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변역에 와서야 고갤 들었다.

The Way to a Oversleeping

유월 삼십일

열차는 잠실나루역에서 평소보다 더 뜸을 들였다. 출근길 지하철은 세탁기 안 비누 거품처럼 꽉 들어차 북적거렸다가 네댓 역을 거쳐 비로소 숨 쉴만한 수준이었다. 나는 좌석을 잡기는커녕 출입구 쪽 위치에 엉거주춤 서게 되었다. 결국 오르내리는 인파에 그대로 끌리고 쓸릴 수밖에 없었다. 반팔 두 장을 사이에 두고 사방에서 살덩이가 맞닿았다. 꼭 내 것처럼 더웠다. 손가락 거스러미를 뜯듯 살덩이를 떼어내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손톱 옆에서 몽글몽글 솟는 핏방울처럼 이마에 땀이 솟아올랐다. 자리에 앉았다.

사람이 빠진 열차는 에어컨 소리만이 윙윙댔다. 냉방기가 최대로 가동 중이라는 안내방송이 승객을 달랬다. 겹겹이 가로막은 유리창 너머로 장마 티를 내는 먹구름이 잔뜩이었다. 문득 지하철이 지상을 다니는 건 묘한 게 아닌가 이상한 생각을 했다. 나는 서울 산 지 두 해 덜된 촌놈이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난데없기는 매한가지인 의심이었다. 지상을 달리는 지하철. 재작년 이전까지 안산에서 기숙학교를 다니는 동안 간간이 서울을 방문할 일이 있었다. 그때마다 4호선 지하철은 항상 땅 위에 있었다. 이게 말이 되는 거냐, 피식 웃게 만들려는 의도로 이야기하고는 했다. 서울에 가면 그만이었기에 지하철이 지하로 가든 그렇지 않든 상관없는 일이었다. 이런 우스운 생각이 다시 난 데에는 아마 사무실을 옮긴 일이 원인일 것이다. 자취방에서 전 사무실이 있던 삼성역까지는 지하 구간뿐이었으므로 지하철은 제 이름에 딱 어울렸다. 하지만 사무실이 뚝섬역으로 이사한 후에는 하루 두 번 한강까지 건너게 되었다. 나는 군살처럼 붙은 출근길 20분으로 지상의 지하철과 재회했다.

화악 시야가 밝아졌고 창가를 부딪칠 듯 스치던 잡목이 날아갔다. 텁텁한 하늘빛이 거울 같은 강물에 비쳐 열차는 허공을 다녔다. 열차는 미끄러졌다. 다리를 건널 때면 열차의 덜컹거림에 규칙성이 생긴다. 1초보다 길고, 2초보다는 짧은 여백을 두고 부르르 떤다. 옆 사람 어깨에 기대어 잠든 이를 깨우지 않을 만큼 잔잔한 진동이다. 나는 멍하니 창밖을 보며 이 규칙성을 눈치채는 사람이 있을까 생각하고 있었다. 순간 내 평온한 시야 한쪽을 찌르듯 침범하는 기척이 느껴졌다. 반사적으로 그쪽을 보니 마찬가지로 이쪽을 보던 머리 긴 남자가 시선을 피했다. 나는 출입문에서 떨어진 안쪽 자리에 앉아 적당히 비어있는 건너편 좌석의 창문에 시선을 던지고 있었다. 저쪽 남자도 역시 비어있는 내 옆자리 창문으로 창밖 풍경을 관람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와 그의 시선은 열차 한가운데에서 맞부딪치고 말았다. 재빨리 고개를 내려 휴대폰의 검은 액정으로 눈길을 옮겼다. 수그린 고개가 유난히 뻐근했다. 보라고 뚫어놓은 창문인데, 억울함이 들어 억지로 얼굴을 들면 저편에서 여지없이 세 시선이 깜빡였다. 질색하여 눈을 내리깔았다. 정말이지 쓸모없는 창문이었다.

다음 역에 도착한다는 방송이 나왔다. 천장에 박힌 전광판을 힐끗 쳐다봤다. 나 혼자만 그런 게 아니었다. 열차 안 우리의 시선은 물고기 떼로 가득한 그물을 들어 올리듯 한꺼번에 끌려 솟구쳤다. 나와 그들은 열차에 실려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숨 막히도록 무거웠다. 이 육중한 무리는 도대체 무엇인가? 뜨겁게 부푼 살덩이 사이에 내가 박혀 꾸물대고 있었다. 목구멍 속에서 신맛이 났다. 무표정한 나와 그들은 똑 닮은 피로와 규칙을 공유하고 있었다. 나는 피곤하다. 그들도 그렇다. 나는 지루하다. 그들도 그렇다. 우리는 안심했다. 그렇기 때문에 창밖 따위는 볼 수 없었다. 여기는 미술관이나 풍경 좋은 카페 같은 곳이 아니었다. 우리는 고단하고 저마다 삶의 무게로 아찔하다. 이런 신성한 공간에서 누가 감히 여유를 부리며 만용 하는가? 허우적대는 나는 어지러운 머리를 창문으로 치켜들었다. 수십 갈래 눈빛이 살거죽을 잡아당겼다. 내 얇은 피부는 벗겨지기 직전까지 끌렸다가 내가 포기하고 시선을 거두자마자 해방되었다. 달콤한 용서였다. 체념하여 좌석에 몸을 파묻었다.

열차는 매끄럽게 강변역에 멈춰 섰다. 덜컥 문이 열리고 무더운 바람이 쏟아졌다. 사람들이 오갔다. 내 더운 숨이 가슴팍에 닿았다. 입이 말랐다. 지하철이 땅 위를 다닌다니 말도 안 돼. 펑펑 웃으며 멍청하게 묻고 싶은 그런 기분이었다. 그러나 내가 묻기도 전에 대답은 없었다. 얼굴을 들자 쥐색으로 푸른 한강은 온데간데없었다. 푸시시 문이 닫혔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도로 고개를 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