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치

The Seaside

1

– 목적지입니다. 고객님.
청회색 사원복을 입은 기사의 ‘고객님’은 늦게 덧붙인 데가 있었다. 차창에 이마가 붙은 듯 떼어내기 어려웠다. 간신히 고개를 돌리자 썰렁한 버스 안이 보였다. 드문드문 앉아 있던 승객이 모두 빠져나간 후였다. 기사는 목덜미의 땀을 닦아내며 불만스러운 눈치로 기다렸다. 나는 미적거리며 홀쭉한 배낭을 들고 일어났다. 느린 걸음이 승강구에서 내리자마자 버스는 움직였다. 주유소만 한 작은 터미널에 뒤따라 들어서는 차는 없었다. 주차장도 텅 비어있었다. 쫓기는 듯 다급하게 움직이는 버스를 이해할 수 없었다. 구름 낀 여름 날씨는 찝찝한 느낌이 있었지만 갑갑하다 할 정도는 아니었다. 대합실에 들어가던 나는 담배 연기가 눈을 찌른 것처럼 움찔했다. 생경한 짠내가 코끝에 닿았다. 젖은 공기를 한참 킁킁대고 나서야 뒤늦게 지금 속초에 왔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속초에 부는 바람은 짙었지만 버스 안에서는 전혀 느끼지 못했다. 과하다 싶은 에어컨 바람 속에서 밀폐되어 냉동 생선처럼 옮겨진 탓이었다. 그보다 차창 밖 휑한 바닷길의 직선이 내 주의를 사로잡은 것에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밍밍한 하늘빛 아래 나무 속살 같은 모래사장과 평평하게 오가는 해수면이 잡스럽지 않게 원근감을 뻗친 풍경이었다. 바다가 보이자 다 왔구나 속삭였지만 그다지 실감하지 못한 속내였다. 덜컹거리는 버스와 오가는 파도가 공유하는 박자를 막 찾아낸 참으로 그 규칙성에 심취해 있었다. 흐린 허공에는 차오르다 그친 허연 달이 힘없이 피어있었다. 크레이터와 얼룩이 섞인 건조한 달은 다다를 길 없는 사막 위에 떠 있는 모양 그대로였다. 연한 회색 바탕에 찍힌 연한 회색 점을 멍한 눈으로 좇았다. 가로수와 방파제 따위가 초점 바깥에서 훅 지나갔다. 고고히 떠 있는 작고 흐린 점의 모습에 익숙한 기분이 들었다. 불현듯 투명한 밤빛과 달아오른 강내가 깜빡였다. 어떤 중요한 순간이 머리 한구석에서 막혀 마음 가는 대로 기억나지 않았다. 그 순간 버스는 크게 좌회전했고 무대에 커튼을 치듯 심심한 건물이 눈앞을 가로막았다. 안전벨트를 푸는 성급한 소리가 도미노처럼 이어졌다. 찰나의 감각은 스쳐 지나가 수수한 미스터리로 남았다. 달을 향한 분간할 수 없는 원근감은 망막에 새겨졌고 내 이마는 차창에 붙어버렸다.
– 목적지입니다.
기사의 선언으로 나는 겨우 속초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옅은 비구름이 흐르는 조류가 바닷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에서 흐드러져지고 있었다. 비 냄새가 잔잔히 끼치는 것이 얼마 가지 않아 쏟아질 듯했다. 날씨는 싱숭하게 어두웠다. 내가 그리던 파랗고 투명한 속초는 비웃음처럼 울리는 성당 종소리에 숨어 사라졌다. 나의 상상은 어리숙한 만큼 절친해서 속초의 첫인상에 적잖이 실망하고 말았다. 정말 진아의 말대로였다. 그녀는 속초가 내 맘에 들지 않을 것을 분명히 여겼기에 되려 자신이 떠난 이 마을에 대해 허탄하게 말할 수 있었다. 여행지에서 만난 택시 기사에게만 보일 수 있는 호의 같은 것이었다. 길이가 내 키를 훌쩍 넘는다는 참치뼈 이야기도 그런 친절의 일부였다.
– 할아버지 횟집에는 직접 잡았다던 참치뼈가 걸려있었는데 어릴 때 그걸 보고 나면 어김없이 악몽을 꿨어. 방안 가득 찬 바닷물이 차고 문틈으로 그것의 그림자가 보이고…. 그래서 할아버지 보러 가는 일이 무지하게 싫었어.
– 나는 생선 가시 정도밖에 상상이 안 가는데?
함께 킬킬대고 잔을 부딪치고 또 다른 밤이 지나는 그런 나날의 동화였다. 진아와 헤어진 후 이야기는 감미로움을 잃고 장난 같은 담백함만이 남았다. 진아 자신도 참치뼈를 이야기하면서 진지하게 믿었던가 자문해보자면 대답이 어려웠다. 그러나 지금 나는 참치뼈를 구하러 속초에 왔다. 끔찍하게 우스운 상황에 까마득히 피로했다. 주머니에서 구겨진 빨간 티켓을 꺼내 보았다. 티켓에는 내가 꿈꾸던 행선지가 적혀 있었다. 이르지 못한 별의 이름이 굵게 새겨져 있었다. 익다 못해 터져버린 살구처럼 절망감이 엄습했다. 결국 한 걸음도 가까워지지 못했다는 현실에 마음이 답답했다. 달은 속초보다 멀었다. 나는 원래 달에 가려고 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달과의 거리를 좁히려고 필사적으로 애쓰고 있었다. 정확한 때는 잊었지만 언제인가부터 달은 닿을 수 있는 장소가 되었다. 뉴스에서 위성 간 항해에 대한 혁신을 줄곧 읊어대기 시작했다. 색 없이 빛과 형태만으로 환상적인 달의 바다와 그 속에서 잠영하는 고래가 호화로운 빨간색 달여행 티켓을 동나게 했다. 그즈음 원인 모를 사고로 수천만 장의 티켓이 발행되었고 우연이 겹쳐 온 세상에 나돌게 되었다. 여객사의 조치는 빨랐지만 정확하지는 못했다. 수차례 소란이 지나갔고 티켓은 가짜와 진짜가 뒤섞인 채 남게 됐다. 부유한 자는 가난한 자와 마찬가지로 가짜와 진짜를 구분하지 못했다. 빨간 티켓은 환상을 경품으로 주는 복권이었다. 몇 년이 지나 떠들썩하던 시기는 끝났지만 전문점에는 여전히 마흔 개 남짓의 티켓이 매일 올라왔다. 나는 대학을 쉰 지 석 달 째 티켓 수십 개를 찢으며 진짜가 걸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모아둔 돈을 썼지만 나중에는 펫샵에, 포차에, 주말에 시간이 나면 물류창고에서도 일했다. 친구에 선후배까지 부탁을 거듭하니 일주일에 하나꼴로 모을 수 있었다. 물론 그중에 진짜는 없었다. 티켓의 열병에 걸린 환자 중에서 내 정도는 얌전한 편이었다. 환자들은 조용하고 끈덕지게 발작했다. 자살이라도 나는 때면 기자와 의원은 한 마디씩 주고받았고 1번 만에 얻어걸린 행운아와 1,000번 만에 찾아 내고야 만 승리자가 집요하게 화제를 일으켰다. 대부분은 가짜를 사고 결국 또 안됐어, 간절한 마음을 헛웃음에 숨기며 다음을 기약했다. 티켓 문화는 상실에 적응하지 못한 젊은 도시 세대의 맹목적인 우상 쫓기이다. 어디 교수라는 자가 신문 귀퉁이에 낸 칼럼은 거만한 데가 있었다. 나는 어린아이 같은 반발심을 느꼈고 더욱 집요하게 티켓을 모았다. 하지만 반복되는 실패는 나도 모르는 사이 나를 점점 막다른 곳에 몰고 있었다. 불안한 감각은 어제 거의 최고조에 이르렀고 탐탁하지 못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민에게 연락했다.
이번 여름은 최고기온 기록을 매일 갈아치웠다. 그날 낮 카페는 날 선 햇빛을 피해 들어온 사람들로 북적였다. 땀을 머금은 머리카락이 조금 성가셔서 정리할 때가 됐나 시답지 않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내 앞에는 넘겨받은 빨간색 티켓이 한 장 있었다. 티켓에 촘촘하게 박힌 마흔두 자리의 인증번호를 익숙한 듯 휴대폰 스크린 안에 옮겨 적고 있었다.
– 입력하신 인증번호를 확인 중입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쓰기를 마치자 선형의 그래프에 이질적인 푸른빛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지루한 대기시간을 달래려는 듯 로켓이 발사되고 착륙하는 그림이 반복됐다. 그래프가 꽉 차려면 앞으로 십 분은 더 기다려야 하고 그동안 로켓은 끊임없이 발사될 터였다. 한숨을 돌리며 휴대폰과 빨간 티켓을 내려놓았다. 안절부절못하는 눈치를 숨기지 못하고 빨대를 물던 민은 그제야 입을 열었다.
– 뭐야? 된 거야?
– 아직 한참 기다려야 해. 얘네는 달까지 하루면 된다면서 왜 인증번호 검사는 십 분을 기다려야 하냐?
내가 가볍게 툴툴댔지만 맞은 편에 앉은 민은 무겁게 소파에 몸을 기댔다. 쨍쨍한 창밖을 보고 있노니 눈이 시려 나는 고개를 돌렸다. 민의 입이 옴짝달싹하는 게 금방이라도 무엇인가 말하고 싶은 모양새였지만 신중해져 버린 내 동생은 차분히 말을 골랐다. 작년은 아버지가 죽고 서울 끝자락 대학에 붙어 도망치듯 상경한 지 오 년이 되는 해였고 올해보다 더위는 덜했다. 그때 민이 서울에 올라오면서 우리는 간만에 재회했다. 다시 만난 민에게서 줄곧 신기한 감정을 느꼈다. 입에 대지도 못했던 커피를 달고 사는 점이나, 새까맸던 머리카락이 계절별로 다른 색으로 물드는 것 때문만이 아니었다. 참는 듯 말을 멈추는 일이 생겼다거나, 또렷하게 웃고 그치는 표정이 보인다던가, 아버지 이야기를 자주 꺼냈기 때문이었다. 내가 아는 민과 멀리 있는 그 모든 모습이 깊은 색을 내는 호수 같아 신비하고 대견하고 외로웠다.
– 형이 이거에 미쳐있는 거, 엄마는 아직 몰라.
민은 테이블 위의 티켓을 툭툭 두드렸다. 고르고 고른 말치고는 싱거운 것이었다. 역시 변했다는 느낌밖에 들지 않았다. 나는 미간을 세워 보이며 자신도 약간 우습다고 생각되는 손짓으로 대답했다. 민은 잇자국이 난 빨대를 털어 떨구고는 불만 어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 죄송합니다. 인증에 실패했습니다. 입력하신 인증 번호를 다시 확인해주세요.
로켓이 사라지고 꾸벅 인사하는 승무원의 그림이 나타났다. 나는 입안에 남은 씁쓸한 커피 맛을 밀어 넣었다. 티켓을 찢고 자리에서 일어나니 민도 따라 섰다. 카페의 유리문을 무겁게도 열자 짓누르는 듯한 열기가 느껴졌다. 한껏 아려오는 햇빛 사이로 민이 얼굴을 찌푸리며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 형이 그렇게나 그걸 찾는 거, 혹시 진아 씨 때문이야?
투명한 밤빛. 달아오른 강내. 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너 이제 일하러 가냐? 수고하고 다음에 보자. 내가 생각하기에도 맥빠진 대답이었다. 나는 웃어 보였고 눈앞의 불안한 표정은 여전한 기색이었다.

민과 헤어지고 적당히 시간을 때우다가 아르바이트 장소에 도착했을 때는 이른 저녁이었다. 한낮의 끓어오르는 열기도 불그스름한 하늘의 색채가 더해감에 따라 무던히 묽어지고 있었다. 목적지인 펫샵은 이미 간판에 불을 밝혀놓았다. 동물을 싫어했지만 펫샵 일을 선택한 이유는 다만 시간이 맞는 일 중 가장 쉬워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런 섣부른 생각은 길모퉁이 펫샵으로 내 등을 밀었다. 일을 시작한 첫날 새끼 흰코뿔소를 데려온 손님이 왔다. 나는 보기만 해도 숨이 막히는 흉갑을 두른 채 코뿔소의 구멍이란 구멍은 모두 닦아야 했다. 물이 차가웠는지 뜨거웠는지 한번 크게 들이받혔고 찌그러진 흉갑의 수리비는 첫 달 급여에서 슬쩍 사라졌다. 동물을 팔려고 찾아오는 사람은 매일 넘쳐났다. 여든여덟 마리의 앵무새를 한꺼번에 넘기려다 절차에 필요한 서류가 부족해 돌아간 손님도 있었다. 새장에 도로 넣다가 네 마리 정도 놓쳤는데 매니저는 티도 안 나는 일이라며 손님을 돌려보냈다. 부분 가발을 쓴 매니저는 방문하는 손님 모두에게 VIP 대우를 약속했다. 나는 그가 장담한 서비스를 이행하기 위해 온 힘을 쏟아야 했다. 마침내 일이 끝나는 날이 됐다. 드디어 이 고약한 직장에서 떠날 수 있다는 생각에 더디게 움직이는 시계만 보고 있었다. 악명 높은 단골이 찾아온 것은 마감 시간이 다 된 쯤이었다. 형편없이 마른 자신의 흰 털 고양이를 종종 맡기는 남자였다. 단골은 샵에서 쓰는 샴푸가 고양이의 털을 뻣뻣하게 만든다며 자주 불평했다. 한번은 차이를 보여주겠다며 휘황찬란한 금빛 넝쿨 포장의 샴푸를 가져왔다. 마지못해 샴푸를 받은 내가 고양이를 욕실에서 씻기고 나오기가 무섭게 기세등등하여 얼마나 달라졌는지 보이지 않냐며, 샵의 직원은 물건을 선택하는 눈을 기를 필요가 있다는 등 말을 늘어놓는 것이었다. 그쯤 되니 질릴 수밖에 없었다. 욕실에서 고양이를 씻긴 샴푸는 평소의 그것이었다. 나와 매니저는 긴장하며 단골을 맞이했다. 단골이 데려온 것은 늘 보던 고양이가 아니라 매끄럽고 하얀 달고래였다. 생후 4개월 암컷 잡종 달고래. 단골은 잡종이라는 단어에 힘을 주어 말했다. 달고래에 빠진 지인이 값싸게 데려온 것인데 일이 있어 오늘만 자신에게 그것의 케어를 맡겼다. 이어 달고래는 곧 꺼질 유행 같다며 일장 연설을 늘어놨다. 나는 매니저와 그를 뒤로하고 달고래를 욕실로 데려갔다. 실제로 보는 것은 처음이었는데 배게 하나 정도의 크기로 생각보다 작았다. 달고래는 내 가슴높이에 둥실 떠다니며 흐느적거렸다. 물을 적시니 털은 손이 비칠 정도로 투명해졌다. 은은하게 반질거리는 털 아래로 천천히 숨 쉬는 달고래의 살결이 느껴졌다. 회색 바다에서 유유히 떠다니는 한 무리의 달고래가 생각났다. 달은 왜 그리도 먼 곳에서 돌고 있는지. 왜 밤마다 눈에 밟히는지. 나는 그 질문에 대답할 기력이 더 남아있지 않았다. 비참한 관성이 내 손발을 질질 끌고 있을 뿐이었다. 미친 듯이 티켓을 구하는 이 몸짓 말고는 어차피 고집부릴 것도 없었다. 앞으로 티켓 몇 장을 더 구할 수 있는지 속으로 계산하는데 달고래가 컥컥거렸다. 아픈 곳을 스친 게 아닌가 솔질을 멈추고 몸을 살폈지만 상처 같은 건 없었다. 보석처럼 새빨간 눈이 나를 쳐다보았다. 뭔가 목에 걸렸나 하는 생각으로 입을 벌렸다. 과연 컴컴한 목구멍 속에는 얇게 구겨진 어떤 덩어리가 달고래의 숨을 죄어오고 있었다. 나는 망설이다가 목구멍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성년이 되지 않아 달고래의 이빨이 문들문들한 게 다행이었다. 간신히 덩어리를 꺼냈을 때 내 팔은 자국이 난 채 얼얼했다. 덩어리는 자주색 침 범벅이라 무엇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한참 물을 붓고 나서 덩어리를 알아볼 수 있게 되자 숨이 막혔다. 빨간 티켓이었다. 어쩌다 티켓이 달고래의 목구멍에 박힌 건지 알 수 없었다. 숨통이 트인 빨간 두 눈이 나를 향해 미소짓고 있었다. 선물을 주고 어서 풀어보라는 듯 재촉하는 눈길이었다. 휴대폰에 인증번호를 받아쓰고 기다렸다. 그 시간이 수 배는 더 길게 느껴졌다. 달고래를 두 번은 더 씻기고도 남는 초조한 시간이었다. 익숙한 불안감이 닥쳤다. 이미 확인된 버려진 티켓을 이 머저리가 주워 삼킨 게 아닐까. 그렇지 않더라도 진짜일 가능성은 무척이나 낮았다. 나는 기대하는 법을 잊어버리지 않았던가.
– 씻기는 데 종일 걸리냐?
욕실 문 너머 매니저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쥐고 있던 휴대폰을 떨어뜨릴 뻔했다. 고개를 돌려 말리기만 하면 된다고 대꾸했다. 그때 손안에서 낯선 알림이 들렸다. 인증에 성공했다는 짤막한 안내 문구가 무심히 화면을 채우고 있었다. 나는 수도꼭지도 잠그지 않고 가만히 앉아 그 문구를 이해하려고 애썼다. 수십 번 다시 읽고 나서야 기쁨이 불 번지듯 차올랐다. 이건 진짜였다. 참담했던 기다림의 시간을 모두 돌고 결국 진짜가 찾아온 것이었다. 터져 나오는 즐거움에 정신이 없어 발을 굴렀다. 내가 거기에 취해있는 동안 호흡의 자유를 얻은 달고래는 파닥이며 배설물 처리용 소각로에 들어갔다. 불행하게도 소각로는 한창 타고 있던터라 순식간에 달고래를 잿가루로 만들어버렸다. 기쁨이 잦아들고 그 사실을 눈치챈 후에는 뼛조각 하나도 찾을 수 없었다. 나는 하품을 하며 기다리는 로비의 두 사람에게 한 줌의 재를 보여줄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둘 다 자초지종을 이해하지 못했다. 설명을 두세 번 되풀이한 끝에 단골은 노발대발했고 매니저는 황급하게 전화를 돌렸다. 해가 저물 무렵 결론이 났다. 이제 펫샵은 배상금을 지불하고 가루가 돼버린 달고래의 유골을 마련해야 했다. 나와 매니저는 밤새도록 소각로를 뒤졌지만 최신형 소각기는 광고처럼 모자람 없는 화력으로 모든 것을 태워버렸다. 매니저는 재를 뒤집어쓴 채 기진맥진한 나를 말 그대로 샵 밖에 내던졌다. 어떻게든 뼈를 가져오라고 고래고래 소리치고 문을 닫아버렸다. 잠깐의 정적. 한 박자 느린 매미 소리가 밤거리에 흘러왔다. 나는 힘이 빠져 미적지근하게 달궈진 아스팔트 위에 벌렁 드러누웠다. 달 없는 밤, 그토록 증오하던 일자리를 버리고 그토록 원하던 진짜를 찾게 된 날, 나는 쓰레기통이라도 뒤져야 할까 생각하고 있었다. 어질어질한 머릿속에 나쁜 꿈을 꿨다며 진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마지못해 일어나는 환자처럼 속초를 떠올렸다. 반절 정도의 체념과 억지로 참치뼈를 기억해냈다. 눈물도 나지 않는 밤하늘 어딘가에서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속초의 뱃고동이 긴 나선을 그리고 있었다.

2

빗길 위에 한 걸음 올려놓자 참새 떼가 퍼뜩 날아갔다. 가로수에 몸을 숨긴 새 떼는 서로 눈치를 보다가 자동차 한 대 숭 지나가자 한 번에 튀어 올랐다. 주춤하며 무리와 떨어져 있던 하나가 간신히 전깃줄에 올랐다. 나는 펼친 우산 끝에 걸친 시선을 언덕길 위로 끌어내렸다. 언덕 너머로 지붕 낮은 주택가와 가늘게 펼쳐진 해안선이 보였다. 빗방울 튕기는 소리에 파도 소리 한 줌 섞여 있는 듯했다. ‘지진해일 대피소 250m 앞’ 노란 바탕 안내판이 언덕 꼭대기에 비스듬히 꽂혀있었다. 지긋지긋해서 한숨을 쉬며 널브러진 조약돌 하나를 집어 들었다. 조약돌의 모난 부분으로 안내판의 기둥에 네 번째 빗금을 새겼다. 든 것도 없는 가방이 유난히 무겁게 느껴졌다. 속초에 온 지 한참 지났지만 모래사장 한번 밟아보지 못한 채 길을 빙빙 헤매고 있었다. 멀리 보이는 느긋한 바다를 향해 쭉 전진했지만 몇 번이고 언덕으로 돌아왔다. 마음을 다잡고 다시 익숙한 길을 지나고 보면 어느 순간 처음 보는 길목에 들었다. 희망에 차서 걸음에 속도를 더하면 어김없이 미로의 시작이었다. 속초행은 느닷없었지만 준비할 시간이 없을 정도로 정신없었던 건 아니었다. 그렇지만 길을 확인할 휴대폰은 대책 없이 방전되고 말았다. 전날 차표를 예약하고 나니 어쩐지 귀찮고 한심스러워 날이 새도록 준비는 뒷전으로 담배만 태웠다. 결국 속초에는 몸만 덩그러니 온 꼴이 되어 바닷가를 향한 길은 한참 꼬여버렸다. 이마에서 땀이 후드득 떨어졌다. 거듭된 방황에 지쳤다. 이 거리, 미로는 고행의 길이었다. 현실과는 달리 머릿속에 품은 속초는 활기 있는 바람이 착실히 부채질하고 맨발이 기분 좋게 뜨듯한 곳이었다. 그런 환상 대부분은 진아에게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녀는 나팔꽃 핀 거리 책방에서 아이들의 하교를 지켜본 일, 터무니없이 넓은 밤바다에서 맞는 바람에 대해 훈훈하게 때로는 심드렁하게 이야기했다. 내가 품은 환상을 꺼내 보일 때 그녀는 수시로 제동을 걸었지만 끝에 이르러서는 웃어넘겼다. 나는 그렇게 낮잠 사이의 풍경처럼 멀었던 속초에 플랫폼을 지나는 열차와 같이 내던져진 것이었다. 갑작스러운 추락은 이제 끝없는 미로에서 방황하는 끔찍한 사고로 이어졌다. 질기디질긴 생각을 씹던 내 앞에 누런 털 고양이가 길을 갔다. 참새를 쫓으려는 모양새로 낮게 움직이던 고양이는 웅크린 모습 그대로 바닥에 엎으려 고개만 이쪽으로 돌렸다. 나를 보고 있는 게 아니었다. 몸을 돌려 뒤편 언덕 너머를 바라보았다. 불 꺼진 등대가 마을을 뒤로하고 서 있었다. 어떻게 되든 좋을 솔직한 마음으로 걸음을 옮겼다. 노란 칠 지진해일 안내판에 아프게 새겨진 4개의 빗금을 사선으로 죽 쓸어버리고 돌조각을 내던졌다. 나는 결국 미로를 떠돌기 시작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다시 유령이 되었다.

때때로 이 ‘어쩔 수 없음’은 모래밭에 후드득 부딪히는 파도처럼 쓸어 나를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에 던져 놓았다. 서울에 온 지 1년이 차지 않아 한강을 걷기가 여전히 수줍던 그해 그날 밤도 마찬가지였다. 막 스물이 된 대학의 모두는 밤낮 가리지 않고 유난스레 술을 마셨다. 친구 현 역시 마찬가지였지만 이미 범주가 달랐다. 현은 거르는 날 없이 밤마다 대학가의 그 많은 포차에 얼굴을 비췄다. 적어도 늘 네댓 명의 동행과 술자리를 가졌는데 누군가의 생일, 입대나 이별 소식까지 별의별 일을 기념하여 새벽 동이 트도록 건배를 나눴다. 현의 활동에 비해 그의 주량은 형편없었다. 몇 잔 마시지도 않았는데 자다 깨다 하는 일이 빈번했고 잇따른 숙취에 일주일 내내 강의 한번 듣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갖가지 소문이 이런 그를 몰고 다녔다. 아버지가 잠실에 건물만 몇 채네 하는 시답잖은 이야기가 소문의 대부분으로 우리는 그런 이야기를 입으로 꺼내면서도 머리로는 무시했다. 하지만 현과 함께 잔 여자의 이름은 모두가 믿고 있었다. 현은 다른 이야기라면 제가 신나 떠들기 좋아했지만 소문의 이름이 나오기만 하면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러한 소문은 수차례 교차검증을 거쳐 진실로 증명되고 부단히 지루한 우리에게 싸구려 안줏거리로 먹히고 있었다. 내가 현과 얼굴을 튼 일도 술자리에서였다. 나는 스크린의 사진만 멀뚱 보고 끝나는 천문학 강의와 캄캄한 서울의 밤하늘에 충분히 질려있어서 술이 들어가자 현에게 하소연을 쏟아냈다. 아직 낯선 술꾼에게 나의 좌절을 털어놓고 그것이 휘발되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현은 내 이야기를 한 귀로 흘려버리는 대신 한강이 보이는 어느 산으로 데려갔다. 긴 겨울이 막 시작한 시기라 한밤의 산꼭대기는 무지하게 추웠다. 우리는 취한 상태로 잔뜩 흐린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한참 지나서야 터져 나오는 웃음처럼 번뜩이는 북극성을 포착할 수 있었다. 새벽이 지나가고 산에서 내려왔을 때 우리는 나란히 감기에 걸려 있었다. 겨울이 시작되고 한동안 나는 생경하고 산뜻한 감각 속에서 떠다녔다. 늘 조마조마하던 기분이 달아난 듯 편안하고 느슨했다. 꿈을 꾸듯 안도하던 마음은 잠시뿐이었다. 첫눈이 늦어질수록 이유 모를 답답함과 긴장은 늘어갔다. 눈부시게 투명한 추운 하늘이 짓누를 듯이 낮게 느껴졌다. 가끔 현을 만나도 그날 별을 보러 갔던 일은 점점 잊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종강 날 현이 나를 불렀을 때 반가움보다 싫증이 앞선 까닭은 여기에 있었다. 그날 모임은 내가 딱 예상했던 만큼 즐거웠고 두어 번 자리를 옮긴 후에는 그마저 아슬아슬한 정도였다. 담배를 태우고 함께 안으로 들어가는 도중 너는 언제 연애할 거냐며 허풍을 늘어놓는 현에게 대답하는데 한 여자와 가볍게 부딪혔다. 여자는 재빠르게 이쪽으로 돌아 미안합니다. 사과하다 우뚝 굳어 말을 끊었다. 어찌 된 일인지 현도 여자를 눈치채고 경직된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기묘한 공기에 오도 가도 못하던 찰나 여자가 먼저 싱긋 미소 지어 보이며 훅 돌아서 성큼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현은 잠시 문간에 서 있다 원래 있던 테이블 쪽으로 돌아갔다. 수상쩍은 모습에 아는 사람이냐고 추궁하자 현은 귀찮다는 듯 신경질적인 작은 목소리로 전에 만났던 여자라고 말했다. 그러고는 자리로 돌아가 크게 웃으며 잔을 비웠다. 그때부터 나는 건너편 테이블에 앉은 그 여자에게 온 집중이 쏠렸다. 조금 홀쭉한 얼굴에 하얀 살결로 병약한 느낌이 있었는데 둥그런 두 눈만큼은 생기 있게 움직였다. 여자는 우리가 이 가게에 오기 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지만 나는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지금 와서 이리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니라 현의 고백이 여자에게 신비로운 후광을 달아주었기 때문이다. 현은 거짓을 만드는데 재주가 없었고 그렇기에 소문은 명예로, 지탄으로, 꼬리표로써, 유머로써 살아남을 수 있었다. 하지만 여자는 그 모든 것에서 자유로웠다. 덤불 이곳저곳에 옮겨붙는 산불에서 한 발치 떨어져 느긋하게 불길을 바라보는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나는 여자의 평온을 숭배하는 것 외에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여자의 일행이 자리를 비우자 나는 슬그머니 그녀의 맞은편에 옮겨 앉았다. 갑작스러운 등장에 여자는 잠시 당황하는 기색을 보이다 이내 귀찮다는 듯 팔짱을 끼고 눈을 내리었다. 나는 쿵쾅대는 가슴이 막연하여 잠시 할 말을 찾지 못했다. 그러고 있자니 여자는 한숨을 푹 내쉬면서 잔을 대고 홀짝이는 것이었다. 그리되니 나는 물불 가릴 수가 없게 되었다. 나는 마음을 먹고 확신에 찬 말투로 서울도 참 지치지 않나요, 말을 걸었다. 여자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입술을 멈췄다. 유리잔 끄트머리에서 갈색 방울이 큰 회오리를 만들다 주르륵 괴었다. 나는 속으로 손뼉을 치며 여자의 말을 기다렸다. 이윽고 여자는 왜요? 간단한 단어 하나를 툭 밀어 넘겼다. 여자의 목소리에는 퉁명스러운 호의 외에도 조심스러운 기대가 슬며시 드러나 있었다.
– 달이 늦게 지잖아요. 나는 할 수 있는 한 잔말을 삼키고 솔직한 두어 마디 단어를 명료하게 소리 냈다. 뻘건 멍한 눈으로 고되게 넘겼던 숱한 밤을 떠올렸다. 그것으로 공감받을 수 없다면 어차피 안될 일로 생각했다. 그러나 떨리는 목소리에서 미처 박피하지 못한 창피함이 내심 걸렸던 것도 사실이었다. 곧 여자는 얼마 남지 않았던 잔을 비워 조심스레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주억대던 여자는 뭐가 우스웠던지 피식 웃었다. 도대체 서울에서는 밤에 잘 자는 사람을 찾아볼 수가 없네요. 그녀의 검은 눈동자에서 참는 듯한 떨림이 보여 나는 뛸 듯이 기뻤다. 여자는 친구가 돌아오는 대로 자리를 나설 테니 뒤따라 나오라고, 길 건너 참치집 앞에서 만나자고 속삭였다. 흑백 필름으로 찍힌 오래된 첩보 영화처럼 매력적이고 비밀스러운 기약이었다. 나는 내 자리로 돌아오고 나서도 긴장과 기대로 가득하여 차분하지 못했다. 시간은 뭉그적댔고 나는 완전히 앉지 않은 엉거주춤한 자세로 옴짝댔다. 곧이어 여자가 일행과 함께 자리를 비웠다. 나는 주변의 만류를 무릅쓰고 피곤한 척 먼저 일어났다. 문간까지 휘청이던 내 걸음은 거리에 나서자마자 튕겨 올라 날아다녔다. 조바심에 곧장 달려온 참치집 앞에서는 여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데일 듯 눈부신 여유만만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한 잔 더 할 수 있겠냐고 물었다. 여자는 자신을 진아라고 소개했다. 나는 내 속이 자못 신성한 기대감으로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나는 서울의 캄캄한 하늘 끝으로 비상했다. 숨 막히는 탈출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어둑한 그 날 새벽에는 눈이 내렸다. 그 이상으로 참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는 듯 펑펑 터지는 눈발이었다.

나와 진아는 한 계절에 걸쳐서 참치집에서 만났다. 참치집은 대학가와 주택가 사이 경계를 이루고 있는 수많은 주점 중 끄트머리에 놓인 작은 가게였다. 이른 저녁 참치집에 응어리진 주황빛 조명이 걸리고 나면 나는 경쾌하게 가게 문을 열었다. 진아는 항상 나보다 일찍 와서 자리를 잡아두고 있었다. 우리는 수상하고 비밀스러운 만남이라도 하는 것처럼 말없이 손짓으로 인사했고 주인장에게 ‘늘 마시던’ 것을 주문했다. 이런 은근하게 감춘 명랑한 분위기보다 우리를 잘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걸치는 외투가 점점 두꺼워졌다. 그동안 나는 진아가 현과 만나게 됐던 멍청한 이야기와, 반년 동안 혼자 호주에 살다가 글쓰기를 좋아하게 됐다는 것과, 떠나온 속초의 참치뼈를 무서워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진아는 만만치 않게 궁금증이 많아서 내 입 밖으로 이것저것 꺼낼 수 있었다. 그중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는 어릴 적 아버지에게 천체 망원경을 받았던 일이었다. 보름달이 뜬 어느 날은 베란다에서 달을 보았다. 기대에 부풀어 망원경에 눈을 가져다 대니 침침한 그물 같은 것이 시야에 걸려 달은 창백한 빛을 내는 배경뿐이었다. 내 반응이 이상했는지 망원경을 몇 번 돌려보던 아버지는 그제야 초점이 달이 아닌 방충망을 향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아버지의 손이 닿고 망원경은 제대로 크레이터 가득한 돌덩이를 비추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싱숭한 마음이었다. 나는 망원경에서 방충망에 붙어있던 검은 거미 한 마리를 보았다. 거미줄에는 나방이 붙잡혀 허둥대고 있었고 거미는 느리지만 멈출 것 같지 않은 속도로 다리를 뻗치고 있었다. 넓은 하늘에서 환상적인 빛을 내는 천체는 그 작디작은 살육의 광경 때문에 위태로워 보였다. 아버지는 내 기분의 원인을 찾으려고 애썼지만 헛수고였다. 진아는 이 이야기에 절대 질리지 않았다. 진아에게 있어서 가장 멋진 이야기는 오래도록 변하지 않는 것이었다.

사무치게 추웠던 겨울이 거짓말처럼 사그라들고 곳곳이 해빙되는 시기에 이르렀다. 그즈음 나는 진아의 작은 자취방에서 밤을 보내는 일도 빈번했다. 그날도 그렇게 옹기종기 따뜻했던 저녁이 지난 심야였다. 나는 옛날 옛적에 죽은 영국인의 소설을 읽다 지루해 툭 던져버리고 침대 맡에 풀썩 엎드렸다. 싫증이 난 책은 빈 맥주 캔을 툭 건드렸고 캔은 데구루루 침대 밑 깊숙이 들어갔다. 컴컴한 침대 밑을 대강 휘적이는데 종이 더미 같은 것이 손에 걸렸다. 꺼내 보니 그것은 고무줄에 묶여 귀찮은 듯이 구겨진 빨간 티켓 뭉치였다. 달여행 티켓을 모으고 있지는 않았지만 아주 모르는 바가 없지는 않았다. 미심쩍은 마음으로 진아에게 티켓을 들어 보였다. 나는 처음에 그녀가 다른 몇몇 사람들처럼 티켓을 사는 취미가 있고 침대 밑의 그것은 수수한 실패가 남긴 자취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빨간 티켓과 진아. 어색한 묶음이었지만 괴상한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진아는 평범한 대답 대신 쿡쿡 웃으면서 내게 겉옷과 모자를 입히고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
– 그거 사실 다 진짜야.
조금 걸어 나와 한창인 공사판에 다다랐을 때쯤 넌지시 진아가 말했다. 당연히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진아는 내 표정이 맘에 안 들었는지 내가 쥐고 있는 티켓 뭉치에서 건성으로 한 장을 꺼내 손수 인증번호를 눌러 보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티켓이 진짜임을 증명하는 인증 성공 화면을 보여줬을 때까지도 장난의 일부인 줄만 알았다. 진아는 카드 게임을 하는 것처럼 내 손에서 티켓 한장 한장을 차례로 뽑았고 어김없이 진짜가 나왔다. 이윽고 내가 들고 있던 스무 장 남짓의 빨간 티켓이 모두 진아의 손안으로 넘어갔을 때 모든 티켓이 진짜라는 사실에 경악하고 말았다. 티켓을 모으는 건 그녀의 취미가 아니었다. 진아는 담배에 불을 붙여 내 입술에 물려주면서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진짜가 모이게 된다고 고백했다. 점원이 미처 치우지 못한 식당 테이블 위 반쯤 찢긴 티켓, 중고로 산 책 중간 정도 되는 페이지 사이에서 가장자리가 접힌 채 발견된 티켓, 심지어 길가에 쓰레기처럼 나뒹구는 티켓까지 말도 안 되는 희귀한 방식으로 입수되고 진짜가 돼버리는 것이었다. 진아는 진짜가 제 발로 걸어오는 무수한 행운을 성가셔했다. 진아는 보기 좋게 부푼 보름달에 감탄했고 사진 속 달고래를 보면서 귀여워했지만 때때로 그치는 일이었다. 많은 이들이 그토록 바라는 진짜를 침대 바닥에 쌓아두면서도 달여행에 대해서는 소품처럼 놓인 잡지 넘겨보듯 무심했다. 진아는 주섬주섬 티켓 뭉치를 둥그러니 구겼다. 그리고는 담뱃불을 붙이던 라이터로 티켓 뭉치를 태웠다. 티켓 뭉치는 잠시간 선홍빛으로 일렁이더니 그녀의 손에서 바닥으로 떨어지자 톡 펼쳐져 산산이 타올랐다. 진짜는 그렇게나 잘 탔다. 진아를 바라보는 내 망막이 기대에 찬 진동으로 울렸다. 달은 아귀의 섬뜩한 초롱불처럼 소원을 가진 이들을 맹렬하게 몰아세웠다. 단지 달을 바랐다는 이유로 방향을 알 수 없는 탐조등이 사방에서 덮치는 듯한 공포를 받아야 했다. 그런 두려움을 이해했기 때문에 달에 목을 매는 그들을 측은과 동정과 상당한 긴장으로 대해왔다. 그 밤 진아에게 감동한 까닭은 여기에 있었다. 진아는 억지스러운 달의 그림자에 쫓기는 일 없이 웃어넘기듯 수많은 진짜를 태웠다.. 아이가 사탕을 깨무는 것처럼 달을 삼켰다. 내 마음은 쏟아지는 경애심에 틈새 없이 젖었다. 나는 연기 속에서 녹아내리듯 그녀의 입술에 닿았다. 다음 날 처음으로 빨간 티켓 한 장을 샀다. 물론 가짜였다. 그 순간을 겁없이 지나 보냈다. 태워버릴 진짜를 기다리는 내게 칙칙하게 식은 밤이 흘러갔다. 어쩔 수 없는 한창의 봄이었다.

3

등대가 자리한 언덕은 높아 보이는 겉모양과는 달리 단숨에 오를 수 있었다. 산길은 기움에 비해 어지간히 꼬여 있었지만 외길이었기에 헤매지 않을 수 있었다. 노파의 골방에 깔린 카펫처럼 젖은 소나무 잎이 누덕누덕 덮여 있었다. 본격적으로 내리기 시작한 빗줄기가 우산을 치면서 내 손목을 간지럽게 두드렸다. 멀리 보이는 해안선은 뭉근한 구름안개로 티 없이 지워져 있었다. 그마저도 등대 앞에 서니 절반이 채 보이지 않았다. 등대는 탁한 느낌 없이 새하얀 칠이 되었다. 너비와 높이가 남다르게 육중해서 언덕 위에 언덕 하나를 더 세워놓은 모습이었는데 내 눈에 그것은 탑이라기보다는 벽이었다. 등대의 크기에 놀랐다. 여태껏 보지 못한 거만한 설계 때문이라기보다는 진아의 무수한 꿈 중 하나에서 묘사된 것처럼 낡고 아담하지 않다는 점에서 그랬다. 과한 몸뚱이가 어색할 지경으로 등대의 내부는 휑했다. 누런 타일 바닥은 여기저기 깨졌고 녹슬어 아슬아슬해 보이는 철제 층계가 넓은 나선을 그리며 높다란 천장까지 걸쳐 있었다. 고칠 만한 시기를 놓친 계단의 모양새에 다소간 주춤했으나 돌아갈 만한 길도 변변찮았다. 한발 한발 신중을 기하여 다음 층에 올라섰다. 아래층보다는 작지만 여전히 널찍한 고리 모양 공간이었다. 흐린 하늘빛과 빗방울이 물때 붙은 투명한 천장을 적셨다. 날만 좋았더라면 멋진 광경을 비췄을 창문 아래 유리 관짝이 줄지어 있었다. 그 안에는 내가 보지 못한 섬과 산의 모형이 색이 벗겨져 나뒹굴고 있었다. 누가 봐도 버려진 모습에도 거미줄은커녕 먼지 없이 말끔했다. 찬찬히 소품을 훑어보는데 별안간 둥 기계가 켜지며 소음을 냈다. 소리를 쫓아 가운데 기둥에 다가서니 안쪽에 좁다란 계단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몇 발치 떨어져 천장 너머 저쪽을 보니 큼직한 등불이 반사경에 싸여 무겁게 회전하고 있었다. 시간에 맞춰 자동으로 켜고 끄는 등대인듯싶었다. 눈이 부신 불빛은 흐리멍덩한 허공을 꿰뚫어 수평선 위에 곧게 내리 꽂혔다. 안개 저편에서 등대에 화답하는 선등이 여러 개 번갈아 반짝였다. 소리 없는 바닷새가 전부 저기 있었구나 같은 생각에 골똘했다. 탁한 바다의 정경은 어쩐지 인상이 깊어 가만히 바라만 보았다. 나는 우연한 발견을 즐기지 않는 편이었다. 진아를 따라 티켓을 모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때, 내 지갑을 들춰본 그녀가 장난감처럼 수북한 가짜 티켓을 보고 표정으로만 드러내던 은밀한 절망도 그랬다. 잘못 본 것이라 여겨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찰나의 낯빛이었기 때문에 우연한 발견을 애써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나는 내 전부가 된 무언가를 또다시 놓쳐버릴 마음이 없었다. 기억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데 불현듯 날카로운 굉음이 머리 위에서 터졌다. 눈을 돌리니 등불이 있던 자리에 사람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부수는 소리는 두세 차례 이어졌고 불빛은 희미하게 죽어가다 무자비한 도끼질로 완전히 박살 났다. 나는 갑작스레 벌어진 살해에 놀라 황급히 위층으로 뛰어갔다. 옆면이 뚫린 초라한 크기의 원통형 공간에 깨진 유리 조각이 너저분했다. 머리가 날아간 등불은 잠시 안쪽에서 스파크가 일다가 수그러들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끝 모를 바다를 향해 찬란한 빛을 내뿜던 등대는 피처럼 흐르는 정적에 캄캄했다. 저벅 유리 조각 밟는 소리가 들렸다. 산산조각이 난 등불 뒤편에서 머리가 희끗한 노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허리를 잡고 앓는 소리를 내면서 쥐고 있던 도끼를 조심성 없이 바닥에 내던졌다. 침침한 눈빛이 낡은 안경 속에서 나를 응시했다.
– 못 보던 얼굴인데 시청에서 왔소?
아뇨 말하려다 머뭇거렸다. 나도 내가 어디서 온 것인지 자신이 없었다. 간신히 여행자라고 대답했다. 힘을 쓴 탓에 찌푸리던 노인의 눈썹이 의외라는 듯 잠시간 으쓱였다. 나는 노인에 대해 물었다. 노인은 나와 같은 표정으로 입술을 잘근거리며 답을 망설였다. 여기 지키는 등대수요. 대답은 힘없이 떠도는 유령 같았다. 그는 제대로 박살 난 건지 확인하려는 듯 등불 이곳저곳을 세심하게 살펴보았다. 나는 어안이 벙벙하여 등대를 부수는 등대지기에 대하여 들어본 바가 없다고 말했다. 등대지기는 내 질문에 어디서부터 이야기해야 할 지 모르겠다는 듯 발끝으로 유리 조각만 툭툭 치다가 난간에 기대어 이쪽으로 말문을 열었다. 등대지기는 지난 수십 년 동안 등대를 돌보았다. 등대는 지난해 크게 뜯어고친 후 사람 손이 필요 없게 되었다. 등대지기는 여전히 가장 먼 바다를 볼 수 있었고 폭풍이 몰아치는 등대 안에서 여유롭게 차와 독서를 할 줄 아는 전문가였다. 그렇기에 막 혼자 움직이기 시작한 등대의 관리인으로서 자리를 이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일이 현저하게 줄어든 것은 사실이었다. 등대는 정밀한 시계가 움직이는 것처럼 과거 등대지기가 했던 일을 똑같이 해냈다. 이제 등대지기는 등대 안 보다 밖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순전히 오랜 습관 탓에 비바람이 거센 날에는 자주 등대를 보러 나왔다. 등대를 지켜보며 만족하면서도 번번이 쓸쓸했다. 등대지기는 자식 없이 늙은 사람이었다. 그날도 바람이 강했고 등대지기는 몸이 시키는 대로 등대를 보러 나왔다. 등대는 폭풍에 단단하게 버티면서 검은 바다를 향해 빈틈없는 광선을 쏘아냈다. 무섭게 몰아치는 파도 위에서 배들은 관현악단의 연주자처럼 일사불란하게 불빛을 주고받았다. 등대지기는 어김없이 제 역할을 수행하는 등대를 확인하고 흡족하여 걸음을 돌렸다. 그때 가까운 바다 위에서 천둥 같은 소리가 들렸다. 놀라 저쪽을 바라보니 어선 한 척이 등 달린 길쭉한 선두만 물 밖으로 내놓고 가라앉고 있었다. 침몰은 섬뜩할 정도로 빠르게 진행되었다. 배는 거친 파도 소리에 묻힌 처량한 침묵 속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등대지기는 순식간에 일어난 사고에 얼이 빠져 가만히 서 있었다. 수십 년 동안 등대를 지키며 바다를 관리했지만 단 한 번의 침몰도 보지 못했다. 바다는 제 변덕을 강하게 드러냈지만 내치는 배는 없었다. 그런 바다가 아주 간단하게 배를 집어삼켰다. 등대지기는 머리가 아찔해지는 두려움을 느꼈다. 굉음이 두 차례 더 울렸고 별처럼 떠나는 선등 두 개가 바다 밑으로 가라앉았다. 그제야 등대의 불빛이 잘못됐음을 알아차렸다. 등대는 모른 체 빛을 번뜩이면서 바다 위 불나방들을 소용돌이와 암초가 가득한 함정으로 밀어 넣고 있었다. 등대지기는 새하얗게 질려 등대의 꼭대기로 달음질했다. 도끼를 들고 정신없이 등불을 찢어놓는 동안 살인에 익숙지 않은 피부에는 수개의 유리 조각이 박혀 들어갔다. 피철갑을 한 등대지기는 마침내 등불을 끝장냈다. 기진맥진하여 바다 쪽으로 귀를 기울였다. 파도 소리는 여전히 거세고 바람 소리는 여전히 날카로웠다. 배가 무너지는 소리는 결국 들리지 않았다. 등대지기는 앉아서 눈물을 흘렸다. 안도하는 마음이라기보다는 참지 못한 당혹감에 가까웠다. 언덕을 내려온 등대지기는 극도의 피로에 핏물도 제대로 닦지 않은 채 쓰러져 잠들었다. 얼음장 같은 추위에 깨어났을 때는 해가 막 뜨기 시작한 아침이었다. 여전히 어제 일이 당황스러웠다. 등대지기가 할 수 있는 가장 이성적인 일은 등대 공사를 하면서 만났던 시청 직원을 불러 모으는 것이었다. 꼭두새벽 늙은이의 미친 소리에 찾아오는 사람은 둘뿐이었다. 그들은 마른 피범벅이 되어있는 등대지기의 모습에 소스라치게 놀라 허겁지겁 등대를 찾아갔다. 등대지기는 아직 긴장하고 있었지만 약간 안도했다. 곧 모든 문제가 파악될 것이고 등대는 다시 수리를 거치겠지만 더는 어젯밤 같은 일은 없을 것이었다. 그렇게 올라간 등대의 꼭대기 층은 완전히 정돈된 새것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어둠이 깔리기를 기다리는 등불, 갓 닦은 듯한 반사경 모두 말끔했다. 은은하게 윤까지 나는 도끼 한 자루가 난간에 살포기 기대어 있었다. 등대지기의 가슴이 쿵쿵 울렸다. 등대는 오늘 밤도 같은 지옥을 준비하고 있었고 등대지기는 무엇을 해야 하는 지 알았다.
– 하루 이틀 해서 끝날 기대는 하지도 않았지요. 가을, 겨울, 한 바퀴를 다 돌아 여름입니다.
계절이 바뀌면서 등대의 빛은 일찍 켜지기도 늦게 켜지기도 했다. 등대지기는 매일 도끼를 들었고 가까스로 한밤을 지켜냈다. 등대는 고요한 새벽 속에서 여지없는 깔끔한 모습으로 되살아났다. 등대지기의 살해와 등대의 부활은 풀릴 것 같지 않은 매듭으로 수만 겹의 고리를 만들고 있었다. 나는 등대지기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딛고 있는 등대가 가증스러워 참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등대는 등대지기만큼이나 그를 깊이 이해하고 있었다. 그가 공포에 떨면서 내놓은 죽음에 장난스레 다시 태어나는 짓궂은 모습은 소름 끼치는 악마의 형상 그 자체였다. 하지만 등대지기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그는 자신의 피에 젖은 등대의 머리를 멍하니 바라보며 신음 섞인 혼잣말로,
– 내일도 불을 켜주겠지. 작게 웅얼거릴 뿐이었다. 나는 그 모습이 측은하면서도 어찌 된 건지 부끄러운 구석이 있어 얼른 떠나고 싶었다. 노인은 등대를 죽이면서 등대지기로 남을 수 있었고 나는 달을 쫓으면서 속초까지 흘러올 수 있었다. 습한 공기에 가슴이 무거워 숨이 답답했다. 참치뼈를 찾는 처음 목적을 겨우 되새기고 등대지기에게 횟집이 있을 만한 곳을 물었다. 등대지기는 나를 지긋이 보다가 머뭇거리는 손짓으로 언덕 아래 바다에 접한 수산시장 거리를 멀리 가리켰다. 노인에게 작별하고 다소 빠른 걸음으로 등대를 내려갔다. 하산길에 오르며 얼핏 돌아본 등대지기는 망망대해를 바라보는 자세로 못 박혀 바람을 맞고 있었다.

언덕을 내려와 등대지기가 알려준 거리에 다다랐을 때쯤에는 이미 저녁이 깜깜해 어슴푸레한 느낌은 없었다. 차 한 대가 겨우 빠져나갈 수 있는 도로가 바다 쪽으로 나 있었다. 길 양옆에 가지각색 식당이 늘어서 손님을 받고 있었다. 저녁을 찾는 사람들이 꽤 있었지만 북적이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대게가 꿈틀대는 수족관 하나가 시원한 하늘빛을 내며 가게 앞에 놓여 있었다. 가게는 허연 수증기를 기침하듯 토해내고 있었다. 연기에서 나는 비린내가 속초에 와서 맡아본 것 중 가장 진했다. 밝은 녹색으로 발광하는 자판기가 비를 맞아 퉁퉁거렸다. 거리의 모든 것이 선명했다. 도로는 바닷비를 머금어 한껏 검었고 가로등, 네온사인, 헤드라이트가 색색이 얽혀 있었다. 빈 땅과 빈 밤 사이에서 거리는 저마다의 빛깔로 유유자적 떠다녔다. 그러나 빗소리, 파도 소리, 자동차 시동 거는 소리와 간간한 말소리를 빼면 거리는 조용한 편이었다. 거리를 바라보며 담청색 심해에서 외롭게 헤엄치는 해파리 무리를 상상했다. 하지만 나보다 외로운 무언가를 거리에서 찾을 수는 없었다. 발걸음 닿는 대로 가게 문을 열고 참치뼈를 찾고 빈손으로 나왔다. 몇 시간에 걸쳐 거리를 떠돌았다. 애초에 얼마 남지 않았던 기대는 조각가의 끌에 닿은 것처럼 섬세하게 작살났다. 발을 질질 끌다 술집 앞에 내놓은 의자에 빗물을 대강 닦고 쓰러지듯 앉았다. 피로가 응어리진 뇌 속에 맨 먼저 든 생각은 할 만큼 했다는 체념이었다. 달고래를 태워버리고 속초에 와서 있는지도 모르는 참치뼈를 쫓는 고단한 여정은 결국 길고 억척같은 사고였다. 불쑥 원망스러운 마음이 들어 눈시울이 뜨거운 데가 있었다. 단지 달을 바라고 죄 모르는 내게 내려진 형벌은 너무나 가혹한 것이었다. 불 꺼진 등대가 보고 있는 밤하늘 쪽으로 힘없이 시선을 옮겼다. 엷게 구멍이 난 구름 너머로 어정쩡히 부푼 달이 가까스로 빛을 내고 있었다. 가늠할 수 없는 달의 형태에 결국 떠올린 것은 진아의 옆모습이었다. 나는 꺼내 보이기를 고심했던 빨간 티켓을 들여다보지 않을 수 없었다. 마찬가지로 드러내기를 망설였던 의심이 슬그머니 머리를 치켜들었다. 나는 되는대로 몸을 굴리면서 진짜 티켓을 구하려고 애썼고 생각지 못한 곳에서 얻어냈다. 나의 속초행은 그때 결정된 것이 아닌가. 그 순간 이미 달에 가려는 나는 남지 않았다. 뭉그러진 흙덩이처럼 이도 저도 아닌 모습으로 속초를 기다리고 있던 것이었다. 달을 향해 치켜든 고개를 양손으로 긁어내렸다. 정말 달에 가고 싶었던가. 갈피를 잡지 못하고 흔들리는 목소리가 귓가에 박혀 빠지지 않았다. 목소리는 하나가 아니었다. 등대지기의 자조 어린 혼잣말, 현의 마지못한 침묵, 민의 안타까운 질문, 그리고 가장 마지막의 목소리는 속삭이는 듯했고 한 마디 한 마디가 미어졌다. 분명히 기억하고 있는 목소리였다.

그날 저녁은 가을이라지만 한결같은 더위가 텁텁했다. 태양만큼은 바뀐 티를 냈다. 나와 진아가 강가에 자리를 잡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하늘은 보랏빛으로 점차 어두워졌다. 물 냄새가 향긋했다. 잔물결 이는 강물이 손톱만큼 남은 햇살의 자취를 엉킴 없이 투명하게 비추고 있었다. 주변에는 우리처럼 불꽃놀이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상당했다. 내가 처음 불꽃놀이 이야기를 꺼냈을 때 진아는 인파 걱정에 내키지 않는 듯하였으나 막상 풀밭 위에 자리를 잡고 있으니 기분이 산뜻한 눈치였다. 나는 꼬옥 쥔 연이 날아가 버릴까 불안해하는 아이처럼 천만다행으로 여겼다. 그날로부터 며칠 전 나는 망설임을 그치고 티켓을 모으고 있다며 진아에게 호기로이 말했다.
– 달에 가고 싶어졌어?
그건 시큰둥하다기보다는 차가움이 묻어나는 대답이었다. 그렇다기보다 넌 절대 가고 싶지 않을 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내 입술에 갖다 댄 손가락 같은 것이었다. 나는 진아의 반응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하려던 말을 그만두고 말았다. 진아의 손안에서 한순간에 타버리는 진짜 티켓의 모습은 내게 여전히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 있었다. 그런 내게 진아는 이해하는 마음 비치는 일 없이 냉랭했다. 진아만이 가질 수 있는 높다란 성벽이었다. 억울한 기분이 있었지만 할 말을 찾지 못해서 애써 웃어넘겼다. 그 후로 나를 바라보는 진아의 눈빛은 시원치 못했고 서먹한 기세에 갑갑한 마음을 쌓아만 두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마침 열린 불꽃놀이 축제를 내 답답함을 후련히 해결할 기회로 보았다. 우리는 강바닥이 캄캄해지기를 기다리며 말을 아꼈다. 주변의 이야기 소리가 저만치 멀어지고 신선한 정적이 진아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가볍게 내려앉는 평화로움이 내가 모든 말을 쏟아낸 후에도 여전하기를 바랐다. 첫 마디 말을 고심하다가 내일도 티켓 하나를 더 살 수 있을 것 같다고 지나가는 투로 이야기했다. 진아는 얼굴이 굳다가 어딘가 상심한 구석이 있는 것처럼 망설이는 눈빛을 했다. 그 눈빛.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광선이 다발로 묶인 눈빛은 겨울의 술집에서 경배의 대상이었지만 이제 나는 다급한 공포만을 느꼈다. 나는 평정심을 흉내 내 입술에 바르고 태워버리기 위해 진짜를 찾고 있다고 진아에게 고백했다. 진아는 지나간 열기를 토해내고 있는 강물만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 널찍한 박람회장에서 꼭 쥐고 있던 옷소매를 놓친 채 덩그러니 훌쩍이던 옛날 일이 생각났다. 아버지가 다시 찾아오지 않는다는 두려움에 쫓기며 거친 모래에 쓸려 가는 것처럼 무겁게 흘러가던 시간을 버텨야 했다. 나를 사냥하던 마왕은 비록 진아의 후광에 가려진 채였지만 여전히 기회를 노리고 있던 것이었다. 결국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했어, 혼잣말인지 대답인지 모를 진아의 나지막한 말. 목구멍에서 심장의 최심부까지 쿵 내려앉는 것이 있었다. 진아의 씁쓸한 표정이 울컥거리는 눈에 차마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추락을 선고받았다. 진아는 자신이 진짜를 태우는 것이 아니며 타버리기 위해 진짜가 오는 것일 뿐이라고 나지막하게 이야기했다. 단지 자신은 거기서 도망치고 있는 것이라며 자조했다. 말을 그친 진아는 시선을 멀리 내던진 채 내 쪽을 보고 있지 않았다. 시든 꽃밭을 묵묵히 관망하는 듯한 아름다움에 숨이 막혔다. 어찌해볼 도리가 없어 고개를 떨구었다.
– 너도 그게 괜찮기를 바랐어.
진아의 말에 묻어있는 안타까운 만큼이나 그녀의 시련이 고달프게 느껴졌다. 진아를 안고 싶다는 마음과는 다르게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다시 무산소의 어둠 속에 떨어져 달아나기 위해 허우적대고 있었다. 하늘에서 불꽃이 터져 귀가 먹먹했다. 투명한 밤빛은 감미로웠고 달아오른 강내는 아찔하였다. 나는 외로웠다. 찬란한 광채에 물드는 내 그림자를 보면서 강변의 모두와 내 곁의 진아가 차례로 떠나갈 때까지 기다렸다. 한참이 흐르고 음습한 암흑이 머리 위에 내려 앉는 때가 돼서야 겨우 고개를 들 수 있었다. 기진맥진한 나는 허공에 불을 켠 보름달과 마주했다. 그림자 없이 가득한 달이었다. 나는 문득 그리고 간절히 달에 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손에 쥔 빨간 티켓이 빗물을 머금어 진홍색으로 물들어갔다. 기억과 달리 초라해 보였다. 자신을 따라 티켓을 쫓는 나를 발견한 진아도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서울에 가고 진아를 만나고 달을 바라고 속초에 온 것까지 결국 길고 지긋지긋한 도피의 일부였다. 내가 출구를 찾는 절박한 심정으로 진아에게 빠져들기 시작했을 때 그녀가 느꼈을 참담함을 이제는 이해할 수 있었다. 어쩌면 내 오해를 눈치챈 후에는 사랑하는 것 외에 손댈 도리가 없던 것일지도 몰랐다. 나와 하등 다를 것 없이 도망치고 있던 진아는 애증과 동정으로 우리 사이의 끝을 무기력하기 기다렸던 것이다. 좀 더 슬픈 의미로 그녀를 숭배했다. 눈가에 쏟아지는 짭짤한 바닷비가 무섭게 뜨거웠다. 갑자기 술집이 소란스러웠다. 젖은 몸을 끌어당겨 환한 유리창에 눈을 대고 들여다보았다. 주인과 손님으로 보이는 네댓 명이 카운터 쪽에 모여 심각한 얼굴로 TV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뉴스는 긴급속보로 사고의 한 장면을 반복해서 재생하고 있었다. 까마득한 수평선 위로 달여행 여객선이 추락하고 있었다. 시퍼런 적도의 바다는 붉은 화염과 검은 연기를 묵묵하게 반사하고 있었다. 거대한 여객선이 원인 모를 사고로 떨어지는 광경은 이미 몇 분 전의 기록이었다. 나는 미궁 같은 속초에서 길을 잃었고 이제 달을 향해 타고 갈 함선도 잃고 말았다. 기이한 웃음이 입꼬리에 오르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정말이지 참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모든 것을 잃었고 나의 도주로는 탁 트인 맑은 항로였다. 내가 짊어질 수 있는 그 이상의 상실감이 나를 짓뭉갰고 덕분에 안심했다. 어설픈 동화 같은 참치뼈는 있지도 않았다. 빨간 티켓을 불쑥 쳐들고 라이터 불을 지쳐 붙였다. 젖은 티켓에 불길은 엉거주춤 옮겨붙어 마침내 검붉은 잿가루가 되어 녹아내렸다. 티켓이 전부 타버린 후에도 한참 시선을 떼지 않고 눈물을 닦기도 하고 그저 걸었다. 보이지 않는 아득한 바다 위를 밝히는 무수한 뱃불을 떠올렸다. 등대가 켜지기를 기다리며 밤을 새는 뱃불은 오랜 친구처럼 내 곁에서 걷고 있었다. 비바람이 거세고 별들이 깜빡였지만 낮잠을 자는 듯 평온한 기분이었다. 나는 내일도 가짜 티켓을 모으고 그다음 날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산더미처럼 쌓인 가짜 더미 속에서 흐뭇하게 겨울잠을 청할 것이다. 잠에서 깨어나면 다시 가짜를 쫓을 것이다. 담배 한 개비 꺼내 들어 후련한 숨을 불어넣었다. 그러다 별안간 어느 골목 사이 앞에서 걸음을 우뚝 멈추었다. 버려진 물건들로 너저분한 골목은 빗물이 그득해 음산했다. 깨진 그릇, 삭은 그물이 떠받드는 쓰레기 더미 위에 넝마가 된 붉은 융을 깔고 참치뼈가 군림하고 있었다. 어두운 회색 꼬리뼈로부터 우아하고 날카로운 물결이 등뼈와 지느러미로 이어졌다. 뾰족한 코와 아가미 사이 텅 빈 눈동자가 나를 노려봤다. 눈동자는 아득했지만 동시에 얕았다. 그것은 익숙했다. 아니 낯설었다. 아니 낯설기 위해 익숙했다. 그건 죽어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 나는 녹슨 거울을 맞닥뜨린 듯이 그 자리에 굳어 모양만 남은 탄식을 흘렸다. 아주 짧은 찰나 속초가 다시금 멀어지며 어지러운 원근감을 뻗쳤다. 참치뼈는 거기 있었다. 나는 비틀비틀 뒷걸음질 쳤다. 내일도 가짜를 찾을 거라니, 섬뜩한 기만뿐이지 않은가. 그때 사이렌 소리가 산등성이를 타고 넘어왔다. 하나의 울림에 지나지 않았던 그것은 이윽고 범람해서 온 거리를 뒤덮었다. 쓰나미가 밀려오는 엄숙한 진동이 사방에서 메아리쳤다. 나는 빠른 박자로 엄습하는 바닷새의 비명에 덜컥 두 눈을 감았다. 목적지입니다. 바라 마지않던 기사의 선고가 힘없는 고동으로 귓가에 맴돌았다. 나와 속초는 바다 속으로 가라앉았다. 밝게 피어오른 달 아래 참치뼈가 물살을 가르며 헤엄쳤다.

– 단편 소설 <참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