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아이

The Road

1

– …참여에 깊이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작가님의 창작 활동을 응원하겠습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작가님’이 아니었다. 나는 읽던 메일을 잘못 온 편지쯤으로 여기고 보던 휴대폰을 저만치 던져놓았다. 메일은 내 글을 탈락시킨 많은 통지서처럼 값싼 감사와 응원으로 싱거웠다. 마치 우연히 해변에 떠밀려온 병 속의 편지 같았다. 바닷물에 종이는 눅눅하고 절박하게 구조를 요청한 뱃사람은 이미 옛날 옛적 적도의 무인도에서 죽었다. 나는 수백 개의 무의미한 필사본 중 몇 개를 건졌을 뿐이었다. 그나마 답장을 보낸 쪽은 상냥한 편에 속했다. 내 글은 대부분 쓸려가는 모래알이 되어 작은 대꾸 하나 받아보지 못했다. 이제는 기대하는 시간조차 아까웠다. 민박의 작고 딱딱한 침대에 풀썩 드러누웠다. 창문에서 하얗고 은은한 빛이 새어 들어오고 있었다. 고개를 밀어 거꾸로 뒤집힌 겨울 제주 풍경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억새 깔린 들판이 고급스러운 융단처럼 보드라웠다. 낮은 돌담이 기다란 선을 이루며 구불구불 멀리 언덕으로 이어졌다. 새하얀 풍차가 언덕 위에서 소리 없이 회전하고 있었다. 풍경이 내어주는 과분한 평화로움에도 내 마음은 만족하지 못하고 여전히 심란했다. 옛날 한 선장이 신대륙을 향한 위대한 항해를 시작하려고 선원을 모았다. 많은 사내가 모험심을 품고 선장을 찾아왔다. 그중에는 건장한 젊은이의 반절뿐인 키에 나이는 갑절로 먹은 난쟁이가 있었다. 선장은 난쟁이에게 위험천만한 바다에 나가려는 이유를 물었다. 난쟁이는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하늘에서는 새들이 저를 내려다보고, 땅 위에서는 여자들이 저를 내려다봅니다. 그런데 바다에서는 피라미에서 커다란 고래까지 전부 저를 올려다보지 않습니까? 저는 바다 밖에 갈 곳이 없는 겁니다. 항해가 시작되고 하루가 지난 밤중에 난쟁이는 술통에 빠져 죽었다. 술통은 난쟁이보다 컸다. 나는 난쟁이가 바다에 빠져 죽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작년 잘 다니던 은행을 그만두고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주변에서 만류가 많았다. 비웃는 기색보다는 황당한 눈치였다. 당연한 반응이었다. 나는 붓도 악기도 다룰 줄 몰랐다. 재능은커녕 관심도 마땅찮았다. 한 달에 한번 습관처럼 영화관을 들리는 게 내 예술 세계 전부였다. 예술과 가까워질 기미조차 없던 직장인이 심지어 꽤 괜찮은 실적을 쌓고 있던 와중에 작가가 되겠다고 선언한 일이었다. 돌이켜봐도 난감한 농담처럼 들릴 만한 말이었다. 막연하게나마 품고 있던 결심도 아니었다. 벼락이 치듯 짧은 순간에 터진 욕구였다. 누나가 유산했다는 소식에 병문안을 가려고 넥타이를 찾던 그 날 아침의 일이었다. 이제 예술을 해야겠다. 예고도 없는 계시가 야만적인 속도로 머릿속을 잠식했다. 타협도 반발도 있을 수 없었다. 녹초가 돼서 망보는 돛대 위 선원이 마른 입으로 외치는 ‘육지다!’처럼 주저 없이 솟아나는 발상이었다. 나를 사로잡은 열망은 며칠 밤 동안 계속됐다. 그러나 나는 붓도 악기도 제대로 다룰 줄 몰랐다. 결국 소설을 쓰기로 했다. 한 해가 가도록 방에 틀어박혀 머리카락이 어깨에 닿도록 글만 썼다. 하지만 절박함은 막 글을 쓰기 시작한 무명작가에게 과분한 것이었다. 온 힘을 짜낸 글이 열댓 번 정도 거부당했을 때쯤에 신선한 제주의 해풍을 떠올렸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채 훌쩍 떠났다. 공항에서 내리자마자 차를 빌려 해가 지는 쪽으로 쭉 달려 바닷가에 닿았다. 그렇게나 과속한 건 처음이었고 그렇게나 과음한 것도 처음이었다. 깨질 듯한 겨울 바닷바람을 못 이겨낼 때가 되어서야 근처 민박에 들어가서 떨어져 나갈 것 같은 발가락을 꿈지럭대다 잠이 들었다. 멀리서 바람이 부는지 풍차가 크게 한 바퀴 돌았다. 창밖의 풍경도 질려 불쑥 이부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래된 화장대와 옷장 하나씩 놓인 작은 방은 난방을 제대로 하는 건지 발이 닿는 곳마다 돌덩이처럼 차가웠다. 무너질까 조심스러운 미닫이문을 열고 큰방에 나서니 식탁 위 뚱뚱한 텔레비전이 아침 뉴스 소리만 적막하게 내고 있고 주인 할머니는 온데간데없었다. 술을 깨보려는 생각으로 비틀비틀 물병을 찾아 목을 축였다. 몸속에 찬물을 쑤셔 넣자 지끈거리는 머리에 시원한 느낌이 날카로웠다. 파도에 흘려보냈던 정신머리가 슬쩍 돌아오는 듯했다. 뉴스는 점심이 지나서까지 보슬비가 내리다 저녁이 되면 눈이 온다고 했다. 마루가 있는 문간 쪽으로 몸을 당겨 밖을 내다보았다. 그림자 없이 투명한 햇빛이 들이며 숲이며 연기 내는 굴뚝이며 한적한 풍경을 넉넉한 은빛으로 물들였다. 나는 코웃음 치며 리모컨을 꾹꾹 눌러 채널을 돌렸다. 이번에도 뉴스였는데 늦은 아침 시간에 기대할 법한 잔잔함은 찾아볼 수 없고 은근히 비장해 보이기까지 하는 분위기였다. 넓게 트인 바닷가에 불어오는 바람에 노란 폴리스 라인이 정신없이 구불거리고 있었다. 분주해 보이는 경찰과 한가해 보이는 구경꾼이 한데 뭉쳐 한산한 해변 구석에 커다란 점을 만들었다. 그 사이로 큼직한 바위 하나가 길게 쓰러져 있었다. 어디서나 볼 법한 돌덩이의 형상을 하고 있던 바위는 차츰 규칙적인 직선과 곡선의 형태를 잡아갔다. 마침내 카메라가 초점을 완전히 잡았을 때 울퉁불퉁한 바위의 표면은 깊고 무표정한 어떤 얼굴이 되었다. 노려보는 시선에 섬뜩하였다. 바위는 마침내 모아이 석상이 되었다. 모아이는 제주 여기저기 박혀있는 수많은 석상과 달리 얼굴이 반 토막 난 채 모래사장에 고꾸라져 있었다. 흉하게 흙이 드러난 잔디밭부터 모아이가 처박힌 모래밭까지 경사진 땅바닥에는 심하게 나동그라진 흔적이 코끼리가 지나간 것처럼 패여 있었다. 얼굴이 그을린 늙은 어부는 늦은 밤 일을 준비하다가 제정신이 아닌 듯한 차가 모아이를 들이받은 현장을 봤다며 목격담을 더듬더듬 이야기했다. 뉴스는 모아이의 죽음에 분노하는 여러 구경꾼을 인터뷰했고 반드시 살해범을 찾아내겠다는 수사 관련자의 말을 끝으로 다음 소식으로 넘어갔다. 나는 등골을 타고 흐르는 식은땀을 주체하지 못했다. 살벌한 바람 소리와 쿵쿵 거대한 무언가가 굴러떨어지는 진동이 머리를 어지럽혔다. 잔혹한 살해가 벌어진 저 해변은 취기 어린 어젯밤의 기억과 소름 돋게 닮아있었다. 불길하여 숙취가 머리를 죄어오는 것도 잊은 채 황급히 밖으로 뛰쳐나갔다. 뒷마당에는 차 두 세대 간신히 들어갈 만한 면적으로 억새에 둘러싸여 자갈이 깔려 있었다. 빌린 하얀 승용차가 덩그러니 서 있었다. 단숨에 달려간 나는 숨이 막혀 걸음을 서두르지 못했다. 이런 작은 차로 그 커다란 모아이를 넘어뜨릴 수 있는 건지 의심이 들었다. 얼른 차를 확인하고 어처구니없는 생각이었다며 귀찮은 듯 도로 들어가 텔레비전이나 보면 그만인 일이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혼란스러운 어제의 기억 속 차갑게 식어있는 바닷가의 풍경이 신경 쓰였다. 정말 내가 부숴버렸다면? 자수를 해야 하나? 다른 것도 아니고 제주의 모아이를 죽여버렸다. 나는 성난 손가락질 사이에서 고개를 푹 숙인 채 끌려가는 내 모습을 떠올렸다. 모든 절차는 속전속결로 끝나고 어느새 재판장에 앉았다. 소리치는 방청객을 등에 업은 검사는 기세등등했다. 높은 의자 위 판사마저 싸늘한 시선으로 쳐다보는 듯했다. 티 없이 말끔한 법복 가슴께에 어울리지 않는 주름이 접혀 있었다. 저리도 엄숙한 주름이라니. 참다가 피식 웃어버렸고 불같던 분위기에 기름을 부어버렸다. 거센 인파가 순식간에 주위로 둘러찼다. 욕설과 주먹질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오해입니다. 주름 때문이라고요. 저 주름! 필사적으로 항변하는 내게 냉담한 판결이 내려졌다. 나는 차 뒤에 서서 꼬리를 무는 내 생각과 엉거주춤하게 대치하고 있었다. 뒤편에서 살짝 보이는 사이드미러 양쪽은 문제가 없어 보였다. 심드렁하게 뺨을 긁는 맹수에게 다가가는 조련사처럼 한발 한발 주의를 기울였다. 운전석 문짝은 흠집 없이 괜찮았다. 반쪽짜리 안도를 가지고 걸음을 이어갔다. 마침내 차 앞부분이 시야에 들어왔다. 내내 뒤통수를 무겁게 짓누르던 두통이 일순간 머리끝까지 쫘악 뻗쳐나가 아득했다. 날쌔고 포악한 괴수가 물어뜯은 것처럼 앞 범퍼부터 보닛 중간까지 성한 곳이 없었다. 막막했던 기억이 터진 댐처럼 쏟아져나왔다. 나는 파도에 쓸린 듯 트인 길 위를 질주하고 있었다. 사정없는 직선으로 짠 공기 사이 획을 긋는 헤드라이트에 해방감과 망연자실을 동시에 느끼고 있었다. 알코올에 절인 머리는 고쳐야 했던 문장, 적지 말았어야 하는 단어를 자꾸만 되새겼다. 막막한 절망감이 발작하듯 가슴을 후려쳤다. 과감하게 액셀을 밟고 있었지만 행선지 없는 방향은 위태롭기만 했다. 창문으로 불어오는 바닷바람은 기대와 달리 무거웠다. 그때 헤드라이트가 비추던 공허한 바닥에서 무언가 불쑥 튀어나왔다.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 급히 핸들을 꺾었다. 귀청을 찢는 마찰음이 길게 이어졌고 고꾸라지는 충격과 함께 자동차가 섰다. 나는 갑작스러운 사고에 생각이 멈춰 얼얼한 손만 벌벌 떨고 있었다. 뒤를 돌아보았지만 도로는 여전히 텅 비어있었다. 내가 봤던 건 빠진 이에 피곤한 눈으로 거적때기를 움켜쥐는 걸인이었다. 아니 노란 꼬까신을 신고 통통 뛰는 흰 피부의 소녀였다. 아니 얼룩 털 길고양이였다. 독한 술 냄새가 올라와 눈이 핑 돌았다. 정신 못 차리고 주위를 살피는데 웬 돌덩이가 비스듬히 넘어져 있었다. 가슴이 내려앉는 듯했다. 바다빛을 등진 모아이가 그늘진 한쪽 눈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죽일 것처럼 날카로운 시선에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두려웠다. 입안이 순식간에 바싹 말랐다. 돌아보지도 않고 그 자리에서 달아났다. 겁에 질려 한참을 도망친 후에야 민박에 들어갈 생각을 했다. 이제 주름 잡힌 법복은 내가 입고 있었다. 나는 될 수 있는 한 허리를 꼿꼿이 펴고 또박또박 말하려고 애썼다. 저는 저의 죄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귀중한 한 생명을 앗아갈 뻔했던 위급한 상황에서 벌어진 안타까운 실수라는 점을 고려하지 않을 수만도 없습니다. 이에 저는 저에게 다음과 같이 선고합니다…. 절절한 목소리에도 군중의 외침은 변함없이 격했다. 뻔뻔한 소리 말아라. 네놈이 말하는 생명은 불쌍한 걸인의 것이더냐 안타까운 소녀의 것이더냐. 도둑고양이를 지키기 위해서 모아이님을 죽였다는 것이냐. 나는 격노한 이들의 포효 속에서 걷잡을 수 없는 추락을 경험하고 있었다. 만신창이 차 앞에서 파르르 떨었다. 주춤하는 두 다리가 묶인 듯 움직이지 않았다. 섬뜩한 파란빛 겨울 하늘이 영하의 온도로 내게 속삭였다. 달아나. 멀리 달아나. 그렇지 않으면 모아이가 쫓아올 거야. 귓가의 목소리는 차고 가녀리고 긴박했다. 나에게는 유예가 필요했다. 갑자기 더운 기운이 발끝부터 훅 올라왔다. 멍하니 있을 수는 없다는 생각에 민박으로 뛰어 들어갔다. 제주에서 벗어나야만 했다. 아작난 차를 타고 갈 수는 없었다. 너무 눈에 띄었다. 나를 쫓아오는 자들이 발견하기라도 하면 잡히는 건 그야말로 시간문제였다. 먼지를 마셔가며 민박의 오래된 창고를 뒤졌다. 꽤 많은 양의 등유가 차 있는 기름통을 찾을 수 있었다. 방에서 차 키와 옷가지가 든 가방을 집어 들고 곧장 밖으로 나갔다. 조수석에 짐을 싣는데 별안간 큰 소리가 민박 반대편 입구 쪽에서 들려왔다.
– 계십니까!
나는 손을 멈추고 숨소리도 내지 못한 채 굳어버렸다. 덜덜 떠는 걸음으로 담장에 몸을 붙여 슬쩍 너머를 염탐했다. 제복을 입은 경찰 둘이 입구 앞에서 서로 무어라 이야기하고 있었다. 이곳저곳을 살펴보는 시선이 여기에 닿기 전 가까스로 몸을 숙였다. 이제 정말로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낮춘 자세 그대로 차에 탔다. 다행히 제대로 시동이 걸렸다. 조금 망설이다가 거칠게 가속해서 억새밭 한가운데로 파고들어 갔다. 차는 심하게 요동쳤다. 새하얀 물결이 폭풍 속에 들어온 것처럼 사방에서 차를 후려쳤다. 진동하는 핸들을 꽉 움켜쥐고 사정없이 직진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억새밭이 끝나고 텅 빈 도로가 나타났다. 나는 고민하다가 바다 반대쪽 언덕이 있는 방향으로 차를 틀었다. 곧게 뻗은 언덕길 너머에서 다른 차가 나타나지 않을까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속도를 내서 달렸다. 그렇게 빈 잿빛 들판에 이르러서야 차를 세웠다. 멀리 보이는 작은 시골집과 크게 돌아가는 풍차 소리 빼고는 아무것도 없는 벌판이었다. 나는 차를 세우기가 무섭게 밖으로 뛰쳐나가 정신없이 기름을 뿌렸다. 진한 기름 냄새에 머리가 어지러웠지만 쉴 틈은 없었다. 가방에서 수건 하나를 꺼내 기름을 적셨다. 라이터를 꺼내어 불을 켰지만 거센 바람에 자꾸 꺼졌다. 나는 악에 받쳐 불을 켰다. 간신히 옮겨붙은 불은 이윽고 무서울 정도로 커졌다. 기름으로 흠뻑 젖은 운전석 시트에 불붙은 수건을 던져놓고 문을 닫았다. 소름 끼치는 정적이 맴돌았다. 간간이 들리는 풍차의 날갯소리가 답답한 가슴을 쥐고 흔들었다. 곧 불길은 차를 완전히 휩쓸어 가까이 있을 수 없을 정도로 뜨거워졌다. 나는 도로 쪽으로 내달렸다. 한참 가서 도로에 닿아 더운 숨을 몰아쉴 때가 돼서야 활활 타고 있는 차가 눈에 들어왔다. 넓은 들판에 작은 붉은 점이 폭포 같은 검은 연기를 쏟아내고 있었다. 나는 날름대던 불길이 사그라들기까지 긴긴 시간 동안 찬 바람만 맞고 있었다. 땀이 식어 팔다리가 오들오들 떨렸다. 눈처럼 허연 잿가루가 바람에 실려 이쪽으로 왔다가 허공에 녹아 조용하게 사라졌다. 기진맥진하여 제대로 설 수도 없는 상태였지만 안도하는 마음은 생기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쫓기고 있었다. 그때 휴대폰이 진동했다. 메일 한 통이 와있었다. 잊고 있었던 한 출판사가 내 글을 공모에 선정했다는 소식을 보냈다. 감사도 응원도 적혀있지 않았고 모월 모일 어디에서 보자는 짧은 통지만이 들어있었다. 들판에는 탄내가 걷히고 그을음 덮인 뼈대만이 쓸려간 모래성처럼 서 있었다. 부웅 풍차 소리가 고요했다. 붓도 악기도 다룰 줄 몰랐던 나는 작가가 되었다.

2

– 작가님은 만약 제가 살인마라면 어떡할 겁니까?
교수가 뻥 뚫린 도로에서 시선을 돌리지 않은 채 음산함을 가장하여 목소리를 흘렸다. 길 양옆으로 키 높은 나무가 보기 좋게 늘어서 환한 햇살에 얼룩덜룩한 그늘을 남기고 있었다. 달리는 차 안은 히터로 훈훈하고 정오를 알리는 라디오 소리가 편안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내가 받은 물음은 난데없었다. 나는 잘못 들었나 싶어 반문했다.
– 조용한 여행지에서 차를 얻어탔는데 하필 잔인한 살인마가 몰고 있는 차였던 거죠.
교수는 입꼬리에 장난기를 달고 내 대답을 채근했다. 말투에서 느껴지는 밝은 분위기가 교수의 나이를 실제보다 훨씬 젊게 만들었다. 교수는 어스름한 회색빛이 도는 곱슬머리에 윤이 나는 갈색 테 안경을 쓰고 있었는데 눈 끝이 둥글게 내려가고 주름이 가지런하여 부드럽고 지적인 인상을 주었다. 미소는 유달리 커서 입안으로 상쾌한 우윳빛 치아가 가지런히 눈에 띄었다. 그것을 보자면 오른편 앞쪽에 난 내 덧니가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다. 교수는 서울에서 그림을 가르치는데 고향이 제주로 연말이 되면 한 번씩 내려온다는 것이었다. 교수의 등장은 내게 천만다행이었다. 실수로 놓고 내린 지갑은 추적을 따돌리기 위해 태운 차와 함께 잿가루가 되었다. 가장 가까운 버스 정류장도 몇 시간은 걸어야 했다. 한시라도 빨리 이 섬을 빠져나가야 했지만 당장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코끝을 달구는 찬바람을 맞으며 망연히 서서 얻어탈 만한 차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여차하면 몸을 숨길 덤불까지 골라놓았지만 쌀쌀한 도로에는 한동안 누구도 지나가지 않았다. 휑한 들판 위에 얼마나 서 있었을까 저편에서 검은 자동차 한 대가 이쪽으로 속도를 줄이는 것이 보였다. 차는 내 왼편에 스르륵 붙더니 멈춰 섰다. 조수석 창문이 내려가더니 불쑥 한 남자가 몸을 내밀며 내 몰골을 훑어보았다. 차에서 몸 좀 녹이고 가시죠. 교수는 스스럼없이 모아이 살해범에게 문을 열어주었다. 교수의 태도로 보았을 때 그보다 더한 죄를 지은 사람이라도 그의 차를 얻어탈 수 있었을 것이다. 교수는 공항 근처 시내까지 데려다 달라는 내 부탁을 흔쾌히 수락했다. 나는 히치하이크에 성공하고 외딴곳에 홀로 남은 사연을 꾸며 둘러댈 수밖에 없었다. 이러저러한 일로 여행을 온 참인데 한창 술을 마시다 깨보니 세상 처음 보는 곳이었다. 나도 믿기 힘든 이야기였다.
– 상심을 잊으려고 떠난 여행지에서는 과음하기 마련이죠.
그러나 교수는 이야기가 재밌든지 싱글벙글했다. 또 내가 그렇게 깨어나 어처구니없어하던 때 내 글이 공모에 선정됐다는 소식을 받았다는 말을 듣자,
– 그럼 작가님이 아니십니까? 지금부터라도 그렇게 불러야겠군요.
하며 크게 웃고 나를 축하하는 것이었다. 그 뒤로 나를 작가님으로 불렀는데 나로서는 무척 어색했다. 마치 시끄러운 거리에서 이쪽을 향해 무어라 외치는 행인의 목소리 같았다. 소리를 따라 저쪽을 쳐다보기는 하지만 행인이 나에게 소리친 것인지 가늠할 수 없었다.
– 제가 살인마의 차에 탄 거라면 다음 책은 쓰기 쉽겠군요.
답을 재촉하던 교수는 내 대답에 만족했는지 후후 소리 내며 맞장구를 쳤다. 명랑하면서도 고급스러운 것이 교수의 아우라였다. 내 누나도 고생에 볼살이 움푹 깎이지만 않았더라면 이런 고상함을 가졌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버지는 첼로를 켜는 사람을 만나 집을 나갔다. 어렸던 나는 아버지가 금광을 파서 번쩍번쩍한 차를 타고 돌아올 거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단지 아버지가 첼로보다 탄광에 더 어울린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고집이었다. 그때 정신을 놔버린 어머니를 대신해서 누나는 사고만 치던 나와 말수 적고 깨작거리는 짓이 보기 싫었던 남동생을 맡아 길렀다. 누나는 어린 내가 보기에도 안타까울 정도로 고되게 일했다. 내가 금광 광부 다음으로 돈을 잘 번다고 여겼던 은행원으로 일찍 진로를 정한 이유도 누나에 대한 동정심이 컸을 것이다. 이따금 어머니의 발작 같은 통곡이 듣기 힘들어질 때면 우리 남매는 좁은 옥탑방을 빠져나와 한밤의 고갯길을 내려다보면서 불 꺼진 가로등을 새곤 했다. 누나는 늦게까지 일하고 언덕 중턱의 집까지 가파른 귀갓길을 걷느라 피곤한 와중에도 나와 동생을 위해 책 몇 권을 빌려왔다. 대부분은 내가 보기에 너무 유치했다. 하지만 문장을 읽는 누나의 시큰한 목소리와 살갗에 닿는 보드라운 밤바람 같은 그 시간만큼은 애틋해서 나는 뜬눈으로 누나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언젠가 동생은 몽당연필로 연습장에 이야기를 써서 가져왔는데 내용이 볼만하였다. 누나는 동생의 글을 여러 번 다시 읽을 정도로 무척이나 기뻐했다. 동생은 말로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누나가 흐뭇해하는 게 맘에 드는 모양이었다. 그들의 다정한 모습을 볼 때면 나는 심드렁한 기색을 죽이려고 힘을 써야 했다. 본래 나에게 왔어야 했을 누나의 애정을 상당 부분 빼앗기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나와 동생을 위해 고된 일도 마다하지 않는 누나에게 들키기에는 너무나 창피한 마음이었다. 나는 누나를 위해 동생의 글을 읽었다. 밤중에 옹기종기 모여 누런 가로등 불에 동생의 글을 비춰보는 것은 어느새 우리의 일과가 되었다. 내 동생은 나보다 작가가 어울렸다. 분명 누나도 그것을 바랬을 것이다. 그러나 동생은 죽었고 작가는 나다. 애석한 일이었다. 나는 교수에게 형제가 있냐고 물었다. 뜬금없는 질문이었던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쪽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이내 가늘게 눈웃음 지으면서 형이 한 명 있다고 했다. 자신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진짜 예술가라고 덧붙였다. 교수의 말속에는 친근감이 있었다. 동시에 어떤 거리낌을 숨기고 있다는 느낌도 들었다. 그 생각을 끝으로 할 말이 없어져 창밖만 보았다. 히터의 바람도 어느새인가 답답했다. 오로지 여기서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길 염원했다.

내 바람을 비웃기라도 하듯 얼마 지나지 않아 차가 멈춰 섰다. 흰옷을 맞춰 입은 사람들이 긴 행렬을 이루며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사람들은 한쪽 수풀에서 나와 반대쪽 평원으로 걸으면서 도로를 건너고 있었다. 쭉 늘어선 행렬은 도무지 끝을 가늠하기 어려웠다. 줄은 들쭉날쭉했고 사람들도 걸음이 어색한 꼬마, 민머리의 소년, 만삭의 임산부, 허리가 굽은 노부부까지 다양했다. 전부 아래까지 덮는 천 옷을 걸치고 있었는데 장식 없이 새하얀 옷이 한꺼번에 바람에 나부끼자 파도에 조각나는 햇빛을 보는 듯 눈이 따가웠다. 행렬은 흐트러짐 없는 숙연함을 얼굴에 담고 고행자처럼 맨발로 걷고 있었다. 느닷없이 나타난 장대한 행렬에 적잖이 당황했다. 행렬이 끝나기까지 몹시 길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기다려야 할 것은 분명해 보였기 때문에 우리는 잠시 행렬의 허리를 끊고 차를 지나보내도록 양해를 얻기로 했다. 답답한 상황에 비실비실 새어 나오는 한숨을 참아내고 교수와 함께 차에서 내렸다. 나는 몸집이 큰 중년 사내 곁에 다가서 가능한 가장 신사적인 태도로 잠시 길을 내줄 수 있냐고 물었다. 남자는 내 쪽을 힐끗 보는데 그치고 자신은 이미 적잖이 바쁘다는 눈치를 보이며 느릿한 걸음을 계속했다. 남자의 모습에 기가 차고 짜증이 나서 사람 하나하나를 붙들어가며 이 줄이 무엇이길래 길 한복판에 차를 묶어두고 있는 거냐며 따져 물었다. 그러나 내 필사적인 몸부림은 행렬의 속도를 아주 약간 늦춰 놓았을 뿐 그들은 냉담하게 걸음을 이어갔다. 마치 흐르는 강물을 몸을 던져 막아 세우는 것 같았다. 나는 기진맥진하여 몇 발치 떨어진 곳에 서서 힘없이 행렬을 바라보았다. 그때 교수가 행렬에서 걷던 한 여자를 데려와 도움을 받을 수 있겠다며 나에게 소개했다. 여자는 큰 키에 흰옷과 대비되는 새까만 머리카락을 어깨까지 늘어뜨렸는데 이목구비가 머리카락 사이로 간신히 보이는 수준이었다. 여자는 한눈에 봐도 무거워 보이는 족쇄에 묶여 있어 드러난 발목은 시퍼런 멍투성이였다. 그러나 걸음걸이가 사뿐사뿐하고 가벼워 형벌을 받는 여자의 모습은 자못 괴기스럽기까지 했다.
– 당신이 그 작가님이시군요? 반갑습니다. 저는 이분들을 도우며 함께 행진하고 있는 수녀입니다.
수녀의 악수를 받으면서 어떻게 그것을 아는 건지 물었다. 나는 작가가 된 지 채 하루가 지나지 않았다. 수녀는 내 질문에 아리송한 미소를 얼굴에 띄었다.
– 행진에서 벗어난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으니까요. 듣기로는 작가님이 가장 최근이었다죠?
수녀는 나를 다른 사람과 완전히 착각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나는 이 행렬에 가담한 적은커녕 맞닥뜨린 적도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급했기 때문에 작은 오해는 무시하기로 하고 잠시 행렬에 틈을 만들어 줄 수 없겠냐고 물었다. 수녀는 고개를 저으며 어렵겠다고 대답했다.
– 저 혼자는 작가님의 바쁜 사정을 이해할 수 있겠지만 다른 분들은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다들 조바심이 났으니까요.
– 이 줄이 대체 뭐길래 그러는 겁니까? 분통이 터져 수녀에게 소리쳤다. 행렬의 걸음은 느리기 짝이 없었다. 척 보기에도 목적지를 달가워하는 눈치가 아니었다. 채찍질이 두려워 도살장으로 억지스러운 걸음을 옮기는 송아지 같은 모습이었다. 수녀는 내 말을 듣고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걸 당신이 모르면 안 되지 쏘아붙이고 싶은 기분을 애써 숨긴 모습이었다. 수녀는 이들이 병자들이며 병이 낫게 해달라고 모아이님께 빌러 가는 길이라고 대답했다. 나는 한편으로 뜨끔하면서도 무덤덤하게 걷고 있는 행렬이 어떤 병을 앓고 있는지 알 길이 없어 반문했다. 그러자 수녀는 말없이 자신의 옷을 끌어내려 어깻죽지를 보여주었다. 나는 입을 틀어막고 구역질이 나는 것을 간신히 참아야 했다. 앙상하고 창백한 피부는 노랗게 짓무른 고름이며 벌레가 꿈틀대는 듯 촘촘히 솟아난 흉터와 아물 기색이 보이지 않는 상처로 가득했다. 생전 맡아본 적 없는 썩은 내가 풍기는 것 같아 숨이 막혔다. 수녀는 내 반응에 코웃음 치며 옷자락을 올려 살갗을 덮었다. 그새 낯설게 되었나 보군요. 중얼거리는 말뜻을 어질어질한 내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었다. 물음 하나를 간신히 입 밖으로 꺼냈다.
– 정말 모아이가 당신들의 바람을 이뤄줍니까?
– 그렇지 않고서야 이 많은 사람이 행진할 리 없지 않나요? 이분들은 모아이님을 처음 뵈지만, 그분이 이루는 기적만큼은 생생하게 전해 들었기 때문에 이렇게 고단한 길을 망설임 없이 갈 수 있는 겁니다.
그렇게 대단한 모아이가 고작 취객이 몰던 차에 받혀 쓰러졌단 말인가. 당신들이 믿는 신성은 적당히 꾸며낸 빈약한 우상이 아닌가. 따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모아이와 함께 이들이 쫓는 기적마저 죽이고 말았던 나는 입을 열지 못했다. 수녀의 당당한 목소리에 가슴을 움켜쥐는 듯 죄스러웠다. 행렬을 멈춰 세우려던 나는 그만 자신이 없어져 주춤한 채 입술만 씹었다. 도리 없이 난처한 이 마음은 그 무렵과 비슷했다. 나는 그해 겨울에 이르자 동생에게 질려버렸다. 수십 가지 이유를 들 수 있었지만 전부 핑곗거리였다. 동생은 어머니를 포기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새벽이 되면 일어났고 음산한 마녀가 되어 불길한 소리를 중얼거렸다. 나와 누나는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 된 어머니의 모습을 피로와 포기 사이쯤에서 받아들였다. 그러나 동생은 달랐다. 어머니의 저주가 시작될 때면 낯가리며 쑥스러워하던 동생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끈질긴 투사가 나타났다. 동생은 발광하는 어머니의 몸짓에 온 힘을 다해 맞섰다. 아이의 목소리로 빌기도 하고, 협상을 시도하기도 하고, 완강하게 버티기도 했다. 결과는 항상 같았다. 어머니는 다음 날 새벽이 되면 다시 신음하며 동생을 깨웠다. 그들은 멈추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누나는 죄지은 사람처럼 안절부절못했다. 나는 그 모습을 참을 수 없었다. 누나가 나와 동생에게 평화를 가져다주기 위해 애쓰고 있는데 동생의 행동은 그런 노력을 무시한 교만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화를 낼 수도 없었다. 끝나지 않을 싸움을 위해 매 꼭두새벽 일어나는 동생의 슬픈 각오 앞에서는 도무지 떳떳할 수 없었다. 나는 상심 속에서 기약 없는 관망을 계속했다.
그때까지 말을 듣고만 있던 교수가 미간을 찌푸리며 나와 여자 사이로 한 걸음 끼어들었다.
– 저 뒤쪽에 있는 사람들은 뭡니까? 앞선 사람들과는 또 달라 보이는데요.
교수의 예리한 시선을 따라가니 과연 어딘가 달라 보이는 행렬이 있었다. 차림새는 비슷했지만 몰골은 더 험했다. 평온으로 굳어있던 앞사람들과는 달리 뒷사람들의 표정은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얼굴은 크고 작은 수많은 생채기로 성한 곳이 없었다. 날카롭게 자란 손톱으로 자신의 살갗을 쉴 틈 없이 쥐어뜯고 있었다. 집요한 손놀림으로 얼굴에 긴 상처를 그리고 나면 표정은 잠깐 편안해졌다가 얼마 가지 않아 무거운 슬픔이 내려앉았다. 피부를 찢어발기는 손길은 점점 악착스러워졌다. 하얀 옷은 눌어붙은 핏물과 막 떨어진 핏물로 얼룩덜룩했다.
– 저들은… 모아이님의 덕분에 병이 나은 분들입니다.
– 왜 스스로 아픔을 주는 거죠?
– 더는 모아이님이 필요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불쌍하지요, 모든 빛을 잃어버린 기분일 겁니다. 아! 저분들이라면 여러분들을 위해 잠시 걸음을 멈춰줄 수 있겠네요.
수녀는 우리의 말을 기다리지도 않고 뒷사람들에게 다가갔다. 여자가 이야기하자 그들의 시선이 일제히 이쪽을 향했다. 충혈된 눈빛이 겹겹이 쌓이자 소름이 끼쳤다. 그들의 눈은 무수한 절망 위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기대로 흐물거렸다. 한 코미디언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각국의 왕에게 초청받을 정도로 유명했던 코미디언은 언젠가 자신의 모든 유머가 집대성된 노트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코미디언은 당장 우울증에 드러누웠고 많은 사람이 노트를 찾으려고 힘썼지만 허탕이었다. 결국 코미디언은 좌절 속에 죽고 말았다. 수년이 지나서야 노트가 발견되었다. 코미디언의 목숨줄을 잡고 있던 노트는 완전한 백지였다. 나와 교수는 눈길을 참지 못하고 차에 올라탔다. 우리는 수녀와 뒷사람들이 만들어낸 인색한 틈 사이로 차를 몰았다. 하얗게 센 머리카락마저 핏빛으로 얼룩진 한 사람이 빠져나가는 우리를 길게 응시했다. 행렬과 한참 멀어져 마침내 그들이 보이지 않게 됐을 때야 비로소 숨을 돌릴 수 있었다.
– 대체 뭐였을까요? 그 행렬은.
– 글쎄요…. 작가님도 직접 듣지 않았습니까?
교수는 콱 액셀을 밟았다. 차는 쏜살같이 질주했지만, 도무지 달아났다는 기분은 들지 않았다.

3

끝도 없이 쾌청할 것만 같았던 하늘에 축축한 구름이 끼고 있었다. 내려가는 고갯길에서 가물가물한 비행기의 모습이 언덕 사이로 사라졌다. 여전히 급한 상황에 놓여있다는 것을 의식하고 있었지만 탈출이 가까워졌다는 사실에 안도하는 마음도 있었다. 거기에 지루한 풍경이 계속되니 몸이 노곤해지는 것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 교수에게 제주에 가볼 만한 곳이 있는지 물었다. 이야기라도 하면서 졸음을 쫓으려는 목적이었지만 내심 여기 살았던 사람만이 말해줄 수 있는 특별한 장소를 머리 한편에 넣고 싶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없었던 작가의 사명감이 생기기라도 한 건지 혼자 의아했다. 힘들이지 않고 명쾌한 말만을 내놓던 교수는 어울리지 않게 시간을 끌었다. 수년의 서울 생활이 교수를 제주에서 떨어뜨려 놓기라도 한 것일까.
– 마땅히 소개할만한 데는 없는 것 같습니다. 몇 해를 서울서 살았지만 늘 제주를 집이라고 생각해서 골라놓은 곳은 없네요.
교수는 고개를 흔들면서도 고민을 이어가고 있는 듯 보였다. 누구나 자신의 집을 낯설게 여기고 싶지 않은 법이다. 아직 은행에 있을 무렵 갓 대학을 나온 신입이 후배로 들어온 적이 있었다. 후배는 교수처럼 제주에 살다가 대학을 위해 서울로 올라왔고 일을 구하면서 아주 눌러 살게 된 참이었다. 후배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녀의 상경은 사고였다. 오래전부터 서울을 꿈꾸던 한 친구가 있었다. 친구는 추운 빗속에 형형색색 사람들로 북적이고 꿈틀대는 도심의 활기를 동경하고 있었다. 후배는 그런 동경을 부러워했다. 제주에서의 생활에 간간이 투정을 부렸지만 그뿐 섬 밖에서 살아가는 건 단 한 번도 상상한 적이 없었다. 친구는 바다 건너 강 옆의 도시에 바라는 무언가가 분명 있을 것이라 굳게 믿고 간절하게 원했다. 그래서 친구는 자신보다 몇 발짝 앞서 있었다. 곧 친구와 같은 서울의 대학에 지원했고 친구 대신 대학에 합격했다. 지독한 사고였다. 목적지를 잘못 보고 기차에 타버린 꼴이었다. 잘못된 것을 알았지만 이미 플랫폼은 따라잡을 수 없는 속도로 멀어지고 있었다. 그렇게 후배는 서울에 갔고 섬과 도시 사이의 거리는 생각보다 멀었기 때문에 친구와 연락은 점차 뜸해졌다. 시간이 갈수록 거리는 늘어만 갔다. 낯선 동경으로 시작한 체류는 길어졌다. 서울은 괴상한 활기를 가지고 있었다. 후배는 서울에 살면서 제주의 바다를, 바위를, 거리와 카페를 사랑하는 여러 사람을 만났다. 제주에 대해 말하자면 그들은 시인이 되어 퀴퀴한 먼지 쌓인 혀를 드러냈고 도로 위 경적에 둔해진 양 귀를 쫑긋 세워 맞장구쳤다. 후배는 그들이 먹고 자고 걷는 도시가 아니라 바다 건너 찢어진 땅 조각을 사랑하는 까닭을 알 수 없었다. 사고로 떠나온 그 공간이 그리도 가치 있는 것이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도시의 애정 역시 사고였다. 도시는 귀엽고 아름다운 모든 것을 섬에 가두어두고 추한 자신의 모습을 비춘 거울을 옆에 두어 계속 섬을 바라볼 수 있었다. 섬이 달아나 날아가 버린다면 그들의 충혈된 양 눈은 대체 어디를 향해야 하는가. 대책 없이 꿈틀대는 눈알의 움직임을 상상하고 그만 정이 떨어졌다. 나는 마무리되는 술자리에서 후배에게 지나가는 말로 친구의 근황을 물어본 적이 있었다. 막연히 모르겠다는 말이 나올 줄 알았는데 돌아온 반응은 의외였다. 얼마 전 퇴근길에 우연히 친구를 보았다는 대답이었다. 친구는 술집에 가는 검은 승합차에 다른 여자들과 나란히 자리를 잡고 있었다. 결국 바라던 서울에 와 있었다. 스쳐 가는 친구의 모습을 봤을 때 후배가 느낀 감정은 반가움과는 거리가 먼 당혹감, 숨기려던 것을 들켰을 때 튀어나오는 부끄러움이었다. 후배는 아직도 친구에게 도시의 감상을 듣지 못했다. 나는 그녀의 고백을 조용히 듣고 있다가 불쑥 안아주고 싶다는 동정심이 들었다. 그러나 내 마음은 찾아오지 않는 선고를 기다릴 뿐인 죄수로서 갖는 동료애에 불과했다. 나의 연민은 자선냄비의 동전만큼이나 가볍고 덧없이 사라졌다.
– 알던 사람이 하나 있는데 그 사람도 그렇게 이 섬을 멋없게 여겼죠.
내 이야기에 교수가 눈을 으쓱였다. 마치 다음에 무슨 말이 나올지 안다는 듯 심드렁한 눈치였다. 다만 줄줄 흐르는 교양이 그런 기색을 감추고 있었다.
– 친구 따라 창녀가 됐다던가…. 마땅찮은 이야기네요.
– 그렇습니까?
교수는 말끝을 올렸지만 되묻는 어투는 아니었다. 고작해야 두 문장에 불과한 내 이야기는 제주에게 너무 익숙한 것일지도 몰랐다. 교수의 눈동자에서 낯선 잔물결이 보였다. 그 조류는 내가 쳐버릴 뻔한 소녀의 장난스럽고 슬픈 미소와 은행을 떠나던 날 후배가 보였던 굳은 눈빛과 동생의 장례식에서 누나가 지어 보였던 암담한 그러나 어쩐지 시원한 낯빛과 닮아 있었다. 나는 교수가 쫓기고 있다는 의심을 지워버릴 수가 없었다. 경계하는 마음을 꾹꾹 눌러가며 교수의 시선을 따라 메마른 도로를 쳐다보았다. 두 도망자가 올라탄 이 길은 변함없이 푸르고 차갑고 불안했다. 길가의 숲에서 맹수라도 뛰쳐나올 것처럼 긴장한 채 가슴팍의 옷 가방을 부여잡았다. 끊어질 듯 팽팽하게 박동하는 심장이 손끝에 닿았다. 기억 저편에 끈덕지게 남아 익숙한 감각이었다. 그건 분명 예정된 일이었다. 우리 남매는 알고 있었다. 첫눈이 예고된 겨울밤 어머니는 여느 때처럼 자신에게 맞서던 동생의 뺨을 끝끝내 치고 말았다. 어머니에게도 충격이었던지 한동안 그녀의 새벽은 조용했다. 그러나 동생에게 어머니의 침묵은 참을 수 없는 모욕이었다. 동생은 차오르는 분노에 어쩔 줄 몰라 했다. 아무도 모르게 한밤에 일어나 저 혼자 거리를 쏘다니는 일이 잦았다. 동생의 글은 날이 갈수록 표독스러워졌다. 어느 날 으슬으슬한 이부자리를 버티지 못하고 밤중에 눈이 떠졌다. 옆방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조심스레 다가가니 사나운 그림자가 몸을 숙이고 생쌀을 우득우득 씹어먹고 있었다. 그림자가 이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동생의 얼굴이 나타났다. 동생은 허기지다고 했다. 동생의 달랠 길 없는 배고픔은 한겨울 내내 이어졌다. 네 식구를 간신히 먹여 살리던 누나도 처음에는 안타까워하며 애써 동생을 챙겼지만 점차 낯빛이 어두워졌다. 동생은 배고프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고 그렇게 먹어 치운 밥은 다 어디로 갔는지 날이 갈수록 수척해졌다. 누나는 고갯길의 다른 또래처럼 홍등가에 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누나는 술을 따르고 이야기만 조금 어울릴 뿐인 일이라고 했다. 나를 안심시키려는 말이었다기보다는 자신을 위로하는 말이었다. 절망적인 상황에 화도 나지 않았다. 우리는 한계까지 늘어난 줄 끝에 매달려 최후를 기다리고 있었다.

쿵 박살 나는 듯한 충격에 차가 멈춰 섰다. 나와 교수는 얼이 빠져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다. 차에서 내려 살펴보니 범퍼가 약간 찌그러져 있고 두세 걸음 앞에 웬만한 개보다 덩치가 큰 갈색 털 고양이가 피를 흘리고 쓰러져 있었다. 고양이는 마지막 숨을 몰아쉬듯 부르르 떨다가 이내 풀썩 굳어버렸다.
– 이것 참…. 죄송합니다. 신경을 썼어야 하는데.
교수가 앓는 목소리로 말하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나는 신발코로 툭툭 고양이를 쳤다. 불쌍한 고양이는 털 하나 미동하지 않았다. 산에 살던 녀석이 겨울이 돼서 먹이를 찾으러 내려온 모양이라고 교수가 말했다. 처리를 위해 트렁크에서 장갑과 삽 같은 것을 가져와 달라고 내게 부탁했다. 나는 순순히 교수의 말대로 움직였지만 고양이가 썩어 가루가 될 때까지 이 적막한 도로에 차가 다닐 것 같지는 않았다. 차의 뒤꽁무니를 더듬어 트렁크 손잡이를 찾았다. 힘주어 잡아 올렸지만 안쪽에서 무언가 걸렸는지 잘되지 않았다. 주먹으로 문짝을 퉁퉁 치고 단숨에 트렁크를 열었다. 승용차의 좁은 트렁크는 갖가지 기구로 가득해서 어떤 것이 문을 막고 있었는지 가늠이 어려울 정도였다. 톱, 밧줄, 다리만 한 망치와 무더기로 쌓여있는 청테이프. 미술을 가르친다는 교수의 차에 실려있기에는 하나같이 어색한 물건이었다. 구석에 짙푸른 방수포로 싸인 길고 단단한 물체가 있었다. 잠깐 저쪽의 눈치를 살피고 으슥한 곳으로 손을 내밀었다. 워낙에 겹겹이 싸여 있어 안쪽을 제대로 보기 힘들었다. 양파 껍질을 벗기듯 방수포를 걷어내니 오래된 그러나 변함없이 견고한 도끼가 나타났다. 나는 그만 숨을 멈추고 말았다. 어둠 속에서도 예리한 빛깔로 번뜩이는 도끼날에 무언가 묻어 있었다. 서둘러 닦은 흔적이 보였다.
– 못 찾으시겠나요?
교수가 큰소리로 외쳤다. 화들짝 놀라 방수포를 도로 덮었다. 막 포장을 뜯은 것처럼 깔끔한 목장갑 한 짝과 빨간 손잡이가 달린 삽을 꺼내 트렁크를 닫았다. 교수는 내게서 장갑을 건네받아 익숙한 손놀림으로 고양이를 잡아 도로변으로 옮겼다. 삽으로 흙과 돌을 파내 대강 쌓으니 금세 얕은 무덤이 되었다. 교수는 빌린 차였는데 아깝게 됐다며 범퍼를 살피다가 손을 툭툭 털어버리고 쓰게 웃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곁눈으로 교수의 동태만을 쫓았다. 교수는 트렁크에 장갑과 삽을 던져놓고 어서 타라며 손짓했다. 이대로 모른 체 하고 교수의 차에 타야 하는지 갈등했다. 뒤에서는 모아이가 쫓아오고 있고 옆에는 살인마가 버티고 있었다. 어느 방향으로도 걸을 수 없었다. 식은땀이 가시 돋친 바람에 쓸려 날카로운 한기로 남았다. 교수는 내게 이상한 기색을 느끼고 트렁크 안을 살펴보다 한 곳에서 눈이 멈췄다.
– 하하…. 죄송합니다. 신경을 썼어야 하는데.
길고 가지런한 주름 사이 교수의 눈이 서늘한 빛을 냈다. 교수는 변함없는 서글서글한 목소리로 여기서 헤어져도 상관없다고 했다. 하지만 남은 길 가면서 이야기 하나를 들려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공포가 앞섰지만 나는 작가였다. 소설 책장을 넘기는 것처럼 교수의 차에 올라탔다. 교수는 꾸민 듯한 몸짓으로 손을 비비며 따라 탔다.
– 되돌아보니 작가님은 제가 무엇을 하고 와서 어디로 가는지 한 번도 묻지 않으셨죠.
나는 단지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랬다고 대답했다. 교수는 차게 미소지으며 동감했다. 내가 모아이에 쫓겨 여기까지 온 것처럼 교수도 무언가에 떠밀려 여기에 있었다. 이 세상 누구에게나 작용하는 피동의 물리학이 너무나 당연해서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몸속 깊숙한 곳에 자리 잡아 존재감마저 둔해진 종양 같았다. 종양은 이런 의외의 순간이 와서야 살갗을 가르고 뿌리를 드러낸다. 비로소 그때 나는 절망한다. 때는 이미 늦어 내 몸의 모든 세포는 종양으로 대체된 채다. 나는 병이다. 교수가 한숨을 내쉬고 입술을 핥았다.
– 대학도 다니기 전 옛날 여기에 살고 있었을 때, 형은 조각을 하고 저는 그림을 그렸습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었죠. 저희의 예술은 같은 날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재능의 차이는 명확했다. 형은 과연 천재라고 불리기에 아쉬움이 없는 작품을 연달아 만들어냈다. 흔히 굴러다닐 법한 돌조각을 가지고 눈이 쏟아지는 원시림, 터벅터벅 걷는 가로등지기, 수만 마리 벌새를 탄생시켰다. 형은 끌과 정과 바위로 자신의 왕국을 건설할 수 있었다. 탁월한 실력만큼이나 유명세도 빠르게 높아져 스물이 되었을 때 이미 모아이를 깎을 수 있는 자격을 얻어 조각가로서 최고의 지위에 이르렀다. 그와 반대로 교수는 변변찮은 유화 작가였다. 인물, 정물, 추상. 닥치는 대로 그렸지만 자신이 원하는 형상은 결코 나타나지 않았다. 날이 갈수록 미완성으로 버려지는 캔버스는 늘어났고 고민도 깊어졌다. 교수는 좀처럼 형에게 먼저 말을 거는 일이 없었다. 가까스로 참고 있는 질투와 우울이 깊은 속에서 터져버릴지도 모른다는 경각심이 있었다. 형도 교수의 상태를 짐작하고 있었는지 교수가 없는 자리에서도 함부로 말하는 법이 없었다. 하지만 형의 조심스러운 배려는 교수에게 더 큰 열등감을 돌아왔다. 교수는 매일 밤 선망과 분노를 연료 삼아 붓을 움직였다. 어느 날 형이 제자라고 한 여자를 소개했다. 처음에 교수는 여자에게 냉담했다. 날마다 작업실에 출근하는 여자를 보고 돌 부스러기를 치우는 가정부를 고용했다고 생각했다. 반대로 여자는 차가운 교수의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말을 붙였다. 가볍게 그은 붓선 하나와 지나가는 말 한 조각에도 지극한 관심을 가졌다. 여자의 집요한 질문에 대답하는 횟수가 점차 늘었다. 여자 앞에서 멈춰서는 거리가 다섯 걸음에서 넷, 셋, 한 걸음도 되지 않을 정도로 가까워졌다. 여자는 총명하고 밝았다. 교수 자신도 그리되는 느낌을 받았다. 처음으로 무언가 그려지고 있었다. 마침내 첫 완성작을 내놓았다. 검은 배경에 새빨간 석류가 조각난 그림이었다. 여자와 형은 교수보다도 기뻐했다. 교수가 그림 귀퉁이에 서명하는 순간에 함께하며 축하했다. 슬프게도 교수는 희망을 품었다. 드디어 형과의 격차가 좁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듬해 봄 여자와 형은 결혼했다. 교수는 그들보다도 자신에게 더한 배신감을 느꼈다. 자신의 소망 전부를 그들에게 맡겨놓았다는 사실에 발작하듯 좌절했다. 허공에 새를 매어놓고 떠나지 않기를 바라는 희극이었다. 결혼식 날 밤 교수는 아무도 없는 작업실에 숨어들어 무리를 이룬 수만 마리 벌새 조각을 전부 부숴버렸다. 도망치는 것처럼 서울로 떠났다. 교수는 제주에 있었을 때보다 더 악착같이 그렸다. 잠시라도 붓질을 쉬면 감당하기 어려운 여자의 눈길이 슬며시 다가온 것 같았다. 세월이 흘러 교수는 약간의 명성과 교수직을 얻을 수 있었다. 형을 따라잡으려는 시도는 진즉에 포기한 채였다. 교수와 형은 완전히 다른 궤도에서 돌고 있었다. 교수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숨겨둔 여자의 초상화에 하루하루 칠 하나를 더하는 것밖에는 없었다.
– 저는 후회라는 걸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되새겨봐도 지나간 그 모든 것들은 하나같이 어쩔 수 없는 일이더군요. 뼈아픈 일이었습니다.
나흘 전 교수는 여자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자살이었다. 형에게는 아무 말도 없었다. 몇 해 전에 그들은 헤어졌다. 형은 빠르게 새 가정을 꾸렸지만 여자 쪽은 아무도 소식을 몰랐다. 땅이 꺼지는 듯 아찔했다. 교수는 자신의 후회마저 잃고 말았다. 다 탄 양초의 심지에서 솟아나는 두 줄의 연기처럼 가장 안쪽에 숨겨두었던 자신의 모습이 닿을 수 없는 거리까지 멀어지고 있었다. 형이 그 거리를 벌리고 있었다. 자신이 바라는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이 이제 바람 자체까지 앗아가고 있었다. 매초 자신의 무게가 한 움큼씩 떨어져 나갔다. 마침내 한 줌도 남지 않을 때까지 불안은 계속되었다. 가슴 속에서 질게 익은 석류알이 터져 퍽 소리를 냈다. 교수는 형을 용서할 수 없었다. 형을 죽여야 했다. 준비가 끝나는 대로 곧장 제주를 향했다. 수십 년 만에 작업실을 찾아가는 길은 무서울 정도로 변함이 없었다. 여자의 시선이 뒤통수를 간지럽혔다. 마음이 죄어왔지만 여기까지 와서 뒤를 돌아볼 수는 없었다. 교수의 걸음은 아슬하게 균형을 잡는 수준이었기에 뒤를 보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릴 것이었다. 작업실 바로 앞에서 차를 멈췄다. 털털대는 시동을 끄자 고요한 아침이 모습을 드러냈다. 작업실 쪽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교수는 정신없이 모았던 많은 도구 중 도끼를 골라 꺼냈다. 작업실은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교수는 울컥하는 마음에 이를 갈면서 문을 열었다. 한밤 내내 작업을 하다가 지친 형이 돌아가는 시각이었지만 작업실은 텅 비어있었다. 아니 이미 오랫동안 쓰이지 않은 것처럼 먼지투성이에 인적도 없었다. 좀 더 안쪽으로 들어서는데 돌조각이 발부리에 채였다. 사방이 돌조각이었다. 그날 박살 냈던 벌새들이었다. 교수는 당황하여 작업실을 샅샅이 뒤졌다. 형의 작업 도구를 몇 개 발견했지만 전부 녹슨 채 버려져 있었다. 교수는 넋이 나가 풀썩 주저앉았다. 형은 조각을 그만두었다. 형은 교수가 죽일 수 없는 곳으로 일찍이 떠나버렸다. 교수의 바람은 영원히 미완성으로 남게 되었다. 교수는 상실과 공포로 제대로 호흡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그때 작업실의 어둠 속에서 뻘겋게 달아오른 한 점의 색이 일렁거렸다. 교수는 허우적거리듯 떨어뜨렸던 도끼를 잡아 들었다. 저주스러운 핏빛 그림이 이젤에 걸려 있었다. 변덕스러운 불길처럼 괴이하게 흐르는 선이며, 새 부리에 쪼아 먹히는 물고기의 눈처럼 잔혹한 구도, 유령이 새겨놓은 듯 형태 없는 서명까지 예전 그대로였다. 교수는 겁에 질려 자신의 그림을 향해 도끼를 휘둘렀다. 붉은 칠이 산산이 바스러져 시야를 휩쓸었다. 그림은 귓가에서 떨어지지 않는 긴 비명을 남기고 갈기갈기 찢어졌다.
– 전 제 작품을 죽였습니다. 아마 남은 것들도 모두 처리해야 할 테지요.
교수는 힘없이 웃었다. 잠깐 이야기하는 사이 교수는 몇 년 더 늙은 것처럼 보였다. 나는 마땅히 들려주어야 할 대답을 찾기 위해 생각을 거듭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동생의 최후가 떠올랐다. 동생은 길었던 겨울이 끝날 무렵 고갯길에서 미끄러지는 차에 깔려 죽었다. 아무리 집안을 뒤져도 먹을 게 나오지 않자 굶주린 이리처럼 떠난 참이었다. 동생의 상태는 도저히 정상이 아니었다. 짐승처럼 침을 흘렸고 할 수 있는 말도 점점 짧아지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집을 나가버린 것이었다. 나와 누나가 황급히 뒤따라 나왔지만 동생은 붙잡을 수 없는 속도로 멀어지고 있었다. 그러니 막 녹기 시작한 내리막길에 트럭이 미끄러져 동생을 덮친 것은 분명 사고였다. 비록 동생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누나는 더 큰 희생을 준비해야 했고 그것으로도 충분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그녀는 항상 미안해했고 동생과 동생의 글과 온전히 자신의 것이었던 밤을 사랑했다. 할 수 있었다면 누나는 망가진 동생을 구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마지막 순간이 닥쳐왔을 때 누나의 입에서 작은 비명 하나도 새어 나오지 않은 일을 우연이라고 생각하기는 어려웠다. 누나의 눈빛은 저도 모르게 비쳐나오는 후련함으로 푸르렀다. 나는 서글프고 두려운 마음에 그 모든 장면을 잊어버리기로 했다. 얼마 안 가 동생을 따라 어머니도 죽었다. 누나는 늦게나마 좋은 사람을 만나고 아이를 가졌다. 나는 기쁜 일이 있을 때마다 그간의 희생에 보답하듯 진심으로 축하했다. 드디어 자신의 삶을 사는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그러던 중 지난해 누나는 유산했다. 나는 동생과 어머니의 장례식장에서 누나가 그랬던 것처럼 화창한 죄의식을 느꼈다. 결국 나는 글쓰기를 원했다. 설령 붓과 악기를 제대로 다룰 수 있었더라도 글을 썼을 것이다. 혹 단 한 번의 실패도 없이 작가가 되었더라도 제주에 왔을 것이다. 나는 교수의 잔뜩 찌푸린 얼굴을 응시했다. 병문안을 가서 누나에게 던져야만 했던 쌀쌀한 질문을 기억했다.
– 슬프십니까?
– …모르겠네요.
잠시 둘 다 말이 없었다. 라디오에서는 모아이 살해범을 붙잡았다는 뉴스가 속보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어지러웠다. 내가 죽였던 건 뭐였던가. 여전히 나를 쫓고 있는 이 존재는 대체 무엇인가. 나는 법복을 잡아당겨 주름을 폈지만 손을 놓자마자 구겨진 모습으로 돌아왔다. 군중으로 가득했던 모습은 거짓말처럼 재판장은 깨끗하게 비어있었다. 소리 높여 선고를! 외쳤지만 단말마의 고함은 변변찮은 메아리도 내지 못하고 흩어졌다. 높은 의자에 앉아 있던 나는 흐물흐물 고꾸라졌다. 껍데기만 남은 석류 조각이 비린내를 풍기고 있었다. 작가님 출출하지 않으십니까, 옆자리 교수가 잠긴 음성으로 내게 물었다. 그러나 ‘작가님’은 거기 없었다. 끝없이 뻗친 도로 위에 슬프다는 듯 눈이 내리고 있었다.

– 단편 소설 <모아이>