를 극진하게 간호하고 있는 요코의 눈과 저녁이 되어 등불 켜진 바깥 풍경이 겹치는 찰나의 장면에 신비와 아름다움을 느낍니다. 다만 바라볼 뿐이고, 그마저도 제대로 된 응시라고도 볼 수 없는 시마무라의 행동은 서술자로서 작품을 진행하는 동안 곳곳에서 드러납니다.

소설의 시점은 시마무라가 온천마을을 두 번째로 방문하는 겨울로부터 시작합니다. 이 여행 기간 시마무라는 샤미센을 아름답게 연주하는 고마코, 연회장에 나갔다가 술에 취해 새벽에 자신을 찾아온 고마코, 유키오와의 사정을 이야기하는 고마코와 만나며 그녀와 가까워집니다. 죽기 전이나 다름없는 유키오와의 관계는 이미 일그러져 고마코가 유키오를 위해 애쓰는 모든 일이 부질 없다고 여기는 시마무라였지만, 그럼에도 그는 그런 고마코에게 높이 있는 무언가를 올려다볼 때의 아름다움을 느낍니다. 동시에 대화 한번 나누지 못했지만 진한 인상을 주고 있는 요코를 계속 신경쓰는 모습을 보입니다. 이 모든 감정에도 여행자라는 자신의 위치를 바꾸지 못한 시마무라는 언제까지고 있어 봤자 그들을 어찌할 수 없다는 생각에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려고 합니다. 고마코와 함께 돌아가는 기차를 기다리던 때, 집에 있는 유키오가 위독해졌으며 고마코를 찾고 있다며 요코가 달려옵니다. 그러나 고마코는 손님을 배웅하는 중이라고 고집을 부리며 유키오를 보러 가지 않습니다. 놀란 시마무라가 고마코를 설득해보지만 그녀는 사람이 죽는 걸 보기 싫다며 거부합니다. 고마코의 말은 차가운 박정 같이도, 뜨거운 애정 같게도 들렸기에 시마무라는 끝내 그녀를 돌려보내지 못합니다. 기차가 들어오고 겨울이 끝납니다.

다음 해 가을 시마무라는 다시 고마코를 찾습니다. 유키오는 결국 죽었습니다. 고마코와 몇 번의 밤을 함께 지낸 시마무라는 그녀와 더욱 가까워집니다. 요코는 유키오 사후 메밀밭 밑에 있는 그의 무덤에서 거의 살다시피 합니다. 시마무라는 그런 요코와, 그녀와 고마코의 사이에 관해 대화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시마무라는 누구보다도 가까이서 고마코와 요코의 애처로운 관계를 관찰하고 있지만, 어떤 일도 하지 못하고 그저 바라만 보고 있습니다. 이는 시마무라가 하고 있는 서양 무용 학술 작업과도 비슷한 모습입니다. 시마무라는 언젠가 프랑스 작가의 무용론을 번역·출판하면서 지금의 일본 무용계에 어떤 영향도 미치지 못할 저서라고 스스로 평가내립니다. 도리어 이런 무용함이 시마무라를 안심시킵니다. 고마코의 애절한 접근이 시마무라로 하여금 살아가는 감각을 잃게 합니다. 겨우내 고마코가 머물렀던 누에 치는 방의 누에고치처럼, 시마무라는 자신 속에 갇혀 자신의 어떤 것도 고마코에게 전해지지 않는다는 생각을 합니다. 결국 시마무라는 고마코를 떠나기로 마음먹습니다. 그러나 실천하는 건 쉽지 않습니다. 몇 차례의 방황 후 시마무라는 온천마을로 돌아옵니다. 그때 영화를 상영하고 있던 누에고치 창고에서 불이 납니다. 구경하러 갔던 시마무라와 고마코는 그곳에서 요코의 추락을 목격합니다. 시마무라는 요코의 얼굴을 비추는 화재 현장의 불길에서 그녀를 처음 관찰했을 때 봤던 저녁풍경의 등불을 떠올립니다. 허나 그때 느꼈던 신비로움은 없고 대신 애절한 고통과 비애가 남아 있습니다. 고마코가 달려나가 요코를 안아 듭니다. 시마무라는 비틀거리며 이 모든 순간을 바라봅니다. 그윽한 가을 하늘 은하수에 그의 몸이 빨려 올라가는, 허무한 기분을 끝끝내 받고야 맙니다.

해석/저자에 대하여 - 설국은 봄이 오지 않는다

<설국>의 시마무라는 절대 행동하는 주인공이 아닙니다. 그 때문에 주인공이 무언가 위기를 맞고 그것을 해결하고자 동분서주하는 일반적인 형식의 소설에 익숙한 독자라면 <설국>의 구성이 낯설 수 있습니다. 서술 방식도 독특합니다. 시마무라의 1인칭 서술은 다른 누구의 시각도 개입하기를 허락지 않습니다. 사실상의 주인공인 고마코의 말과 행동도, 언뜻 보기에 이야기와 무관해 보이는 아름다운 풍경의 묘사도 전부 시마무라의 소유입니다. 서술이 시마무라의 것이지만 이야기 자체가 그의 것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시마무라는 고마코와 요코 사이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 그럴 엄두조차 내지 않고 - 담담히 바라만 봅니다. 그들의 비극과 미는 시마무라의 시선 속에서 비현실적인 세계로 확장됩니다. 슬프고 아름다운 곳입니다. 그곳엔 신록이 짙은 여름, 추수가 끝나고 텅 빈 벌판의 가을, 밤의 밑바닥까지 새하얀 겨울은 있지만 눈이 녹고 생명이 부활하는 봄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세계를 비추어낸 <설국>의 상은 희극과 비극, 삶과 죽음마저 경계가 흐릿합니다. 그러나 그 부조리한 모습에는 분명한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습니다. 솔직히 신선한 시각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 익숙한 주제는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손에서 외과 수술을 하듯 정교하게 구성됩니다. <설국>을 읽는 동안 이 책이 아름다우며 환상적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 그 이면에 닿지 못할 듯한 감각이 드는 건 그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Yasunari Kawabata

모호한 경계성은 비단 <설국>에만 한정되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1899~1972)는 오사카에서 태어나 중학교 2학년이 되는 1914년까지 순서대로 아버지, 어머니, 할머니, 누나, 할아버지까지 가까운 이들의 죽음을 끊임없이 지켜봐야 했습니다. 어린 나이에 축적된 비극적인 경험은 가와바타의 가슴 속 깊은 곳에 생사의 구분이 애매해진 흐릿한 세계관을 새겨놓았습니다. 그러나 가와바타는 부조리한 삶의 운명에 움츠러드는 대신 무척 냉엄한 시선으로 그것을 분석합니다. 거기서 찾아낸 차갑고 슬픈 미의식은 가와바타의 세계가 되어 1968년 일본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노벨문학상을 받기에 이릅니다.

높고 고고한 얼음 성

가와바타의 세계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A냐, B냐 하는 쉬운 선택지도 주어지지 않습니다. 의미가 실종되고 상징만 남은 흐릿한 그곳에서 저는 경이로움과 아름다움을 느낍니다. 하지만 그곳은 저와 떨어져 있습니다. <설국>에는 인간도 비극도 있지만 <설국>의 미는 차가운 눈길이 아니면 보이지 않습니다. 이 싸늘하고 뜨겁고, 가녀리며 단단하고, 휘몰아치되 잠잠한, 혼란뿐인 이야기는 죽음조차도 사고인지 자살인지 모호할 뿐인 작가의 손에 의해서 독자에게 흘러들어 갑니다. <설국>의 섬세함은 이렇게 우리를 매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