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렬하고 무력한 자들. 허밍버드 클래식 M <프랑켄슈타인>

너무나, 너무나 유명한 책들이 있습니다. <걸리버 여행기>, <오즈의 마법사>, <돈키호테>…. 이것들은 책 자체보다는 동화와 영화의 모습으로 우리와 가까워질 수 있었습니다. 그 때문에 잘 알고 있다고 여겼던 이야기가 막상 읽어보니 생소했더라는 경우도 빈번합니다.

<프랑켄슈타인>도 위의 범주에 속하는 책입니다. 시체를 엮는 미친 과학자와 목덜미에 나사가 박힌 인조인간과 흑백 영화 분위기의 오래된 성. 핼러윈 분장으로 친근하기로는 열 손가락 안에 꼽는 괴물의 이미지는 1931년 작 영화 프랑켄슈타인에서 비롯됐습니다. 그렇다면 원작은 어떨까요? 놀랍게도 책 속에는 낡은 인상을 덮어버릴 만큼 인상적인 서사가 있었습니다.

도서 프랑켄슈타인 - 혹은 이 시대의 프로메테우스(허밍버드 클래식 M, 초판)
저자 메리 셸리
역자 김하나
출판사 백도씨
분량 395쪽
가격 12,500원

도서 외형 - 고전에 덧씌운 현대적 껍데기

Front

<프랑켄슈타인>이 익명으로 처음 발간된 게 1818년, 메리 셸리(Mary Wollstonecraft Shelley, 1797~1851)의 이름을 내걸고 개정판이 나온 게 1831년이니 <오만과 편견>, <폭풍의 언덕>과 비슷한 나이의 고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유명한 고전은 여러 브랜드에서 출판하기 마련입니다. 내용은 같지만 출판사 각각이 추구하는 방향성이 구성, 판형, 디자인에 차이를 줍니다. 이런 개성을 비교해보는 것도 고전을 즐길 수 있는 좋은 방법의 하나입니다.

Hummingbird Classic M

이번에 고른 <프랑켄슈타인>은 백도씨의 허밍버드 클래식 M 시리즈입니다. 허밍버드 클래식 M은 고전 문학 전집 허밍버드 클래식의 서브 브랜드입니다. 뮤지컬과 오페라의 원작이 되는 서양 고전 문학을 골라 따로 소개하는 시리즈입니다. 뮤지컬이나 오페라를 보고 인상을 느낀 관람자를 고전 텍스트로 유입시킨다는 기획 의도 자체가 신기하지는 않으나 그런 의도가 실천된 사례를 보기 힘든 만큼 신선한 시리즈라고 생각했습니다.

Side

114mm * 184mm 판형에 적당한 두께감입니다. 한 손으로 넘기며 읽기에는 불편하지만 휴대가 어려울 정도는 아닙니다.

Pattern

이 책을 처음 봤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단연 표지 디자인입니다. 정숙한 채도의 색상에 독특한 조합이라고 여겨지는 발랄한 곡선의 나열이 인상적입니다. 패턴은 책의 3면에 걸쳐 창문처럼 드러나 있습니다. 패턴은 책 속 이야기의 말미에 주인공 빅터가 마지막 작업장으로 삼는, 자신이 떠나온 평온한 스위스의 풍경과 대조되는 황량하고 음산한 스코틀랜드 외딴섬 자갈밭 해변에 치이는 파도와 닮았습니다.

drpdrpdrp

이 매력적인 패턴 디자인은 디자인 스튜디오 드롭드롭드롭(drpdrpdrp)과의 콜라보레이션으로 탄생했습니다. 드롭드롭드롭은 식기, 의류, 커튼 등에 유니크한 패턴을 적용한 디자인 제품을 만들고 있습니다. 감각적인 패턴은 책 표지에도 잘 어울립니다. 드롭드롭드롭의 패턴은 허밍버드 클래식 M 시리즈의 1~3권,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 <오페라의 유령> 그리고 이 <프랑켄슈타인>에 적용됐습니다. 고전과 라이프스타일 브랜드의 조합, 새롭습니다.

Text

고유 명칭이나 글의 자연스러움을 위해 부분적으로 의역한 단어는 영어 원문이 함께 쓰여있습니다. 지명의 별칭, 다른 작품에 등장하는 용어처럼 생소한 내용은 친절하게 각주처리 되어있습니다.

Font

글씨 크기와 행간은 보통으로 읽기에 적당합니다. 약간 얇은 느낌이 있지만 읽기 힘들지는 않습니다. 다만 이야기에서 인물의 회고에 등장하는 편지 내용 등은 다른 글씨체를 사용해 내용을 구분하고 있는데, 탈 네모꼴에 얇은 글씨체를 써서 가독성이 떨어집니다. 이런 부분이 한두 번 나오는 것도 아니고 상당히 빈번하기 때문에 읽다 보면 꽤 피로하고 거슬립니다.

Illustration

삽화에 대해서도 넘겨짚고 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허밍버드 클래식 M <프랑켄슈타인>의 삽화는 1831년 원작의 속표지에 있는 것을 그대로 가져왔습니다. 테오도르 폰 홀스트 (Theodor Von Holst, 1810~1844)의 흑백 철판화에서 각기 다른 이유로 경악하는 두 인물의 심리는 명암의 강렬한 대비로 표현됩니다. 부족한 삽화는 아니지만 현대적인 스타일을 앞세우고 있는 허밍버드 클래식 M에는 어울린다고 보기 힘듭니다. (그마저도 판형에 맞춰 잘려져 있습니다.) <프랑켄슈타인>은 유명한 고전인 만큼 이미 많은 출판사가 여러 삽화로 작업을 마쳐 놓았습니다. 그중에서도 1934년에 출판된 책에 수록된 린드 워드(Lynd Kendall Ward, 1905~1985)의 삽화는 신체 비율을 기형적으로 그려낸 표현주의적 그림체와 목판화 특유의 분위기를 통해 인물의 격양된 감정을 효과적으로 표현합니다. 책의 스타일에 맞게 아예 새로 그리라고 요구하는 건 아니지만, 표지 디자인만큼 삽화 선정에도 신경을 썼더라면 더 좋은 책이 됐을 겁니다.

홀스트의 삽화에 대한 읽을거리 - Image of the Month: Theodore von Holst, ‘Frankenstein’ (1831)

<프랑켄슈타인> 줄거리 - 각자의 운명에 맞서는 창조주와 피조물

Title

음산한 11월의 어느 밤, 비 내리는 새벽 1시. 독일 바이에른의 대학도시 잉골슈타트(Ingolstadt). 주인공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자신의 숙소에서 생명을 탄생시킵니다. 해부실과 도축장에서 얻은 재료로 2년간 공을 들여 만든 생명은 빅터에게 성취감 대신 두려움과 역겨움만 안겨줍니다. 빅터는 자신의 피조물을 방치하고 밖으로 도망칩니다. 고향 제네바에서 찾아온 절친한 친구 앙리 클레르발과 함께 숙소에 돌아갔을 때 피조물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빅터는 안도하며 친구와 대학 생활을 보냅니다. 다음 해 5월, 고향의 아버지로부터 막냇동생 윌리엄이 살해당했다는 소식에 빅터는 급하게 귀향합니다. 빅터는 제네바에서 자신이 만든 괴물의 모습을 확인하고 직감적으로 괴물이 윌리엄을 죽였다고 여깁니다. 말 못할 무거운 비밀을 안고 집에 돌아가니 소꿉친구 쥐스틴 모리츠가 윌리엄 살해의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결국 쥐스틴은 처형되고, 후회와 공포에 떠는 빅터 앞에 괴물이 나타납니다. 괴물은 자신의 요구를 들어준다면 순순히 물러나고, 그렇지 않다면 소중한 사람들을 죽이겠다며 빅터를 협박하면서 애원합니다.

괴물은 탄생한 후 숲을 전진하고 마을 사람들에게 쫓기며 한 가난한 집 옆 폐축사에 머물게 된 사연을 이야기합니다. 펠릭스와 그의 약혼녀, 여동생, 늙은 아버지가 모여 사는 화목한 집을 엿보면서 괴물은 인간적 감정에 눈 뜨게 됩니다. 괴물은 가족과 함께하려고 하지만 흉측한 외견 때문에 내쫓깁니다. 도망친 숲에서 급류에 휩쓸린 소녀를 구해주지만 다른 남자에게 총을 맞기까지 합니다. 인간에 대한 증오심이 충만해진 괴물은 윌리엄을 만나고 그를 손쉽게 죽여버립니다. 여기까지 이야기한 괴물은 교감할 수 있는 상대를 만들어달라며 자신의 요구를 밝힙니다.

빅터는 심사숙고 끝에 제안을 수락하지만, 작업을 시작할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몇 주가 지나서야 겨우 결심을 세웁니다. 영국에 가서 작업을 끝내고, 홀가분하게 돌아와서 약혼자 엘리자베스와 혼인하기로 계획합니다. 영국에 도착한 빅터는 클레르발과 함께 몇 달 동안 여행하다가 곧 헤어져 스코틀랜드 최북단 오크니 제도의 외딴섬에 작업실을 얻습니다. 작업이 순조롭게 진행되던 도중빅터는 자신이 다시 한번 만들려는 이 존재가 인류에게 해가 될 것이라는 생각에 이제껏 작업하던 것들을 조각조각 찢어버립니다.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괴물은 절망하고 자신의 창조주를 저주합니다.

저주의 결과는 바로 다음 날 나타납니다. 빅터의 친구 클레르발이 아일랜드에서 시체로 발견됩니다. 충격을 받은 빅터는 발작하며 몸져눕습니다. 몇 달 후 겨우 고향을 돌아오지만, 불면증에 아편을 섭취해야 하고, 잠자리에 들어도 악몽에 시달리는 등 그의 상태는 비참해지기만 합니다. 빅터는 괴물의 동반자를 찢어버렸을 때 괴물이 자신을 협박했던 말, ‘네가 결혼식을 올리는 날 밤, 나도 네 곁에 있을 거라고.’를 떠올리면서 결혼식 날 밤 자신을 죽이러 찾아올 괴물을 대비하고, 결혼식을 준비합니다. 비록 동생도 친구도 괴물에게 잃어버렸지만 아직 엘리자베스가 있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다가올 대결에 마음을 단단히 먹습니다. 마침내 결혼식 날이 되었으나 아무 일도 없습니다. 첫날밤을 보낼 에비앙(Evian) 호숫가의 숙소에서 홀로 복도를 거닐며 밤을 보내도 괴물은 오지 않습니다. 그때 엘리자베스가 자러 간 방에서 처절한 비명이 들립니다. 빅터는 결국 괴물을 막지 못했습니다. 그는 절망 속에서 제네바로 돌아옵니다. 빅터의 늙은 아버지는 계속되는 비극에 버티지 못하고 죽습니다. 마침내 창조주는 그의 피조물과 같은 심정이 됩니다.

복수를 결심한 빅터는 괴물의 흔적을 쫓아 지중해, 흑해, 타타르와 러시아의 황야를 배회합니다.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기고도 복수심에 움직이는 그의 다리는 멈추지 않습니다. 괴물은 보란 듯이 자신의 흔적을 남기면서 빅터를 조롱합니다. 그들은 북극해에 닿습니다. 3주 넘게 썰매를 타고 괴물을 추적한 빅터는 1.5km도 되지 않는 정도까지 거리를 좁힙니다. 그때 빙판이 쪼개집니다. 복수의 최종장에서 빅터는 얼음판 위에서 북극해를 정처 없이 떠도는 허무한 사고를 당합니다. 죽음이 예견되는 상황에서 로버트 월턴의 탐사선이 극적으로 빅터를 발견하고 그를 구출합니다. 하지만 이미 기력이 다한 빅터는 며칠 후 배 위에서 죽습니다. 괴물은 복수를 다 하지 못하고 죽은 창조주의 시체를 내려다보며 월턴에게 참담한 심정을 고백합니다. 그는 다시는 자신과 같은 존재가 빚어지지 않도록 자신을 완전히 태워 없애버리라 결심하며 배에서 뛰어내립니다.

해석 - 삶이라는 지독한 저주 속에서

그래서 누가 더 나쁜 걸까요? 탄생시켜놓고 무책임하게 버렸던 빅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몇 차례나 살인했던 괴물?

<프랑켄슈타인>은 서로에 대한 복수로 펄펄 끓는 두 인물에서 조금 거리를 두는 구조로 서술되었습니다. 빅터를 구조한 월턴이 그에게 들은 이야기를 누나에게 편지하는 방식입니다. 빅터가 전하는 이야기라고는 하지만 괴물이 사연을 편파적으로 다루지는 않습니다. 독자는 각 인물의 감정에 찰싹 붙어 공감하면서도 이야기 하나가 끝나고 편지 끝에 적힌 월턴의 이름이 나올 때면 중립적인 위치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두 인물을 평평한 저울에 올려놓으려는 저자의 의도가 엿보이는 부분입니다.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않는 저울에는 독자의 삶이 들어갈 공간이 있습니다.

빅터는 괴물을 만들고 싶지 않았고, 괴물은 괴물로 태어나고 싶지 않았습니다. 자식은 원치 않은 생명을 준 부모를 원망하고, 부모는 원치 않은 자식이 나와 원망스럽습니다. 삶은 인간에게 오래된 저주이지만 인간 없이는 있을 수도 없는 아이러니한 존재입니다. 저자 메리 셸리는 서로에게 맹렬하게 달려드는 두 인물을 통해 삶의 노예이지만 삶에 패배하지는 않은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